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당 건너편에 강화산성의 서문인 첨화루가 있다.
이승숙
그 후로도 연무당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그 앞을 지나갈 일이 있어도 대충 그러려니 하며 지나쳤을 뿐 남다르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강화도조약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궁금해졌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가서 살펴보았다. '관심을 두면 보인다'고 하더니 과연 마음을 기울여서 살펴보니 연무당 옛 터가 새롭게 다가왔다.
연무당 옛 터에 몇 번이나 가보았다. 볼 것도 별로 없는데 뭘 그리 가느냐고 누가 말했다.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빈 터만 남아있는 연무당 옛 터에서 140년 전의 강화도를 그려보았다.
1876년 2월 5일이었다. 갑곶진을 통해 일본군이 강화부로 들어왔다. 스무 예닐곱 명 남짓했으니 그리 많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차림새가 요상했다. 그들은 서양 옷을 입고 총을 메고 또 칼을 차고 있었다. 그 전해(1875년)에 있었던 운요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으러 온 일본 대표단이었다.
그들을 응대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사람을 보냈다. 그가 바로 판중추부사였던 신헌이었다. 그는 일본 대표단과의 회담을 위한 접견대관으로 추대되어 강화로 왔다. 용산도서관에서 만났던 '심행일기'는 바로 신헌이 썼던 일기였다.
'심행일기(沁行日記)'의 심(沁)은 예로부터 강화도를 이르는 별칭이었으니 심행일기는 '강화 행차의 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일기는 그가 강화로 떠나기 하루 전인 병자년 정월 오일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 일기에서 접견단의 행적, 일본 측과의 협상 기록 및 접수한 공문과 보고문, 상소문, 조약 초안 등의 관련자료 일체를 다 수록했다. 따라서 '심행일기'야말로 조선의 관점에서 강화도 조약의 체결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사료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