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도시 페트라의 신전, 알 카즈나(Al Khazna)
김동주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존스 박사는 전설 속에만 등장하는 '성배'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다가 서아시아의 오지, 이곳 페트라의 알 카즈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성배를 찾는다. 바위틈 사이로 눈부신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알 카즈나는 실제로도 참으로 영화 같았다.
어둡고 굴곡진 협곡의 끝에 보일 듯 말 듯 오묘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알 카즈나는 마치 지금까지 걸어온 협곡이 무대의 장치가 아닌가 생각이 들만큼 크고 정교했다. 난 내 여행이 이 페트라의 발견과 함께 끝이 될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 카메라 셔터를 마구마구 눌러댔다. 그리고 그날 나는 여행을 떠난 뒤 처음으로 앵글이 넓은 DSLR을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높이 43m에 달하는 알 카즈나는 페트라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기둥을 세워 층층이 쌓아 올린 것이 아니고 거대 바위벽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어진 건물이다. 알 카즈나가 '보물창고'라는 뜻임을 감안하면 어쩌면 이 안에서 성배를 찾는 과정을 그린 <인디아나 존스>는 마냥 허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거대한 벽을 깎아 만든 웅장하고 화려한 알 카즈나의 정면에는 몇 개의 둥근 기둥과 섬세한 조각 상들이 있는데 모두가 나바테안들의 신화와 죽음에 관련된 것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 보니 화려한 외벽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마치 누군가가 몽땅 쓸어간 것처럼. 괜히 '보물창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 너머로 들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페트라 유적의 벽 여기저기에는 총탄자국이 많이 발견되었으니 나바티안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알 카즈나 역시 도굴꾼 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내부는 텅 비었지만 알 카즈나 자체가 '보물'이니 어쩌면 창고는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