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은커녕 조화도 없다... 밀양시·한전의 '고자세'

[取중眞담] 밀양 송전탑 갈등 ... 이치우-유한숙 할아버지 상황 비교

등록 2013.12.11 14:38수정 2013.12.1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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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

"765kV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

 

밀양 사람 고 이치우·유한숙 할아버지가 각각 했던 말이다. 이치우(당시 74세)씨는 2012년 1월 16일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했다. 유한숙(74세)씨는 2013년 12월 2일 상동면 고정리 집에서 농약을 마신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6일 새벽 숨을 거두었다. 2년여 만에 두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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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압 송전철탑 건설에 반대하며 2012년 1월 16일 오후 8시경 자신이 살던 동네인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입구에서 분신 자살했던 고 이치우(74)씨의 분향소가 밀양시청 정문 앞 화단에 설치돼 있다. ⓒ 윤성효

초고압 송전철탑 건설에 반대하며 2012년 1월 16일 오후 8시경 자신이 살던 동네인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입구에서 분신 자살했던 고 이치우(74)씨의 분향소가 밀양시청 정문 앞 화단에 설치돼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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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집에서 음독 자살을 시도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분향소가 8일 오후 밀양 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에 차려진 가운데,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윤성효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집에서 음독 자살을 시도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분향소가 8일 오후 밀양 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에 차려진 가운데,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윤성효

산업통상자원부(아래 산자부)와 한국전력공사(아래 한전)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4호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경남 창녕에 있는 북경남변전소까지 가져가기 위한 송전선로 공사를 벌이고 있는데,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8년째 싸우고 있다.

 

두 죽음에 대해 전개되는 상황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무엇이 같고 다른가. 두 죽음 모두 ▲ 송전탑과 관련 있는 점 ▲ 장례를 제때 치르지 못하는 점 ▲ 유족들이 송전탑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한 점 ▲ 시민 분향소를 설치한 점 ▲ 경찰 수사 발표에 유족들이 분개한 점 등이 같은 부분이다.

 

그런데 ▲ 한전이 이치우씨 죽음 직후에는 공사를 중단했지만 이번 유한숙씨의 죽음에는 계속하는 점 ▲ 엄용수 밀양시장이 앞 죽음 때는 조문했지만 이번에는 조문도 하지 않고 조화도 보내지 않은 점, ▲ 지난 해에는 시민분향소를 밀양시청 앞에 설치했지만 이번에는 못한 점 등이 다르다.

 

송전탑 관련해 죽음 ... 장례도 늦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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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음독 자살한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유한숙 할아버지의 분향소를 밀양시청 정문 앞에 설치하기 위해 나서자 경찰이 막아서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 윤성효

8일 오후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음독 자살한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유한숙 할아버지의 분향소를 밀양시청 정문 앞에 설치하기 위해 나서자 경찰이 막아서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 윤성효


두 죽음은 모두 송전탑과 관련이 있다. 고 이치우씨는 분신 자살한 그날 낮에 한전 측에서 자신의 논에 장비를 갖다 놓자 항의했고, 그날 저녁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했다. 이치우씨는 "내가 죽어서 해결된다면 장비에 불을 지르고 죽겠다"거나 "내가 죽으려 하는데 죽지 못하게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유족과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돼지를 키우던 유한숙씨는 지난 11월 한전 측으로부터 집과 돈사가 보상·이주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말을 듣고 송전탑 반대 농성에 적극 나섰고, "송전탑이 들어오면 안 된다"거나 "약을 먹고 죽겠다"는 말을 했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에도 그는 "765(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 "송전탑은 막아 달라"고 말했다.

 

두 죽음 모두 장례가 늦어졌다. 이치우씨는 분신 현장에 빈소를 차렸다가 밀양시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했고, 장례는 3월 7일에야 치러졌다. 유한숙씨 역시 8일 오후부터 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에 시민 분향소가 차려졌다. 유한숙씨 유족들은 "송전탑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했고, 그것이 고인의 뜻이라 했다.

 

두 죽음 모두 경찰 수사 발표 논란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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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에 나섰다가 음독 자살했던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빈소가 밀양 영남병원 내 농협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는데, 6일 저녁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과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의 조화가 바닥에 박살나 있고, 주민이 발로 리븐을 짓밟고 있다. ⓒ 윤성효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에 나섰다가 음독 자살했던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빈소가 밀양 영남병원 내 농협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는데, 6일 저녁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과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의 조화가 바닥에 박살나 있고, 주민이 발로 리븐을 짓밟고 있다. ⓒ 윤성효

두 죽음에 대한 경찰 수사에 대한 논란도 비슷하다. 경찰 수사에 대해 두 유족 모두 반발했다.

 

이치우씨 분신 다음 날 경찰은 '밀양 송전철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 변사사건 발생'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발표했다. 경찰은 "집회에 참가한 마을 주민이 불을 피우던 중, 몸에 불이 붙어 사망한 사건 발생"이라며 "변사자가 사건 당일 집회현장 주변 변사장소에서 나무 잔가지를 모아 붙을 붙이려고 하다 잘 붙지 않아 다시 불을 붙이던 중 변사자 몸에 불이 옮겨 붙어 사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찰 발표를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이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민주당 경남도당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밀양경찰서 소속 경찰관과 119대원의 통화 자료를 확보해 공개했다. 그 결과,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은 '분신'이라고 했지만, 처음 경찰이 발표한 자료에는 '분신'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유족들은 지난해 1월 26일 밀양시청 앞에 있던 컨테이너 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뒤인 1월 30일 경찰은 "분신자살로 추정되며 타살 혐의는 없다"고 발표했다.

 

유한숙씨 죽음은 어떤가. 경찰 수사 발표에 유족이 분개하기는 이치우씨 때와 같다. 밀양경찰서는 6일 '송전탑'이라는 말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특정 사안으로 음독하였다는 진술은 없었다"고 발표했다가, 7일 "여러 가지 복합적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수정 발표했다.

 

이 발표에 유족은 분개했다. 8일 큰아들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버지는 병상에 계실 때 경찰이 와서 '왜 농약을 마셨느냐'고 여쭙자 '765 송전탑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며 "경찰은 고인의 진술은 빼고 가족이 진술한 지엽적인 사실만 갖고 왜곡했다"고 밝혔다.

 

또 유족은 "지난 11월 초 부모님은 사이판 여행을 다녀오셨다, 음주를 하고 우발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자살한 것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며 "돼지값 시세도 좋았고, 돈사가 처분되지 않아 고민했던 것도 송전탑 때문"이라고 밝혔다. 큰아들은 "음주도 송전탑 때문에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같은 유한숙씨 유족 주장에 대한 경찰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두 죽음 다른 점... 한전, 이번에는 공사 중단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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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 밀양지사 정문 앞에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 윤성효

한국전력공사 밀양지사 정문 앞에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 윤성효


두 죽음엔 다른 점도 있다. 이치우씨 죽음 때 한전은 한동안 공사를 중단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한참 뒤인 지난해 5월에야 공사를 재개했다. 그 후에도 주민과 마찰을 빚다가 다시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유한숙씨가 사망한 날에도 한전은 송전탑 공사를 했다. 헬기를 동원해 장비를 실어 나르기도 했다. 이에 주민들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공사를 하느냐"고 항의했다.

 

조문도 다르다. 이치우씨 분신 때는 한전 사장이 조문하러 왔다가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물러났다. 엄용수 밀양시장은 보라마을 빈소에 조문했지만 역시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당시 김두관 경남지사는 조화를 보내고 조문도 했다.

 

하지만 이번 유한숙씨 사망 때는 한전 사장과 경남지사(홍준표), 밀양시장(엄용수)은 조문은커녕 조화도 보내지 않았다. 윤상직 산자부 장관과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이 빈소에 조화를 보냈지만,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박살내버렸다. 대신 산자부 에너지실장은 첫날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을 만난 뒤 돌아갔다.

 

유족과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고인이 송전탑과 관계 없이 돌아가셨다면, 산자부 장관과 밀양경찰서장이 왜 조화를 보내고, 산자부 에너지실장이 조문을 왔느냐"며 반문한 바 있다.

 

분향소도 다르다. 이치우씨 때는 밀양시청 앞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분향소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컨테이너는커녕 천막도 없이 비닐을 씌운 노천 분향소다. 밀양시청과 한전 밀양지사는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했고, 경찰은 두 곳뿐만 아니라 밀양역·밀양관아 앞을 막았다.

 

주민들 "더 이상 죽음 없어야"

 

문정선 밀양시의원은 "이치우 어르신 때는 공사 중단도 하고 한전이 저자세였는데, 유한숙 어르신 때는 한전이 공사도 계속하면서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한전이 그동안 공사 중단을 해서 입은 타격이 크다고 보는 것 같다"며 "분향소에 대해서도 밀양시청 공무원과 경찰의 태도가 완전히 비교될 정도로 다르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고 유한숙씨 장례를 빨리 치르기를 바라고, 제3, 제4의 희생이 없어야 한다는 바람이다. 주민 최아네스씨는 "가슴이 아프고,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불행"이라며 "정부와 한전이 얼마나 생명을 경시하는지 알 것 같고, 다시 이런 비극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루시아(용회마을)씨는 "벌써 두 분이 송전탑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 죽고 싶게 한다"며 "앞으로 연속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까봐 두렵고,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시장이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평밭마을 움막에서 농성하는 장재분(56)씨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지금까지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몇 년째 싸워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계속해서 막을 것"이라며 "주민들은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직 송전탑을 막는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밀양 부북면 위양리 권영길(76) 마을이장은 "그동안 한전이 송전탑 공사에 찬성해 달라고 온갖 짓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는 선물을 사와도 던져 버렸다"며 "우리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지킬 것이고, 사람이 송전탑 때문에 죽었는데 살아 있는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전은 지난 10월 2일부터 밀양 4개면(산외·보라·부북·상동, 총 52기)에 걸쳐 송전탑 공사를 벌이고 있는데, 12월 현재 16곳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전은 대규모 경찰대원들이 주민들을 막고 있는 속에 작업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10여 곳에서 농성해 왔는데 유한숙 할아버지 분향소까지 지키고 있다.

#밀양 송전탑 #한국전력공사 #산업통상자원부 #이치우 #유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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