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서 집에서 낳았냐구요? 병원보다 비싸답니다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2] 아내의 마지막(!) 가정출산기

등록 2013.02.23 18:38수정 2013.02.23 19:07
2
원고료로 응원
셋째도 집에서 낳자

a

이 아기가 우리 동생이야? ⓒ 이희동


어느덧 다가온 셋째 출산일.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설마 또 집에서 낳으려고?" 되돌아오는 아내의 한결같은 대답. "그걸 어떻게 확신해. 그때 가봐서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해야지."

말은 그렇게 주고받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아내는 셋째를 또 집에서 낳을 것이며, 나 역시 이에 대해 그러려니 받아들일 것이라는 사실을. 출산 3종 세트(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를 말하는데, 최근에는 이를 하지 않는 산부인과도 많은 편이다)를 하지 않기 위해, 첫째에게 충격을 덜 줄기 위해 둘째 때도 가정출산을 선택했던 아내가 갑자기 산부인과를 가겠다고 할 리 없지 않은가.

a

진통 중인 아내 ⓒ 이희동

그러나 문제는 예정일을 1주일 정도 앞두고 발생했다. 잠을 자던 아내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고통을 호소했던 것이다. 막달검사 상 셋째는 오히려 예정일을 넘길 것 같다던데 무슨 일이지? 설마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아내는 아무래도 위경련 같다며 다음날 산부인과에서 약을 지어 복용했지만 지켜보는 남편의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첫째 때도 30주가 넘어 타미플루와 대상포진 피부약까지 복용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때처럼 괜찮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나 나나 둘 다 말은 않고 있었지만 셋째가 기형은 아닐지, 어딘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일말의 두려움은 갖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아내의 병명은 밝혀졌다. 이틀 뒤에는 둘째가, 나흘 뒤에는 첫째가 아내와 같은 증상을 보여 병원에 갔는데 아내로부터 옮은 노로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아내는 그 전 주말 몸 보신을 해야 한다며 마트에서 사온 생굴을 열심히 먹었었는데 그때 감염된 듯 했다. 태아의 문제가 아니라니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출산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과연 이번에도 우리는 가정출산을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다시금 울리는 신생아의 울음소리

예정일을 하루 앞둔 새벽. 아내가 급히 흔들어 깨었다. 진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며칠 전부터 둘째를 낳던 동영상을 보면서 산고의 고통을 되새기던 아내였지만 역시나 직접 겪는 아픔은 상상 이상인 듯 보였다. 셋째는 별 고생 않고 순풍 낳는다더니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집 이야기였던가.

새벽임에도 조산사는 전화 한 통에 득달같이 달려왔고, 난 그제서야 한시름 놓으며 셋째 복댕이 맞을 준비를 했다. 거실을 치웠으며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 출산을 기록할 장비들을 점검했다. 배를 움켜쥔 아내는 "지금 이 상황에 꼭 그래야겠냐"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복댕이 나오는 기념비적인 순간은 담아야 할 것 아닌가. 아마도 이 영상물을 가장 많이 볼 사람은 아내 자신일 것이다.

엄마의 신음소리와 거실의 부산함 때문인지 첫째와 둘째가 평소보다 일찍 깨어 부스스 거실로 걸어 나왔다. 첫째 까꿍이야 이미 2년 전에 엄마의 출산을 경험했고(자신은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고 주장한다), 설명도 여러 번 들은 터라 무덤덤한 편이었지만, 산들이는 낯선 분위기에 살짝 긴장한 듯 보였다. 엄마가 왜 저렇지? 저 낯선 아줌마는 누구지?

a

오늘따라 아빠가 왜 이렇게 잘해주지? 아이스크림에 TV까지 ⓒ 이희동


그러나 긴장도 잠시. 녀석은 이내 누나와 장난치며 집안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비명소리에 놀라지 말라고 아침부터 TV를 틀어주고 과자를 쥐여주니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이었다. 그래, 부디 엄마 출산 순간에도 울지 않도록.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첫째, 둘째 때와 달리 두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거실에서 같이 놀아주고 있었는데, 드디어 안방에 있는 아내의 비명소리가 질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5분 주기 진통이 길었던 까닭에 이번에는 출산 시간이 더 길어지는 줄 알았건만, 조산사가 자궁문이 8cm 정도 열리니 초산모가 아닌 이상 출산이 가능하다며 아내에게 힘주기를 시킨 것이다.

더 이상 아이들과 노닥거릴 수 없었다. 재빨리 안방으로 들어가 아내 머리맡에 앉아 힘주기를 도왔다. 아내는 너무 아프다고, 차라리 병원에 가서 수술할 걸 그랬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몸부림쳤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녀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있는 힘껏 벌려 복댕이가 쉽게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왔다.

a

복댕이 탄생 ⓒ 이희동


계속되는 아내의 힘주기. 예전과 다른 점은 아내가 조산사의 충고와 달리 팔을 올려 나의 목을 잡고 힘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며칠 전 장모님의 말씀을 듣고 그런 자세를 취하면 내가 힘들지 않냐고 묻더니, 그 영향인 것 같았다. 아이구, 이 사람아. 차라리 목을 잡게. 목을 잡지 않고 온몸을 뒤틀면 그 상태로 다리 벌리기가 더 힘들다네.

a

넌 누구냐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 ⓒ 이희동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간 아빠를 쫓아 들어온 첫째와 둘째. 대견하게도 녀석들은 울지 않고 조산사와 엄마, 아빠가 뒤얽혀 용을 쓰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까꿍이야 두 번째 보는 장면으로 그런가 싶었지만, 이와 같은 장면을 처음 보는 산들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모든 걸 주시하고 있었다. 첫 번째 출산을 지켜보던 누나보다 2개월 많은 21개월의 산들이니 이 녀석은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겠거니.

드디어 비릿한 냄새와 함께 셋째의 까만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회음부가 나갈 수도 있다는 조산사의 말에 진정한 아내는 한 템포 쉰 뒤 다시 힘을 주었다. 아내의 비명소리가 다시금 높아지는가 싶더니 '꾸물텅' 셋째가 물 흐르듯 흘러 나왔다. 첫째와 둘째와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날카롭게 울어대는 아기. 셋째 복댕이의 탄생이었다.

아직도 맥이 뛰는 탯줄을 자르지 않은 채 엄마 품에 안긴 복댕이. 그런 동생을 보더니 까꿍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비명소리에도 꿈쩍 않던 녀석이 엄마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복댕이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려는 것이다. 이제 엄마는 또다시 셋째 차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일까.

a

스마트폰과 함께 진정하고 있는 까꿍이 ⓒ 이희동


a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 이희동


누나가 울자 산들이도 덩달아 울먹울먹. 스마트폰을 쥐여주고 까꿍이를 거실로 내보내자 그제서야 산들이는 다시 진정하고 복댕이를 살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짠했다. 이제 막내로서 받았던 사랑이 끝나고 첫째 누나와 셋째 동생 사이에서 치이고 살아야 할 산들이의 운명이 빤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네가 형이다, 이 녀석아.

가정출산 지원 25만 원?

긴박했던 시간이 끝나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휴식을 취할 무렵, 조산사가 돌아가겠노라고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나왔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어지는 뻘쭘한 풍경. 바로 가정출산 비용 때문이었다. 얼마냐고 묻고 속시원하게 지불하면 될 것을 나는 쭈뼛쭈뼛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고, 조산사 역시 얼마라고 똑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겸연쩍어 하는 가정출산 비용. 그것은 결국 가정출산 비용이 사회적으로 아직 책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정출산비용은 조산사에 따라 적게는 150만 원에서 300만 원 이상까지 천차만별이었다.

혹자는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이 없냐고 묻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집에서 낳는 비용이 조산원이나 병원에서보다 훨씬 더 비싼 편이었다. 그렇다면 왜 가정출산이 조산원이나 병원보다 비쌀까? 단지 조산사가 우리 집으로 오는 출장비 명목이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지켜볼 항목은 정부의 분만수가에 관한 정책이었다. 분만수가라 함은 출산 등과 관련하여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각 병원이나 조산원에 지급하는 비용을 의미하는데, 조산원은 보통 자연분만 한 건에 50~60만 원, 병원은 그 이상을 지급받는 반면 가정출산의 경우에는 분만수가가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줄어드는 산부인과 유지를 위해 분만수가가 여러모로 확대되었는데(2013년 2월부), 그 와중에도 가정출산은 배제되었다.

a

누나의 고뇌 이 녀석을 어떻게 잘 키우지? ⓒ 이희동


어처구니 없었다. 정부는 가정출산을 하면 25만 원을 지원한다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 그것은 실제 한 건의 자연분만 수가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가정출산은 분만수가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니 조산사로서는 당연히 이를 보전하기 위해 조산원 출산보다 높은 비용을 청구할 수밖에.

이는 결국 국가가 가정출산을 장려하거나 지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막고 있는 형국이었다. 명색이 좋아 25만 원 지원이지, 오히려 국가는 병원에서의 출산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정출산과 같은 자연주의 출산이 100%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출산률이 걱정이라면, 돈이 없어 아이를 못 낳겠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면, 정부가 이와 같은 선택까지 세심하게 살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a

정부의 생색내기 분만수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원비 ⓒ 보건복지부


조산사를 보내고 다시 들어가본 안방. 여전히 아기는 잠들어 있었고 세상은 평온했다. 환영한다, 아가야. 이제 우리 다섯 식구끼리 지지고 볶고 잘 살아 보자꾸나.
#육아일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동네 뒷산 올랐다가 "심봤다" 외친 사연
  2. 2 '파묘' 최민식 말이 현실로... 백두대간이 위험하다
  3. 3 1심 "김성태는 CEO, 신빙성 인정된다"... 이화영 '대북송금' 유죄
  4. 4 채 상병 대대장 "죗값 치르지 않고 세상 등지려... 죄송"
  5. 5 제주가 다 비싼 건 아니에요... 가심비 동네 맛집 8곳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