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리의 일몰문득 집 앞을 나가보니 일몰이 멋지다.
조남희
잠시 서울 직장인 시절이던 나의 먹거리를 생각해본다. 아침은 먹는 것보다 자는 게 더 중요하니 패스. 점심은 다들 아는 회사 식당의 그저 그런 식단. 저녁은 친구와 치맥(치킨과 맥주), 곱창, 감자탕 등. 야근하는 날은 라면과 김밥 그리고 가끔 회식. 주말에는 느지막히 일어나 일단 라면. 친구와 약속이 있으면 삼겹살 아니면 횟집이다.
그러고 보니 참, 부끄럽게도 이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음식이 없다. 망망대해와 같은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나의 '촉'은 오직 라면, 삼분카레, 비엔나 소시지, 냉동만두 그리고 수입맥주로 향했다. 엄마가 "이래서 시집 가겠느냐"고 잔소리 하면 "난 요리 잘하는 남자 만날 거"라고 말했다.
지금 사는 제주도 대평리가 서울처럼 쉽게 음식이 배달되고, 대형마트가 가까운 동네라면 어땠을까. 내가 지금처럼 뭔가를 만들어 먹게 되었을까?
서울 살던 시절, 아주 잘 써먹은 스마트폰 앱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주변 배달음식점을 한식, 중식은 물론 야식 가능 여부까지 한방에 정리해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 지점에서 가까운 맛집을 찾아 주는 앱이었다.
대평리 집에서 이 두 앱을 실행시켜 봤다. 배달음식은 역시나 '검색결과 없음'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치킨을 배달하는 집이 있다.) 근처 맛집 검색 결과로는 거의 가지 않는 카페 두 개만 나올 뿐이다. 검색결과가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계속 가정식 요리를 연습할 수 있다.
짬뽕 등의 이른바 배달음식이 그립다면, 차 타고 나가야 한다. 며칠 전 지인이 놀러왔을 때, 나는 숙취로 다 죽어가던 그의 표현대로 "내 인생에서 가장 먼 해장길"을 선사해주었다. 짬뽕이 유명한 서귀포의 중국식당으로 갔는데, 차를 이용했을 때 집에서 무려 30~40분 정도 걸렸다.
내가 사는 집 주인 아주머니가 종종 그러신다. "밥은 먹고 다녀요?" 내 뱃살을 아직 못 보셨는지, 그런 말씀 하시는 걸 보면 좀 의아하다. 그냥 인사치레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 잘 해 먹고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의미에서, 일전에 여수에서 사온 돌산 갓김치와 손님이 오면 대접하려고 사놓았던 허벅술(제주도의 증류식 소주)을 드렸다. 없는 살림에 아까워서 덜덜 떨면서 말이다.
아주머니는 "바깥 양반이 애주가"라며 덥석 받으신다. 얼마 뒤, 창밖 일몰이 좋아 사진 찍으러 대문을 열었다가 주인집 내외와 마주쳤다. 저번에 인사할 때는 받는둥 마는둥 하시더니, 이번엔 나를 보시는 바깥주인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나저나 갓김치 담겼던 통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가 담겨서 곧 재회하길 기대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웃 간에 음식을 주고 받는 일도 서울에선 절대 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