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영토를 보자, 면적 165만 평방킬로미터로 한반도의 8배 크기이고, 인구 7500만 명의 대국이다.
어느 문명기행도 여정에 앞서 그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지 않으면 현지에 가서 어떤 설명을 들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문명기행을 하면 할수록 이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역사를 알지 못하고 유적을 보면 그것은 단순히 돌무덤에 불과하다. 돌무덤이 유적으로 보이는 것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때이고, 그것은 사전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당해 문명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 시기의 주변의 역사를 이해하며 나아가 세계사적인 시야에서 그 역사를 이해할 때 제대로 된 문명탐사가 가능하다.
페르시아 역사에 대한 이해는 문명탐사 목적 외에도 또 다른 목적이 있다. 그것은 현재의 이란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란이란 나라를 생각하면 무슨 생각부터 드는가.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 고집불통의 별스런 나라, 미국과 항상 적대하면서도 용케도 버티는 나라 등등…. 결코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현대사에서 미국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 낸 허상이다. 이 허상에서 비롯된 우리들의 이란에 인식은 고작 자유스럽게 살던 이란인들이 졸지에 이슬람 혁명을 맞이하여 철의 장막에 갇힌 사회가 되었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란인들이 자존심이 세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라크와 리비아가 두 손 든 현재의 시점에서 이란은 가히 북한과 더불어 미국에 가장 거칠게 도전하는 나라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그렇다, 역사와 문화가 답이다. 그들에겐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있기에 미국의 그 집요한 공격에 대해서 늠름하게 버티는 것이다. 힘으로야 미국을 당해낼 수 없지만 200년 역사의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역사와 문화가 있기에 이 고난의 시절을 버틸 수 있다는 말이다.
문명의 꽃이 피기 전 이란 고원, 주인은 누구?카스피해 남쪽은 거대한 고원인 바, 이것은 자그로스 산맥과 엘브로즈 산맥에 의해 거대한 이란 고원을 만들어 낸다. 고대에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BC 2500년부터 약간의 구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다. 이 거대한 고원 전체의 주인은 어느 한 부족일 리는 없지만 적어도 주요 부분의 주인은 알려졌다. 우선 주목해야 하는 부족이 엘람인이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에 가까운 수사를 근거지로 하여 점점 세력을 확장하며 메소포타미아의 아시리아와 경쟁한다.
BC 12세기경, 이들은 티그리스 계곡, 서부 페르시아 및 페르시아만의 해안을 모두 손에 넣었다. 이때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의 법전이 조각되어 있는 비석이 이들 손에 들어온다. 이즈음 페르시아의 북방에는 일단의 아리안 부족이 점점 남하해 오는데, 이들은 급기야 파르스 지역(현재의 시라즈 지역)에 정착한다.
그러나 이 시기 역사적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것은 또 다른 아리안족의 일파인 메데스족이다. 이들은 서부 페르시아를 장악하며 그 수도를 엑바타나(현재의 하마단)로 정한다. 메데스족은 당시 카스피 연안까지 장악하고 있던 스키타이 부족을 저 멀리 북방으로 내쫓아 버린다. 더욱 이들은 BC 7세기 초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베를 정복함으로써 고대 아시리아 왕국을 역사 속으로 보내고 만다.
이란인의 영원한 자부심, 아케메네스 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