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20층 거대도시... 모두 닭 때문이야~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21] 이상한 나라의 지하 도시, 데린구유

등록 2013.10.04 10:06수정 2013.11.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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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낯익은 풍경

카파도키아의 중심인 괴뢰메에서는 새벽에 잠을 깨는 일이 허다하다. 이른 아침부터 도처에서 들려오는 '푸쉬쉭' 하는 거인의 숨소리는 결국 나의 단잠을 깨웠다. 오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해는 이미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쯤 바깥에서는 몸집을 잔뜩 부풀린 벌룬들이 하나둘씩 떠오를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외출 시간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았으니 더 자도 되겠다 싶어 눈을 감으려고 하는 그 순간, 갑자기 거인이 눈앞을 가로막은 듯 시야가 까매진다. 누군가를 가득 태운 풍선이 창문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벌룬투어를 마치고 난 카파도키아는 그 신비로움을 잃기는커녕 더 커져만 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카파도키아의 모든 투어를 다 해보자 싶었던 나는 다시 투어에 나섰다. 이름하여 그린투어. 이미 구면이었던 투어가이드 알리는 나를 보자마자 '밥뭇나?'라며 반갑게 인사한다. 배우는게 참 빠른 친구다. 앞으로 그가 만나게 될 한국사람들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투어에 참가하지 않을까.

막 차량이 시동을 걸었을 때 알리는 뜬금없이 카메라를 점검하라는 얘기를 했다. 그의 이런 모습이 좋았다. 무엇을 보게 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정말이지 막연한 예고편. 덕분에 첫 번째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나는 창 밖을 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차에서 내려 우리가 걸어 오른 곳은 괴뢰메 인근의 낮은 언덕이었다. 카파도키아의 기이한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그곳에 오르고는 그가 왜 카메라 얘기를 꺼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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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언덕에서 바라 본 괴뢰메의 풍경 ⓒ 김동주


'파노라마 언덕' 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곳에는 바라보는 괴뢰메 마을의 모습은 그야말로 독특했다. 고깔모자 마냥 뾰족하게 솟아오른 지형들 사이사이로 마치 레고 장난감처럼 자리잡은 색채가 없는 낮은 집들은 수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이 예술작품과 묘하게 어울린다. 만약 괴뢰메 마을을 화려하고 크게 치장했었더라면 이 아름다운 풍경은 그저 인공도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내가 특별히 옛 것이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미래의 신도시는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파노라마 언덕에서 카메라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우리는 차량에 올라 본격적으로 '그린투어'를 시작했다. 왜 이름에 그린이라는 말이 붙었냐고 물었더니 알리는 이번에도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며 묘한 미소를 짓는다. 사실 카파도키아는 '녹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바위와 흙으로만 이루어진 이 기이한 땅 어디에 그런 생명의 기운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차는 어느새 괴뢰메를 벗어나 어느 계곡에 도착했다. 으흐랄라(IHLARA)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그곳은 이상하게 녹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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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의 유일한 '그린', 으흐랄라 계곡 ⓒ 김동주


마치 지그재그로 썰어 놓은 것 같은 협곡을 따라 빼곡히 들어서 있는 푸른 나무들. 누군가 일부러 옮겨 심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의 황무지들과 달리 이곳만 녹색이다.


"알겠지? 왜 그린투어인지."

으흐랄라 계곡은 봄기운이 완연한 한국의 어느 뒷산에 오른 것 같은 풍경이다. 한쪽으로 흐르는 개울물과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나무들. 특이할 것이라고는 없는 풍경이지만 뜻 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동네 뒷산의 풍경은 어쩐지 정겹고 신나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 신나는 기분에 누군가 '으흐랄라'라는 이름을 붙였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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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익숙한 풍경들 ⓒ 김동주


두어 시간 정도를 걷자 익숙한  풍경이 끝나고 다시 뾰족 솟아오른 괴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있는 곳에 사람이 살 지 않았을 리 없다. 계곡을 조금 벗어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괴석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개미집 같은 모습이다.

"여기도 스타워즈에 나왔던 곳이야. 실제로는 수도원이었지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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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만 우뚝 솟은 셀리메 수도원(Selime Monastery) ⓒ 김동주


알리의 말에 따르면 마치 누가 일부러 지은 건물처럼 홀로만 우뚝 솟아 있는 이 정체불명의 돌덩어리는 실제로는 피난을 왔던 선교사들이 살던 셀리메 수도원(Selime Monastery)이라고 한다. 물이 흐르고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긴 하지만 자리잡은 터 치고는 참으로 묘하다. 이 솟아오른 돌덩어리를 보자마자 집으로 쓸 수 있겠다고 느꼈을까.

여기저기 뚫려있는 구멍은 각자의 방으로 사용하던 구멍이었을 텐데 가까이서 보니 과연 사람보다는 어느 행성의 외계인들이 살법하다. 천정에 구멍을 뚫어 창과 환풍구로 사용하고 벽에는 홈을 파서 비둘기의 집으로 사용했단다. 이들에게는 비밀리에 통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비둘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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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메 수도원의 모습들 ⓒ 김동주


나즈막한 기둥을 따라 깨알같이 새겨놓은 성인들의 그림과 벽화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던 일종의 시위였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저 덧없는 시간들이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그들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동굴에서 빠져나와 바라보는 풍경이 이토록 눈부시니 말이다.

해가 뜨지 않는 지하도시

셀리메 수도원을 지나쳐 우리가 찾아간 곳은 네브세히르(Nevsehir) 라는 외딴 마을이었다. 총 가구수가 100여 채가 채 안 될 정도로 작은 시골마을인 이곳이 딱 한 번 전 세계에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적이 있었다.

1960년의 어느 날, 마을에서 닭 한 마리가 작은 구멍 속으로 빠졌는데 나오지 않자 주인은 땅을 파기 시작했고, 뜻밖에도 그 아래에서 사람이 충분히 들고도 남을 정도의 큰 지하동굴이 발견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시작되어 인근의 지하도시가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했고 유네스코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민간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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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지하도시, 데린구유(Derinkuyu) ⓒ 김동주


어쩐지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좁은 통로에 내려서니 지하실 특유의 끈적끈적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마치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땅굴과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이 지하동굴은 무려 3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지하도시 데린구유(Derinkuyu)다.

처음에 누가 지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역사에 처음 기록된 순간은 역시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왔던 기독교인들에 의해서다. 기원전 5~6세기 경에 정착한 그들은 미로처럼 얽힌 지하도시에 학교와 교회, 심지어 와인창고 까지 지어가며 본격적인 지하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그 장소에 발을 디디고 있지만 좀처럼 믿기 힘든 이야기다. 도대체 어떻게 제대로 된 빛도 없이 3만 명이나 살 수 있을 큰 도시를 땅속에 만들 수 있었을까. 개미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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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55m 깊이 데린구유의 단면도 ⓒ 김동주


알리가 나눠준 지도에 의하면 데린구유의 깊이는 55m, 무려 지하 20층이다. 노랗게 표시된 부분만 공개된 부분으로 이는 전체의 3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땅 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건물을 쌓아 올릴 동안 그들은 바로 그 아래에서 이 어마어마한 지하도시를 지었던 것이다. 지반 아래로 흐르는 지하수로 식수는 해결되었겠지만 대체 어떻게 살아나갔을까. 닭이 빠졌다는 그 환풍구 구멍 말고는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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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닭이 빠졌던 구멍은 데린구유의 환풍구였다 ⓒ 김동주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통하는 입구는 단 하나다. 숨어사는데 익숙했던 그들은 통로 사이에 여기저기 맷돌모양의 돌문을 만들어 두었는데 유사시에 이를 막아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차단했다고 한다. 유사시에 돌문을 밀어 통로 중간을 막아버리면 길이 차단되어 도시는 보호되는 것이다. 차단이라기보다는 고립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입구는 하나니까 말이다.

가이드가 뱉은 말들은 사방의 벽에 반사되어 여기저기서 메아리를 만든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판다면 이 깊은 동굴 어디선가 길을 잃을 듯한 기분에 나는 바짝 신경을 세우며 지하도시를 탐험했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통로와 크기가 제 각각인 터널을 보면 처음부터 이토록 큰 규모의 도시는 아니었을 것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 온 피난민들이 늘어나면서 옆으로 아래로 계속해서 파 내려가다 보니 지금처럼 복잡한 미로의 형태를 띠었을 것이다. 누군가 매달아 놓은 백열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좁은 터널을 지날 때면 왠지 모르게 위화감에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들은 과연 이 지하도시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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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개미굴 같은 지하도시, 데린구유 ⓒ 김동주


불행히도 한 번 이곳에 든 피난민들은 두 번 다시 지상으로 나오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지하도시 깊숙한 곳에 나름대로의 묘지를 만들어 죽은 사람들은 묻었다고 한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사지로 들어오게끔 만든 존재인 신이 위대한가. 그렇지 않으면 땅을 파 도시를 짓고 삶을 이어나가고자 했던 인간이 위대한가. 바라는 세상을 바로 머리 위에 두고서 살아가는 기분이란 어땠을까. 알 수 없는 문제다. 어쩐지 보아서는 안 되는 곳 같은 느낌이 들었던 데린구유. 마냥 그리워 할 수도, 시선을 뗄 수도 없는 지하도시에서의 덧없는 시간들이 지나간다.
#데린구유 #지하도시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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