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통큰 기부' 대권용? 그러면 안되나요

[장윤선의 톡톡! 정치카페] 1500억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길...

등록 2011.11.15 18:04수정 2012.08.0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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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철수연구소'의 주식 절반(1,500억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밝힌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이 1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안 원장이 건물앞에 모여 있는 수십명의 취재진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 권우성


기침 한 번 할 때마다 머리통이 우지끈 요동치던 14일 저녁,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야, 안철수가 1500억대 자산을 내놓는단다. 이거, 대권 출마용이지?"

박하사탕을 우적우적 씹을 때처럼 머릿속이 단박에 시원해졌습니다. 아, 이 아저씨, 진짜 실천하는 아저씨네? 배시시 웃음이 났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사회 환원에 뜻이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이미 청춘콘서트에서 늘 이 점을 강조했으니까요. 저는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안랩(안철수연구소) 동료들에게 안 원장이 직접 보냈다는 편지를 읽어보았습니다. 박원순 시장을 응원하는 첫 번째 공개편지 이후 두 번째 '공개편지'인 셈이기도 하네요.

우선 제 눈에 띈 몇 대목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다 읽으셨겠지만, 공감 차원에서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몇 대목 중략한 부분도 있으니 '오탈자 게시판'에 신고하심 안 돼요!

건강한 중산층의 삶이 무너지고 있고 특히 꿈과 비전을 갖고 보다 밝은 미래를 꿈꿔야 할 젊은 세대들이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중략>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들을 국가 사회가 일거에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국가와 공적 영역의 고민 못지않게 우리 자신들도 각각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략> 실의와 좌절에 빠진 젊은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위로도 필요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상생을 위해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중 하나는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이며, 그 근본에는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기자란 직업은 본디 끊임없이 의심하고, 배후에 숨은 노림수를 계산해서 지금 토해내는 말의 복심을 읽어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안 원장이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진심'이 읽혔습니다. 이걸 <문화일보> 식으로 해석해 "총선·대선 겨냥 '안철수式 펌프질' 시작됐다, 서울시장 보선·재산기부 등 세상과 간접 소통하는 '신비주의'"로 읽어야 할까요?  

아님, 안철수 원장이 대권출마를 위한 사전 작업용으로 던진 먹잇감인데 얼간이처럼 기자가 멍 때리고 있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우리, 솔직히 한번 생각해보자고요. 설령 그가 대권용으로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내놓고 출마 저울질을 한다고 칩시다. 대한민국에 이런 정치인이 있었나요?

재산기부가 대권용? 대한민국에 이런 정치인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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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철수연구소'의 주식 절반(1,500억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밝힌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이 1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들에게 "평소 생각을 실행해 옮긴 것뿐"이라고 담담하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열심히 뛴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에게 '협찬인생'이라 비난하는 게 한국 정치의 암울한 현실입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이런 망발은 정치개혁과 사회혁신을 위해 활동하는 전국의 모든 NGO 활동가들에게 오물 바가지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NGO활동과 기부는 국회의원 배지 달고 호가호위 하면서 여대생 성추행 의혹을 받는 정치인이 함부로 폄훼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 원장도 이번 자신의 기부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을 염려해 이런 글도 포함했더군요.

이것은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것을 실천한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오늘의 제 작은 생각이 마중물이 되어, 다행히 지금 저와 뜻을 같이해 주기로 한 몇 명의 친구들처럼, 많은 분들의 동참이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뜻 있는 다른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 봅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이런 안 원장의 기부를 '사회운동'으로 해석합니다. 김씨는 15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안철수의 1500억이 대선용이라 해도 상관없다"고 썼습니다. 그는 "이전 대선후보들과는 상당히 다른 행보이며 새로운 시도"라고 진단했습니다.

과거에도 대선후보들 가운데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그쳤고, 안철수 원장처럼 조직적인 사회운동에 나선 인물은 없었다고 술회합니다.

김씨는 "이명박 대통령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할 때 재산 사회 환원을 약속한 바 있지만 대선이 끝날 때까지 그의 사회 환원은 '입'에서만 맴돌았"고, "정몽준 의원도 범현대가와 함께 5000억 원의 재산을 출연하겠다고 밝혔지만 가족 차원에 그친 시혜적 기부였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 안 원장의 사회 환원은 조직운동이며 선행을 넘어 '기부문화' 확산으로 가자는 일종의 사회운동이라고 해석합니다. 만일 안 원장의 이번 사회운동이 성공한다면, 그의 가치는 생명력을 얻게 되고, 조중동이 윽박지르다시피 요구했던 '대선후보 안철수'의 철학과 비전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그의 이 같은 '작은 실천'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보내 "안철수 교수는 50%의 지지율을 가지고도 5%의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통큰 양보'를 했다"며 "이번에는 1500억 '사회 환원'이라는 '통 큰 기부'로 또다시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을 진정으로 감동시킨 일이 없다"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던 약속은 일가친척과 사위에게 재단의 감투나 만들어주는 용두사미로 끝났다"고 비판했습니다.

조배숙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안철수 교수 정말 대단하십니다^^"며 "그것이 어떤 의도이든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떠들썩하게 기부한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임대료보다 적은 장학금,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큰 절세효과를 가져온 꼼꼼한 재테크였다"고 비판했습니다.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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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저는 안철수, 그가 이번에 쓴 공개편지에서 가장 생각을 곱씹게 하는 대목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중 하나는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이며, 그 근본에는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위 소절은 우리 삶의 철학과 관계된 것이고, 아래 소절은 한국사회의 혁신과제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문제를 꿰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밖에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 북한인권 등등의 문제가 있지요. 허나 얽힌 실타래를 단번에 풀 수 없으니 모든 문제를 하나 하나 접근할 필요가 있지요. 그렇다면, 저는 오늘 안 원장이 밝힌 이 진심의 편지에서 첫 번째 문제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가 밝힌 대로, 안 원장과 '기부문화 확산'에 동참할 친구들, 그리고 그 뒤를 이을 수많은 '개념찬 기업인'과 사회인들이 줄을 설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이 나라에서 실천으로 계속된다면, 그 자체가 희망이 아닐까요?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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