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에 기겁하던 여자 1호, 보름 지나자...

[서울처녀 제주착륙기 22] 제주도에서 벌레 퇴치하는 방법

등록 2013.07.28 18:10수정 2013.12.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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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요강을 사야겠어요…."
"언니, 여기 집게벌레 있어요!"


낯선 그녀와 시작한 '동거'. 그녀는 시작부터 내 가슴을 후벼파는 말들을 쏟아냈다. '처음 며칠 간은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지나면 익숙해진단다'라든지, '나도 벌레가 몹시 무서워, 나에게 잡아달라고 하지 말아줘'라는 말들은 입 속에서만 맴돌다가 차마 나오지 못했다. 결국 며칠 안 가 다 버려야 했던, 집주인으로서의 체면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제주도가 좋아서 살고 싶지만 집 지을 돈은 없는, 제주에 정착하고 싶지만 연고가 없어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머무는 동안 정착에 대해 고민하면서 제주도에 대해 공부하고 적응하는 집이다. 한경면 저지리라는, 육지사람들이 좋아하는 해안가가 아닌 중산간에 위치해 있다. 협재해수욕장까지는 차로 15분거리다.

벌레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던 방법, 의외로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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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까운 편인 한림오일장에 묘종을 사러 나간 길,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어르신들이 쿨하게 우리의 점심값까지 쏘셨다. ⓒ 조남희


농가주택을 임대하고 3주간의 공사를 거쳐 방 네칸을 만드는 일이 끝난 지 며칠 안 되어 '여자1호'가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그녀를 기다린 것은 언제든 집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제주도의 막힘없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만은 아니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 생기는 불편함, 오래된 농가주택인데다 집 뒤에 밭이 있어 온갖 벌레들이 나온다는 것, 버스편이 많지 않아 멀리 나갈 때는 마음 먹고 나가야한다는 것 등등. 그녀에겐 육지에서 겪어보지 않은 생경한 불편들이었다. 그녀보다 이 집에서 며칠간 먼저 살아본 나라고 해서 이곳에서 부딪히고 있는 불편함들이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에 살던 대평리의 신축 건물집과는 또 달랐다.


다른 것은 불편해도 참겠는데... 벌레만큼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지게 했다. 집게벌레, 지네, 파리, 모기, 나방, 거미 등등 그 외 이름을 알수 없는 것들이 밤만 되면 종합선물세트로 들어와 우리를 괴롭혔다. 벌레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고양이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고, 가끔씩 손바닥 반만한 거미를 발견할 때마다 두 여자의 비명이 저지리의 밤공기를 가르곤 했다.

참다못해 방역 서비스에 대한 결단을 내리기 직전, 우습게도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얻었다. 일손이 필요하다는 지인의 삼채 밭에 나가 삼채를 낫으로 베는 한편 검질(잡초를 없애는 일)을 하는데, 밭이다 보니 다양한 벌레들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벌레가 무섭다고 밭일을 멈출 수 없는 노릇이다. 벌레가 눈에 띄어도 묵묵히 삼채 베는 일을 계속 했다. 게다가 전날 밤 늦게까지 이어진 집들이로 몇 시간 못 자고 나온 터였다. 졸려서 미칠 지경이긴 한데 밭 한가운데 잘 곳이 있을 리 만무하니 그대로 그늘을 찾아 쓰러져 자면서 생각했다.

'그냥 벌레랑 같이 사는 거구나, 익숙해지면 되는 거였어.'

"다음엔 한라산 소주 몇 병 들고 올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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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병원장님이 삼채밭에서 검질을 하고 있다. 검질은 제주도에서 잡초를 없애는 것을 뜻한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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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 후 밭에 앉아 먹는 식사는 역시 맛이 다르다. ⓒ 조남희


나와 동거를 시작한 그녀 또한 '모든 건 적응하기 나름'이란 걸 터득한 걸까. 육지와 달리 제주도에 마른 장마가 계속되면서 벌레가 한결 줄어들기도 했지만, 보름만에 전기 파리채로 말 없이 집안의 모든 벌레를 해결하는 능력자가 된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그래서 이제 내가 외친다.

"유라야, 여기 벌레!"

그녀는 심지어 혼자 나갈 일이 있을 때 버스시간이 맞지 않으면 엄지손가락을 들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도 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웃집 어르신들이 육지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우리 집 사람들이 어르신들에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사를 들어오기 전에 장사가 워낙 잘 되던 공간이라, 공사기간 내내 주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여기 무슨 장사할 거예요?"라는 질문이 매일 쏟아졌다. "저희는 그냥 이 마을에서 살러 왔어요"라고 답을 해도 도통 믿지 않는 눈치였다.

밭일을 하고 얻어온 삼채를 다듬어 들고 이웃집 어르신들에게 가자 달달한 냉커피를 내오셨다. 이후 60년을 이 마을에서 사신 어르신의 '레알 마을 스토리'가 이어졌다. 어느 집 인심이 사나운지, 브로콜리 농사를 지었는데 가격이 맞지 않아 죄다 내다 버려야 하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염치없지만 머릿속엔 '앞으로 브로콜리는 사먹을 일이 없겠군'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음엔 한라산 소주 몇 병 들고 올게요~"라면서 자리를 뜨자 할아버지가 미소를 감추지 못하신다.

어느날은 집 앞에 커다란 호박 두 덩이가 놓여져 있기에, '이게 웬 굴러 들어온 호박이냐' 싶었는데 옆집 할머니가 놓고 가신 거였다. 알고 보니, 집주인인 나 모르게 '여자1호'가 옆집 할머니에게 수박을 갖다드리고 왔단다.

다음 달에 들어온다는 여자2호가 벌레를 보고 소리를 지르면, 나는 조용히 밭일을 시킬 생각이다. 그때는 세 여자가 젊은이는 없고 박물관만 많은 이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타주는 달달한 냉커피를 얻어 마시고 있을 것이다.
#제주도 #저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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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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