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좌파 청년의 인생론 "익숙해지는 걸 거부하라"

[목수정이 만난 파리의 생활좌파들 ②] 솔렌 페랑도(Solen Ferrando)

등록 2013.10.30 14:09수정 2013.11.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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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좌파가 뭐란 말인가? 그것은 리영희 선생의 말처럼 과연 사회를 지탱하는 한쪽의 날개인가? 아니면, 각자의 인간이 취하는 하나의 선택 가능한 삶의 가치인가? 야만의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선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주어야만 하는 필수불가결한 정치적 태도인가?

그래서 난 묻기로 했다. 한 명의 위대한 스승이 아니라 수십 명의 내 주변에 존재하는, 일상의 공간에서 발견되는 좌파들에게. 대체 좌파란, 당신들에게 좌파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더불어 10년째 발 딛고 있는 이 파리라는 공간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 가진 필터를 빌려, 이들이 전망하는 미래와 이들이 들이마시는 오늘, 아파하거나 그리워하는 과거를 들여다보고 호흡하고 싶은 소심한 야심도 있음을 숨기지 않겠다. - 기자 말

반자본주의신당(NPA)의 한 당원을 통해 스물한 살의 솔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떠나온 한국의 그 당과 당명(~신당으로 끝나는 그 어정쩡함에서)이나 어쩐지 잘될 줄 알았건만 갈수록 좁아드는 위상 면에서 유사한 면이 많았기에, 유달리 연민의 시선이 자주 가 닿았던 바로 그 당. 가장 센 좌파의 폼을 잡느라 염세주의의 두터운 외투를 잔뜩 뒤집어쓴 인물들이 많을 법한 그 당에, 유난히 촉촉하고 보드라운 감수성의 한 젊은 당원의 이야기가 등장하곤 했으니, 그가 바로 솔렌 페랑도였다.

 반자본주의신당 당원이자 문화행정을 공부한 스물한 살의 청량한 좌파, 솔렌 페랑도.
반자본주의신당 당원이자 문화행정을 공부한 스물한 살의 청량한 좌파, 솔렌 페랑도. 목수정

이 파릇하다 못해 시린 청춘

사회당사 담벼락에 장 마크 에로(Jean-Marc Ayrault) 총리를 비난하는 낙서를 하다 경찰에 붙잡혀 유치장에서 사흘간 구류를 살고, 재판을 받는 수난을 치르는 악동 취향의 활동가이면서도, 랩에서부터 클래식 음악, 심지어는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까지 멈추지 않는 뮤지션. 게다가 나와 같은 관심 영역-문화행정-을 공부하며 진지하게 정치적 사고와 미래의 직업을 조율해보고 있는 이 발랄한 청년.

토막토막 들어온 이 친구에 대한 몇 가지 스토리에서는 트로츠키 정당의 유훈을 어깨에 둘러멘 엄숙주의의 그림자를 느낄 수 없었다. 이 인물은 또 무엇으로 빚어진 존재란 말인가? 한 번 만나보자 결정한 후, 그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사흘 남짓.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하랴, 공부하랴, 좌파활동 하랴….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는 일이 쉽지 않은 빠듯한 생활의 자취생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그를 우리 집으로 불렀다. 밥도 든든히 마련해서 대접하고, 이야기도 들을까 하고. 

그런데 그가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솔렌이란 이름은 필시 태양을 뜻하는 단어 '솔레이(Soleil)'에서 유래한 이름이었을 거란 당연한 사실이 비로소 머리를 스친다. 도대체 구김살이라곤 찾아볼 길이 없는, 태양의 아들같이 밝디밝은 청년.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한 번도 경제적인 곤궁함이라곤 겪어본 바 없는, 굳이 말하자면, 번듯한 부르주아 집안의 자식이었다.


이런 얼굴을 한 청년이 졸부의 아들일 리도 없겠지만, 고난과 비참을 겪어봤을 것 같지도 않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혼자 지내고 있는 파리의 아파트는 아버지 소유이고, 고향 블루아(Blois)에서 사는 아버지는 그 지역의 관광안내센터 소장이며 어머니는 첼로와 피아노를 연주하고 합창단을 지휘하며, 음악치료도 하는 전문 음악인이다.

솔렌은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얼마 전까지 파리 시가 운영하는 문화공간 '104'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바로 며칠 전, 같은 공간에 정직원으로 취직되어 적지 않은 월급까지 받고 있단다. 3학년까지 공부를 하고 휴학한 것은, 학비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행정 분야의 일이라는 게 어떤 건지 현장 경험을 미리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좌파는 반드시 뻘밭에서만 태어난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적어도 그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를 불편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고 내 한편으론 믿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래야만, 사람은 자꾸 들썩이고 뒤척이며, 새로운 모색을 하는 법이니까.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 하나 발가락에 박혔던 일 없어 보이는 이 청년에게, 그리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좌파의 기원은 무엇이냐고.

첫 번째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아들

"물론 나의 기원은 나의 부모님이죠".

솔렌은 답한다. 세상 모든 사람의 출발점은 당연히 그의 부모일 터이나, 솔렌이 가진 이 기운 밝은 활동가의 근원을 제공한 사람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였다.

솔렌의 아버지 알랭 페랑도(Alain Ferrando)는 프랑스 최초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다. 68세대로, 70년대 초, 국가가 부여하는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싸움에 나섰을 때 그의 나이는 지금 솔렌의 나이와 같았다. 성인남자에게 부여되는 1년의 병역 의무를 지기 싫은 사람들에게 공공영역에서 좀 더 긴 기간을 일하는 것으로 군대를 대신하는 길이―이를테면 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해외 주재 프랑스 학교에서 가르친달지, 뭐 이런 신나는 대체복무까지 다수 포함―비교적 넓게 열려 있었기에 당시까지만 해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랭 페랑도는 그마저도 거부한다. 국가가 군대에 갈 의무를 개인에게 부과한다는 것. 그 근본적인 생각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에 대체복무도 더불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머리를 길게 기른 전형적인 68 직후의 히피 청년이던 알랭 페랑도의 군대에 대한 저항에 뜻을 지지하는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긴 법정 투쟁에 들어갔다.

같은 시기, 프랑스의 한 산간마을에 군사기지를 짓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투쟁이 전개된다. 이른바 평화운동의 전설이 된 라르작(Larzac) 투쟁. 이 투쟁에 세상의 모든 반전평화 운동가들이 집결한다.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Jose Bove)도, 그리고 알랭 페랑도도. 군대를 더 짓는 일, 군대에 멀쩡한 청년을 의무적으로 보내는 일 모두를 평화주의자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양떼를 몰고 파리 에펠탑까지 7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세계의 평화주의자들이 함께 행진해갔던 일은 두고두고 전설로 남아 있다. 몇몇 마을주민들이 시작한 이 투쟁이 결국 6만여 명이 함께한 거대한 평화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사회당 대통령 후보 미테랑이 당선되면 군사기지 건설 계획을 철회하겠노라 약속하고, 그의 당선을 위해 모든 운동가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미테랑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압박하면서, 결국 이들은 미테랑의 당선과 함께 승리를 거둔다.

더불어 알랭 페랑도의 법정 투쟁도 승리를 거두어 그는 병역의 의무를 물리친 첫 승리자가 된다. 이후 많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보호받던 끝에, 2001년 드디어 프랑스는 모병제 전환의 획기적 개혁을 감행한다. 아버지가 청년시절에 쟁취했던 거대한 두 개의 승리. 어쩌면 이것이 솔렌의 등 뒤에서 빛나던 그 눈부신 태양의 정체였는지도 모르겠다.

 1974년 라르작 투쟁에 참석한 미테랑.
1974년 라르작 투쟁에 참석한 미테랑. 목수정

이 싸움은 반드시 이긴다, 아무도 진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음악가이면서 동시에 오랜 생태주의자인 어머니의 영향도 받았다. 솔렌은 대체의학, 유기농업, 반핵운동 등 모든 환경을 둘러싼 생태주의적 삶의 태도와 환경운동가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요즘 솔렌이 가담하고 있는 신공항 건설 반대운동의 참여 동력은 본질적으로 어머니로부터의 뿌리에서 온 것인 셈이다.

이미 공항이 하나 있는 낭트 주변에 대규모 신공항을 건설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노트르담 데 랑드(Notre dame des Landes) 투쟁에 솔렌이 나섰을 때, 그의 아버지는 말했다.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그러나 말리진 않았다. 바로, 아버지가 솔렌의 나이였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낭트의 신공항 건설 계획과 이에 맞서는 반대 세력의 투쟁은 이미 15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긴 싸움이다. 낭트 시장 출신인 장 마크 에로가 사회당 정부의 총리로 기용되면서, 소강상태에 있던 이 프로젝트는 다시 활력을 얻었고, 이와 더불어 이에 맞서는 투쟁의 힘도 가열되었다.

이 투쟁에 합류하기 위해 낭트로 향했던 솔렌은 여기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얻고 돌아왔다고 술회한다. 이탈리아·노르웨이·스위스….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수많은 낯선 운동가 4만여명이 함께 인간 띠를 이루며 공권력에 저항하고, 밤에는 벌판에 텐트를 함께 치며, 오로지 성장과 속도와 삽질에 몰입하는 무리들과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일은 마치 광적인 축제에 참여하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원시의 땅에서 인간들이 그들의 땅과 그 땅을 근거로 해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지키기 위한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싸움이었다.

"난 대책없는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반드시 이긴다. 아무도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 돌아와, 끓어오르는 분노는 사회당 담벼락에 갈겨쓴 '에로포트(Ayrault-port)' 사건으로 표출된다. 에어포트 대신 총리의 이름인 에로에 'port'를 붙여서 에로포트라고 부르며, 공항 건설에 매달리는 이 우매한 정부를 비웃어주려 했다. 그래피티가 예술로 취급되고, 카르티에 재단이라는 고급스런 공간에 이 거리의 낙서들을 위한 대형전시가 마련되는 마당에, 이 정도의 낙서를 썼다고 유치장에서 사흘간 구류를 살고, 재판을 받게 될지는 몰랐다.

세월은 무섭게 후퇴했다. 그의 아버지가 스물한 살이던 때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솔렌에게 내려진 죄목은 공직을 수행하는 주요 책임자에 대한 모독죄. 결국 벌금형을 받았고, 부모님과 노트르담 데 랑드 투쟁을 함께한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었다. 물론 이 형벌은 그의 투지에 작은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그가 싸워야 할 대상들의 생리를 확인하고, 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뿐이다. 

최초고용계약 키즈

"중·고등학생 시절엔 언제나 문제아였어요."

솔렌을 문제아로 만든 건, 세상에 대한 조숙했던 문제의식이었다. 군대를 가야 하는 의무에 복종할 수 없었던 아버지처럼, 솔렌은 학교가 아이들을 질서라는 이름으로 가두는 것에 저항했고, 늘 벌을 받았다. 학교에서 벌을 받는 아이들의 무리에서 익숙하게 이민자의 자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저항의 불씨를 나누어 가졌고, 그들의 문화에 익숙해졌다.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이민자들이 사는 아파트단지가 있었다. 거기에 사는 아이들에게서 랩 음악을 배웠다. 그 가사를 알기도 전부터, 그 안에는 뭔가 폭발적인 것이 들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랩 음악은 지금까지도 솔렌에게 저항의 피를 끓게 하는 원초적인 힘을 제공한다.

그러다가 중학생이던 2006년의 어느 날, 학생들 사이에 거대한 저항의 물결이 일었다. 당시 사르코지 정부가 최초고용계약(CPE:Contrat Première Embauche)을 청년 고용을 위한 부양책이랍시고 내놓았던 것이다. 26세 이하의 청년을 고용한 기업은 2년 안에 그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음껏 해고해도 좋다고 하는, 청년들에 대한 무한대의 고용 유연성(!)을 기업들에 '팍팍' 제공하는 이 법은 고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는 학생들의 활화산 같은 분노에 부딪힌다.

2주일간 프랑스 전역에서 강하게 타올랐던 이 불꽃들은 최초고용계약을 완벽히 불사르는 데 성공한다. 도미니크 드 빌팽(Dominique de Villepin) 총리는 이 법안을 거두고, 머지않아 사임하기에 이른다. 바로 그때 솔렌은 중학생 신분으로 친구들과 집회에 참여하여 훨훨 날아다녔다. 고등학생들이 뒤돌아보며, 함께 거리에 나선 꼬꼬마 중학생들의 출현을 눈으로 반겨주었다. 완벽한 승리의 짜릿한 첫 경험, 연대의 힘, 사회참여의 카타르시스가 온몸으로 스쳐갔다. 고등학교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임기 중에 무려 6만여명의 교원 수를 감축한 사르코지는 이번에도 솔렌을 거리로 나서게 한 장본인이었다. 솔렌이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감원이 이뤄졌고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거리로 나섰다. 그때는 솔렌과 그의 친구들뿐 아니라 200여명이 함께했다. 많은 학생들이 파업을 주도하는 학생들을 오해했다. 이들이 교육에 대해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교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수업을 방해하는 것으로.

그때 솔렌은 알았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에게 지금의 저항, 학교를 파업하는 것은 수업을 받고 싶은 아이들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교육이 정말 중요한 문제이며, 교사들이 감원되는 것은 교육의 질적 향상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설득했다. 결국 그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끝내 이해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두 사건은 솔렌과 또래 학생들에게 정치의식의 씨를 뿌린 계기가 되었다. 솔렌은 "그때 나보다 훨씬 더 앞서 있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벌써 그들보다 한 발 늦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웃으며 당시를 술회한다.

대학에 가서 잠시 전국프랑스학생연합(UNEF)를 기웃거리다 찾은 곳은 반자본주의신당(NPA)이었다. 고교 시절, 새로 창설되는 반자본주의신당의 포스터를 눈여겨봐둔 기억이 있고, 그 어떤 당보다 생각에서 앞서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말에서 모순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세상 모든 기업주가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솔렌은 생각했다. '좋은 기업주, 나쁜 기업주…… 그들이 어떤 기업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착취하는 사람이 있고, 착취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홍보와 IT 분야의 전문가로 일하면서, 승승장구해왔다. 아버지는 이제 부르주아의 생활에 안착했고, 세상과 수입이 그에게 제공하는 편안한 삶에 흡수되어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근본적으로 휴머니스트이며 좌파의 이상에 가깝지만, 더 이상 현실 정치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렇게 무뎌지는 부모를 보면서, 솔렌은 다짐한다. '나는 결코 세상의 안락함에 흡수되어버리지 않겠다'고. 부모의 뿌리로부터 나왔지만, 이제 솔렌은 새로운 가지를 죽죽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너에게 대체 좌파란 무엇인가?

 라르작 투쟁의 스토리를 영화로 담은 다큐영화 「모두, 라르작으로」의 포스터.
라르작 투쟁의 스토리를 영화로 담은 다큐영화 「모두, 라르작으로」의 포스터. 목수정
이 파릇한 영혼에게 부모를 훌쩍 뛰어넘어 더 멀리 왼쪽으로 달려가게 하는, 이 파도처럼 당당한 열망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했다. 너에게 대체 좌파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첫째, 좌파는 익숙해지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다. 나는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사회의 시스템에 완전히 흡수되어서 저항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아주 편하고 안락한 삶을 우리에게 약속한다. 우리는 더 이상 화내고 인상 쓰지 않아도 된다.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고 매우 매끄럽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익숙함을 계속 밀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스스로 깨닫는 순간, 그것을 밀어내야 계속해서 새로워질 수 있다. 바로 그렇게 해야만 우린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나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그건 계속해서 젊게 존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젊은 정신만이 활동가로서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

둘째, 좌파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현상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 이외의 또 다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반대만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그 반대하는 사실의 힘을 키워주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지평으로의 가능성을 찾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노동문제만이 진정으로 다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오로지 경제문제에 대한 접근만이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해법이 있는 곳이라는 사고보다,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문제, 생태문제를 통한 접근을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은 단단한 의지를 가진 좌파들을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좌파 활동가는 그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샘물을 다양하게 가져야 한다. 이것을 다양화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우리는 단 한 가지의 투쟁에 몰두하게 된다. 이건 아주 전형적으로 위험에 빠지는 방법이다.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삶의 지혜가 송골송골 맺힌 튼실한 명언들을 자근자근 내게 들려주는 사람은 파란만장한 활동가의 생애를 살아온 백발노장이 아니라, 고작 스물한 살의 청년이란 사실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솔렌의 아버지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참여를 허락하는 자신의 물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 결국 혁명도 부르주아들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었다. 그러니 너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너 자신도 부르주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결국 그러한 물적 토대를 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싸워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 솔렌은 그리하여 사회 혹은 부르주아라고 하는 사고의 틀, 그 완전히 조직된 감옥에 갇히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모든 틀들을 다 깨부수기를 희망한다.

기 드보르(Guy Debord)가 "우리는 결코 일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할 때 그가 말한 방식의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강제적인 의미의 '일'을 갖는 것에 대해 솔렌은 저항하기로 다짐한다. 월급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를 길들이는 가장 무서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또한 자신이 부르주아이기 때문에 하는 배부른 이야기일지 모른다고 자기검열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차곡차곡 나오는 월급을 받기 위해 바둥대며 노력하지 않겠다"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그의 사촌형은 저소득층을 위한 보조금(RSA)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여전히 제국주의자 행세를 하며 그들의 피를 빨아대는 프랑스를 고발하는 전방위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월급의 노예가 되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은 최소한으로 국가로부터 받아서 쓰고, 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활동가로서의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 그는 사실 뛰어난 학생이었고, 엔지니어로 생활하던 20대에는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신념에 따라 살기 위해 그는 지금 방식의 삶을 택했다. 40대 중반에 이른 사촌형의 역동적이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삶을 보며, 솔렌은 자신이 꿈꾸는 삶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한때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아버지가 '착한 기업가' 운운할 때, 솔렌의 머릿속에는 저토록 비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지경으로 가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빨간불이 작동했다. 아버지의 발언은 가능한 한 왼쪽으로, 결코 느슨해지지 않기 위한 '안전지대'로 그를 이끌었다.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 기관지.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 기관지.구영식

길고 단단한 투쟁을 위해, 잠시 멈출 수 있는 용기

솔렌이 찾아낸 안전지대란 바로 반자본주의신당이었다.

"나에게 당은 해방의 공간이다. 사실 이 부분은 어떤 입장에 서서 활동가로 투쟁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지속적으로 투쟁하는 건 실제로 지치는 일이기도 하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또 물질적으로도 바닥에 이르기도 한다. 그럴 땐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잠시 멈출 수 있는 그 용기를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잠시 멈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하지 않으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싸우다가 영영 활동가의 삶을 떠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각각의 문제에 대한 단단한 토대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이어지는 사건들에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쏟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보다는. 우리가 한순간의 활동에 온힘을 쏟은 후 후퇴해버리면, 옆에서 함께하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운동권 원로의 말씀 같은 주옥같은 명언들이 이어진다. 뜻밖에도, 솔렌이 최근 가장 관심 갖는 주제는 페미니즘이다. <남자가 되기를 거부하다, 성욕을 끝내기 위해(Refuser d'etre un homme, pour en finir virilite)>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존 스톨텐버그(John Stoltenberg)가 쓴 책으로, 올해에야 프랑스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 엄청난 책을 읽은 후, 그의 중심 관심사는 페미니즘이 되었단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에 미끄러져 들어갔던 내가 펄쩍 뛰며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당신이 현실의 삶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문제를 맞닥뜨리지 않고, 단지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그리될 수 있는가?"라고.

"바로 그런 차원에서 당은 나에게 완전한 해방구인 셈이다. 때로는 트램펄린 같기도 하다고 느낀다. 이 작은 당 안에는 수많은 주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좌파들이 존재한다. 바로 그들에 의해 나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접하고, 새로운 문제에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다. 당이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당은 나에게 새로운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난 책을 그렇게 빨리 읽는 편이 못 된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우린 마치 우리가 모든 정보에 접근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각각의 첨예한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활동가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다 보면, 우리는 책을 읽을 때나 컴퓨터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보다 훨씬 풍요롭고 역동적이며 살아 있는 진실들을 접하게 된다. 2년간의 당 생활을 통해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알고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느 날 기성세대가 되어서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지금처럼 좌파 정당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면, 난 아마도 심각한 욕구불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솔렌에게 당은 수천가지 보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지혜와 경험의 풍요로운 광산이었다. 당이 얼마나 더 많은 표를 얻고, 당에서 어떤 정파가 권력을 갖는지 따위는 전~혀 관심 밖이다.

"여기엔 절대 선거는 하지 않는 아나키스트도 있고, 프랑스 녹색당을 참을 수 없어 하는 극단적 생태주의자도 있으며, 노동자 투쟁당을 떠나온 사람들,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파들이 공존한다."

프랑스의 각종 좌파 그룹에서 성에 안찬 사람들이 더 래디컬한 생각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흘러온 곳이 바로 반자본주의신당이란 거다. 따라서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대체로 선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생각도 많고 갈래도 많은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렌에게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든다. 당은 당원들에게 특별히 어떠한 활동이나 행동을 지시하지 않는다.

당원들끼리 모여서 서로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고, 영향을 끼치며, 각자의 판단으로 행동한다. 반자본주의신당의 당원들은 그래서 매우 독립적이며, 기본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엘리트다. 반자본주의신당은 그에게 한없는 문제와 토론을 제공해주는 풍성한 샘물이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당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좌파는 끊임없이 새로운 불편함을 찾아내는 사람이기도 하므로.

남미로의 여행, 그리고

현재의 직장 '104'와의 계약이 끝나는 내년 6월, 솔렌은 홀로 남미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여행의 목적은 현지 음악들을 녹음하고, 또 남미의 정치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기 위함이다. 영어를 기본적으로 쓰겠지만, 소통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페인어도 공부 중이다. 음악은 그의 삶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고, 랩 음악은 부모님 이외에 그에게 가장 강렬한 정치적 영감을 제공한 원천이었다. 그는 문화(특히 음악을 중심으로 한)와 정치를 연결 지을 수 있는 고리를 찾고 있다. 몇몇 친구들과 그룹을 결성하여 계속 음악적 실험을 모색한다.

파리에 사는 동안 세상의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을 (비록 아버지의 소유지만) 자신의 아파트에서 맞이했다. 남의 집에 있는 소파 하나만 빌려서 경비를 최소화하는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을 그는 끝도 없이 받아들였고, 그 자신도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여행할 계획이다. 남미의 정치활동가를 찾아내고, 그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집을 다녀간 수많은 친구들과 당 그리고 국제적인 투쟁의 장에서 만난 수많은 활동가들을 통해 이미 만나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들의 리스트는 빼곡히 들어차 있다.

솔렌의 남미 여행은 의대 공부를 마치고 모터사이클로 여행한 체 게바라의 여행을 연상시킨다. 지금으로선 여행을 마친 후 혁명에 나서는 일정보다는 다시 문화행정 석사과정에 등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문화와 정치적 의지를 연결하는 것이 그가 꿈꾸는 직업적 야심이다. 엘리트들이 정한, 민중들이 꼭 감상해야 할 위대한 '문화'의 문턱으로 우매한 민중들을 끌어오는 것이 문화행정이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그는 믿는다. 다양한 지평에서 생성된 문화가 다양한 통로와 장소, 계기를 통해 서로 만나고, 또 세상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것이 그가 직업적으로 실현하고 싶은 문화와 정치적인 의지의 연결이다. 바로 랩 음악을 통해 그의 피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던 것처럼.

솔렌에게, 당은 마른 목을 한없이 축여주는 샘물이고, 좌파라는 신념은 넓은 세상을 단신으로 탐험하는 그가 의지하는 나침반이다. 음악은 그의 삶이 날개를 펼치게 될 넓은 공간의 기둥이며, 랩 음악은 천상에서 들려오는 복음성가였다. 아버지가 거둔 위대한 승리들은 태양 같은 긍정과 힘을, 어머니의 생태주의는 싱싱한 지역의 유기농산물을 받아먹는 통로를 열어주었다. 솔렌은 샘물과 태양, 건강한 바람, 음악, 건강한 땅의 과실로 빚어진 청년이었다.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피신한 안전지대가, 부디 오래 그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해주기를. 염세주의라곤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듯한 이 청량한 좌파가 부디 더 길게 가지를 뻗어가기를.
#파리의 생활좌파 #반자본주의신당 #솔렌 페랑도 #라르작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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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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