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피라미드군, 맨 왼쪽부터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피라미드
박찬운
기자의 피라미드는 잘 알려진 대로 3기의 피라미드군이다. 이들 피라미드는 모두 고왕국 시기에 축조된 것이니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제일 큰 규모인 쿠푸왕 피라미드(높이 146미터), 조금 작은 규모의 카프레왕 피라미드(높이 143미터, 현재는 136.4미터), 쌓다 만 미완의 멘카우레왕 피라미드(65미터)가 바로 그것들이다. 멀리서 사진을 찍어가며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앞에 다가갔다. 한마디로 장엄하다. 4500년간 온갖 풍상을 겪어 왔지만 이 인류의 유산은 아직도 우리 앞에 서 있다.
온갖 도굴로 만신창이가 되고, 기독교와 이슬람 교도에 의해 피라미드의 상당 부분이 뜯겨져 나가 그들의 사원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피라미드는 구약 성경 출애굽기에서 요셉이 형제들의 배신에 의해 애굽땅으로 팔려 올 때 이미 완성된 것이었다. 모세가 출애굽의 역사를 만들 때도 물론 건재하였다. 예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이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애굽땅으로 피난을 왔을 때도 이 피라미드는 그들 가족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피라미드는 무엇일까. 파라오의 무덤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견도 있다. 그것은 자연의 대재앙이나 전쟁, 전염병 등을 예고하는 예언적 건축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통설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146미터, 밑변이 230미터이고 체적이 무려 250만 세제곱미터나 된다. 이것을 건조하는 데 약 600만 톤의 석재가 사용되었으며 어떤 돌은 무게만 15톤에 달한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4500년 전에 이런 엄청난 돌들을 날라 이곳에 이런 대형 구조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피라미드 건설에 사용된 그 모든 기술을 알아내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다만, 피라미드에 사용된 화강석을 1000킬로미터 밖의 아스완에서 나일강에 뗏목을 띄워 이곳으로 옮긴 다음 통나무를 깔아 놓고 사람들이 끌고, 그 다음 모래산을 만들어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렸을 것이라는 정도의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한 바로는 피라미드에 사용된 화강석이나 석회암이 대단히 정교하게 절단되었다는 사실이다. 석회암이야 무른 돌이나 철기가 아닌 단단한 돌로 절단할 수 있다고 해도 화강석과 같이 단단한 돌은 어떻게 그렇게 정교하게 절단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아스완에 가서 보게 되는 미완의 오벨리스크에서 의문이 풀리지만 실로 대단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라미드는 노예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예전에는 이러한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피라미드의 건축이 워낙 고도의 기술력이 동원된 것이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 아래 채찍을 당하며 목말라하던 노예들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은 이 건축물이 놀라운 기술력을 가지고, 노동 조직력을 지녔으며 절정의 예술적 재능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만든 작품으로 이해한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나일강이 범람하면 연중 4개월은 사람들이 실업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파라오들이 이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 이런 대형 국책사업을 벌였다는 해석도 한다. 제법 괜찮은 해석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케인지안 경제이론이 경제정책의 토대였다니 말이다.
도굴범 앞에서 난공불락은 없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