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사진은 2010년 방한 당시.
유성호
군사력을 앞세워 강압정책을 구사하는 조지 부시는 '조지'고 '부시'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1994년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부장이었던 프랭크스 소장은 대장으로 진급하여 중부군사령관이 되더니, 2003년 3월에 불과 13만의 병력으로 이라크 전쟁을 단 17일 만에 종결지었다.
이제 전쟁은 전쟁이랄 것도 없는 너무나 손쉬운 그 무엇이 되었다. 마치 훈련을 하듯이 해치우는 미국의 거침없는 태도에 세계는 경악했다. 이라크 다음으로 북한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연합사의 전쟁계획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받기로 했다. 국가 비상사태에서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점검하고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2003년 6월에 대통령 공관에서 연합사령부 작전계획 5027과 5026, 5029, 그리고 5029의 한국판인 '고당계획'의 주요 개념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김희상(육사 24기) 국방보좌관의 배경 설명에 이어, 세부 작전계획은 연합사에서 작전장교를 역임한 공군 박병진 중령(공사 31기)이 맡았다. 미군의 한반도 증원 내용과 전쟁 양상에 대한 설명이 약 한 시간여 이어졌다. 이 날 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생하면 그 전쟁의 범위가 강도가 매우 높은 고강도 분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다.
노 대통령은 "설명을 잘 들었다"며 "그러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지 않은가, 바로 그런 전쟁계획이 실행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건 오직 대통령만이 할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 중령이 "맞습니다, 그것은 국군통수권자의 영역입니다"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날 회동은 끝났다.
응급실에 실려온 한반도 평화를 구하기 위해 급한 것은 심폐소생술이다. 무슨 고차원적인 의학이 동원되는 치료는 그 다음 일이다. 미국에 평화를 구걸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통령은 당장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좋든 싫든 미국은 거대한 중력이었다 좋든 싫든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벗어나기 어려운 거대한 중력이었고, 일단은 미국을 관리하는 응급조치가 필요했다. 이후 한동안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조차 "왜 노 대통령이 저렇게 미국에 굴종적인가"라는 불만을 표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라포트 연합사령관은 연일 작전계획 보완에 박차를 가했다. 매년 8월에는 한미연합사 주관으로 을지 포커스렌즈 군사연습이 실시된다. 그런데 8월에는 8·15 경축행사 등 남북관계 행사가 집중된 기간이다. 하필 이 때 미국의 해외훈련 중 가장 규모가 큰 군사연습이 실시되어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8월이라는 시점이 결정된 이유는 간단했다. 매년 6월이 미군 장교들의 인사이동 기간이다. 그러니 새로 한반도에 부임되는 미군 장교들이 한반도 전쟁절차를 숙달하기 위해 8월로 설정된 것뿐이다. 그러나 이게 전통이 되어 이제는 한국 정부 힘으로도 이걸 어떻게 변경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연습 계획을 수립하고 통제하는 당사자는 미군이었다.
2003년 8월의 군사연습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라포트 사령관은 자신의 주도로 북한 점령 이후 안정화 대책까지 토의과제로 설정했고, 회의 중에는 "유사시 중국과 협력하여 도주하는 김정일 정권의 망명도 차단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연합사 전쟁지휘소를 방문한 한국 쪽 인사들에게 벙커버스터와 같은 신형 폭탄의 위력을 설명하여 언제든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신무기가 구비된 것처럼 말했다. 이에 한국 쪽 인사들은 넋을 잃었다.
과연 우리는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강대국의 의도를 초월하여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가? 역대 대통령에게 금기시 된 질문이 노 대통령에게는 핵심적인 문제였다. 노 대통령은 이를 피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번에 계속, 이 글은 김종대 편집장의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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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을 잘 알고 있다" 2003년 노무현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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