7살 아이가 건네준 사탕 하나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치과에서 바라본 세상 21] 불청객처럼 찾아온 우울증, 어린 환자에게 치유받다

등록 2011.03.28 16:10수정 2011.03.3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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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때로는 안으로부터 밀려 나오는 까닭 모를 슬픔 때문에 힘겨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것이 며칠째 흐린 날씨 탓인지, 아니면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피로감들이 한계에 달한 탓인지 몸도 마음도 천근같이 무거워지는 그런 날.


세상 모두가 자신을 적대시할 것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세상에 별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회의적인 외침이 내면에서 들려오는 탓에, 삶의 무게에 짓눌린 지친 어깨는 평소보다 더욱 축 처져 있었지만 어김없이 원장실의 문은 열렸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생님 신환인데 7세 소아환자입니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아침부터 걸려도 제대로 걸렸구나.'

몸과 마음이 정상일 때도 달래가면서 진료하기 힘든 어린 환자를 피로에 지친 심신으로 대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어려운 의술이 요구되지 않는 소아환자까지도 '우울하다'는 사유로 다른 의사에게 떠다밀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진료실을 향했습니다.

"하나도 안 아파. 선생님 시키는 대로만 하면 금방 끝나."

환자를 진정시키느라 위생사가 하는 이야기는 평소와 다를 바 없지만 은근히 부아가 치밉니다. 내가 아직 아무 진단도 내리지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빨리 끝난다고 얘기를 하며 자신이 할 것도 아니면서 하나도 안 아프게 한다는 약속을 하면 어쩌자는 건지. 어차피 아프게 해도 자신은 책임 없으니 관계없다는 태도는 아닐까 싶어 불쾌하더군요.


못 마땅한 눈초리로 위생사를 한번 훑어보고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 아 해보자. 이가 흔들리네? 이거 하나만 뽑고 가자. 허리케인(주사가 아닌 면봉으로 문지르는 도포 마취제) 주세요."

평소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설명과 기계적인 지시. 별 효과도 없는 도포 마취는 그만두고 그냥 휙 뽑고는 다시 원장실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진료실을 아이 울음소리로 가득 메웠다가는 심기가 더 불편해질 듯하여 젤리가 발라진 면봉을 그저 쓱쓱 문질렀습니다.

"포셉(발치 감자) 주세요."

평소 어린이들은 포셉을 보면 공포감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핀셋이나 거즈를 이용해서 발치하는 것을 아는 위생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이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기구를 가져다주었다.

"자, 아 하고. 뽑을 때 약간은 아플 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포셉을 꽉 쥐면서 비틀었습니다. 별 저항 없이 빠지는 치아.
'좀 아팠으려나? 어쨌거나 환자가 울지 않고 끝났으니 됐지 뭐.'

아무 말 없이 거즈를 물려주고는 간단히 챠팅을 하고 원장실에 들어왔습니다. 평소 자랑으로 삼던 무통이나 친절과는 거리가 먼 진료. 도대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더군요. 존재가 아픔을 느낄 때 곧잘 표출된다는 공격성은 이제 바깥이 아닌 안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자기 기분 우울하다고 위생사한테 짜증 내고 연약한 어린 환자한테 화풀이하듯 진료하는 게 네가 어린 시절 그렇게 꿈꿔 오던 의사가 할 짓이냐?'
'환자 구강 상태 말고 얼굴은 기억나니? 임플란트나 보철 환자였어도 그 따위로 진료했겠느냐? 학생 시절 그렇게 거부하던 돈을 따라가는 의사에 드디어 도달했구나.'

자책과 부끄러움의 괴롭힘이 극에 달한 채로 오전 진료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선생님, 오전에 발치한 애기 환자가 다시 왔는데요."

한낮의 식곤증을 쫓는 위생사의 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습니다. 치과의사로서 진료가 끝난 환자가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것만큼 걱정되는 일도 없는 법. 대기실에는 아까 그 꼬마가 엄마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아까 내 진료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었다는 치졸한 자기 방어가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참에 꼬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였습니다.

"선생님 안 아프게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거 주는 거예요."

그리고 내민 작은 손안에 든 작은 막대 사탕 한 개. 고맙다는 말도 하는 둥 마는 둥. 유치원에서 사탕을 받더니 자꾸 치과에 가자고 졸랐다는 엄마의 설명도 귓전으로 듣고는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지지만 그 작은 사탕 하나는 무슨 고귀한 보석인양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겠더군요.

어린아이에게는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일 달콤한 캔디. 친구들이 모두 맛있게 먹는 동안 혼자 먹지 않고 참았을 모습. 그리고 치과에 가자고 엄마를 졸랐을 모습이 자꾸만 아침에 진료를 하던 내 모습과 겹쳐져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백 마디의 올바른 훈계가 아니라 한 번의 따뜻한 관심이라더니 아직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 어린 소년에게서 배운 것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문득 영화 한 편이 생각났습니다. 이제는 제목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습니다. TV 쇼였는데 70이 넘은 노인 한 명을 앉혀 놓고 엽총을 쥐여준 후 자신의 젊을 적 꿈과 목표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얘기하게 한 후 얘기를 마칠 때까지 엽총으로 자살을 하지 않으면 대형 냉장고를 상품으로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늙어서 초라해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얘기 도중 눈물을 보였습니다. 나눠 준 총이 진짜인지 모조품인지 쇼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아마 열에 아홉은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철학적인 어려운 이야기 꺼낼 것도 없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아무리 변명해 봐야 끝에 가서 스스로 자신에 대해 평가한다면 자살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것. 그것이 삶 아닐까요.

어쩌면 오늘 저의 두 어깨가 축 처져 있던 것 역시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그 TV 프로에 혼자가 아닌 부부나 친구가 함께 나갔다면 어땠을까요. 서로를 위로하고 칭찬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지는 않았을까 싶습니다. 삶의 무게가 운명처럼 짓누를 때 홀로 맞설 수 있는 것은 영웅뿐이겠죠. 그리고 저나 우리는 모두 영웅은 아닙니다.

맞습니다. 니체가 얘기했듯이 삶은 덧없는 것이고 우리는 그 덧없는 삶에 홀로 맞설 용기도 능력도 없는 불쌍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요. 의도하지 않았던 오늘의 내 모습에서 어떤 누군가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을지도 모르기에.

불청객처럼 찾아온 우울증에 혼자 눈물을 삼키고 있던 저에게 어린 환자가 건네준 사탕 한 알이 어떤 약보다도 훌륭한 치료제가 되었듯이. 저마다 자신의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면서 그렇게 많은 사연과 사정을 가지고 우리는 모두 살아갑니다. 때로는 자신의 모습에서 빛나는 보석을 찾아낼 누군가가 옆에 있는지 인식도 못 하면서.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영화 '라디오스타' 중에서)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중복 게재입니다.
blog.naver.com/bluestag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중복 게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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