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전자 마셨다" 무슨 뜻일까요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80] 喝

등록 2014.06.30 21:19수정 2014.06.3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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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짖을 갈(喝)우리말에서 공갈(恐喝), 갈파(喝破) 등 4성으로 읽는 ‘꾸짖다, 소리치다’의 의미로 쓰이는 반면, 중국어에서는 주로 1성으로 읽는 ‘마시다’의 뜻으로 쓰인다. ⓒ 漢典


지금은 제사상에 보통 '술'을 올리지만,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차'를 올렸다. 그래서 설날, 추석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제사 문화가 전해지면서 정종 등의 술이 차례 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제례에서 축문과 주술의 말이 신의 강림을 유도하는 것이라면, 음복(飮福)은 신이 흠향(歆饗)한 제수(祭需)나 제주(祭酒)를 자손이 나눠 먹는 것을 말한다. 고대 사회 제례에서 마시는 행위가 단순히 차나 술에 국한되지 않고, 신이 남기고 간 '복을 마신다'고 하니, 그 의미가 좀 더 신성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꾸짖을 갈(喝, hē,  hè)은 입 구(口)와 어찌 갈(曷)이 결합된 형성자다. 갈(曷)은 축문을 읽는다는 의미의 왈(曰)과 시신이 포개져 있는 모양인 빌 개(匃)가 합해져서 시신을 통해 신에게 엄중하게 호소하는 말이며, 꾸짖을 갈(喝)도 죽음의 상황에 대해 신에게 엄중하게 원인을 따지고, 간절하게 영혼의 안식을 갈망하며 '소리치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리를 치다보면 목이 말라서인지, 제례에서 음복의 행위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말에서 공갈(恐喝), 갈파(喝破) 등 4성으로 읽는 '꾸짖다, 소리치다'의 의미로 쓰이는 반면, 중국어에서는 주로 1성으로 읽는 '마시다'의 뜻으로 쓰인다.

먹을 것이 충족된 상태에서 마시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여유를 즐기는 사치나 고상한 취미의 하나로 간주되기 십상이지만, '음식(飮食)'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마시는 것은 어쩌면 먹는 것보다 더 먼저 중요한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도 한 달까지 살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는 일주일도 넘기기 어렵다.

우리말에서도 가방끈이 길다든지 '먹물이다'는 말이 배움이 많거나 지식이 풍부하다는 의미로 쓰이듯이, 중국어에서는 '먹물을 마시다(喝墨水)'는 말이 교육을 받거나 학교에 다닌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뱃속에 먹물이 가득하다(肚子里墨水多)는 말도 비슷한 의미가 된다.

또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린다는 말을 중국어에서는 '서북풍을 마신다(喝西北風)'고 표현한다. 따뜻한 느낌의 남동풍이 아닌 서북풍은 왠지 차갑고 힘든 상황을 떠올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말에서도 "물 먹었다"는 말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했다는 의미인 것처럼 중국어에서도 "한 주전자 마셨다(喝一壶)"는 말이 호되게 당했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 흥미롭다. 늘 자주 먹는 '물'인지라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가 뜻하지 않게 당했다는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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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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