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응해 준 하은이. 머리가 부시시하다고 짚업후드를 입고 찍었다. 열일곱 소녀였다.
김지영
- 하은이는 몇 살 때 입양됐어?
"한 살 때요. 아기 때."
- 그때까지 어디서 살았는지 알아?"옥산에 있는 시설이에요. 기억은 못하는데 엄마랑 여러 번 가봐서 저 돌봐줬던 보육사 선생님도 만나보고 그랬어요."
- 언제 처음 가봤어?"초등학교 3학년 때 가봤어요."
- 네가 가 보고 싶다고 그랬어?"네. 제가 가 보고 싶다고 그랬어요."
- 하은이는 낳아 준 엄마가 어떤 분인지도 알아?"그냥... 학생. 고등학생이었어요."
- 벌써 엄마를 찾아보려고 했네?"네."
- 그래서 찾아서 만나봤어?"아니요. 아직 못 만났어요. 결혼도 하고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 (저를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다고…."
- 하은이는 처음에 엄마 아빠가 하은이를 직접 낳아 준 부모라고 생각했지?"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입양가족 모임이나 입양아 캠프 그런데 많이 데리고 다녀서 그냥 저도 모르게 (입양사실을) 알았던 것 같아요. 그냥 어느 순간에 알아버린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라고 그런 식으로 자주 이야기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큰 부담 없이 잘…."
- 그렇지만 입양이란 게 어떤 건지 어렸을 때는 그 의미를 잘 모르잖아. 하은이가 생각할 때 그걸 정확하게 이해하던 때가 언제였던 것 같아? "어... 초등학교 3, 4학년 때인 것 같아요."
- 그때 심정이 어땠어? "4학년 때는 좀 많이 울었어요. 그때 엄마랑 저녁에 잘 때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낳아 준 엄마 보고 싶다고 울면 엄마가 같이 저 안아주시고 같이 울어주시면서 달래주시고... 그런 식으로 계속 하다가 엄마가 (낳아준) 엄마를 알아봐 주셨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다고 그랬대요. 그때는 그냥 쉽게 포기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엄마는 제가 상처 입을까봐 그 사실을 천천히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막 슬프진 않았어요."
- 초등학교 3, 4학년 때 그때 낳아 준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구나. 얼마 정도나 그랬어?"그때는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게 한 이주 삼주 정도 간 것 같아요."
- 많이 속상하고 그랬겠네?"네. 그때는 많이 속상했어요."
- 그때 그 심정은 어땠어?"뭔가 좀 내가 만나고 싶은데 왜 못 만나나 싶기도 하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왜 못 보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서러웠어요."
- 그때 엄마도 많이 속상했겠다."네, 엄마도 함께 울고 함께 속상해주시고 같이 찾아봐주시고 해주셨어요. 엄마가 (옆에 앉아 있는 엄마를 따뜻한 미소로 돌아보며) 엄마가 많이 도와 주셨어요."
- 하은이는 그럼 그렇게 가슴앓이를 한 번 한 뒤로는 괜찮았어? "네. 별로... 학교 다니면서 바쁘다 보니까 별로 신경이 안 쓰였어요. 근데 중학교 들어가서 이제 가족이란 단원이 나왔어요. 거기서 입양이 나오고 도덕 선생님께서 입양 동영상을 몇 개를 보여주셨어요. 그거 볼 때... 애들이 다 알거든요. 제가 입양된 사실을."
- 애들은 어떻게 알았어?"저도 얘기를 하고요. 5월 11일이 입양의 날이잖아요. 그때 항상 조퇴하거나 빠지면서 행사를 다녀왔어요. 갔다 와서 아이들한테 책자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애들은 부럽다고 하고…."
- 놀리는 애들은 없었어?"초등학교 때 짓궂은 애가 한 명 있긴 했어요. 가짜 엄마랑 살고 있다고. 그냥 무시하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이야기하면 엄마가 잘 참았다고 그건 걔가 아직 몰라서 그런 거라고 엄마랑 그런 얘기 했던 것도 기억이 나요."
- 근데 네가 이야기 하지 않으면 다른 애들은 알 수가 없잖아? "어떻게든 알아요. 친한 애한테 이야기를 하면 소문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먼저 얘기 하고 제대로 알려주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 하은이는 사춘기가 언제 왔어?"초등학교 5학년 때 와서 중학교 2학년 때가 절정이었던 것 같아요."
"입양에 대한 상처가 없었어?"라는 질문에는 엄마가 거들었다. "입양은 거기에 낄 수가 없죠. 그때는 낳아 준 엄마가 나타난다고 해도 안 만날 때지. 친구 때문에. 친구들이랑 더 깊게 지내고 싶을 땐데."
- 지금은 낳아 준 엄마에 대한 생각은 어때?"그냥 나중에 제가 평범한 어른이 돼서 만나고 싶어요."
-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네. 딱히... 지금 만나자고 하면 튕길래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고."
- 근데 그거 거짓말이잖아.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거 아니잖아?"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초등학교 4학년 때 못 만난 일이 상처가 되었구나. 안 만나주니까?"네. 하지만 조금만 그래요."
- 지금도 그때 일들이 생각나니?"아니요. 그냥 생각이 나진 않아요. 얘기를 꺼내면 생각 나긴 하는데 지금은 얘기해도 슬프지 않아요. 그냥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그게 막 미워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솔직히 드라마에서 입양 얘기 나오면서 복수하는 거 보면 이해가 안 가요.
그거 보면 참 너무 이상하게 입양을 만들어요. 이상해요. 스토리가 너무 어이없어요. 너무 각색한 거 같아서. 솔직히 그렇게 살지 않고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돈 벌어야 되니까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이해가 안 가요."
- 그런 드라마 보면 또 한 번씩 상처를 받는구나?"네 어이없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나중에 어른이 되고 결혼하면... 저도 입양할래요""어른들은 특히나 나이 많은 어른들은 더 입양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잖아. 혹시 그런 경험 있었어?"라는 질문도 엄마가 받았다.
"동네 할머니가 있어요. 애를 엄청 예뻐해요. 예뻐하는데 '너네 엄마 아빠 같은 사람 없어' 대놓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은이가 그래요. '엄마 어쩐지 기분이 안 좋네' 하고... (웃음) 소린이 할머니도 저보고 그래요. '너가 복 많이 받을 것이다'(일동 웃음)."
- 하은이는 워낙 좋은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잖아. 지금까지 살면서 입양 때문에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어? "입양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 사춘기 때 말이야. 초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심하게 가슴앓이 하거나 그런 적도 없었어?"네. 없었어요. 기억나는 건 어쩔 때 입양 동영상 나오면 애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힘들었던 적은 몇 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친구들이 '괜찮다', '왜 그러냐', '너는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위로해줬어요."
- 하은이는 입양 모임 가서 또래 아이들 만나면 금방 친해져?"네. 느낌이 통해요. 뭔가 그게... 만날 같이 있던 사람 같아요. 편안하고. 처음 본 아이도 한 30분 함께 있다 보면 금방 친해져요."
- 하은이는 입양가족 모임이나 행사 같은 데서 힘을 많이 받는구나?"뭔가... 같이 있으면 편해지고 학교 친구한테도 못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도 있고."
- 초등학교 때도 그랬어?"네. 입양 친구들 중에 친한 애들이 3명 있는데 자주 못 만나도 진짜 엄청 친해요. 입양 친구들은 꼭 있어야 될 것 같아요."
- 하은이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결혼하면 입양할 거야?"네. 당연하죠."
- 왜?"그냥 하고 싶어요. 어떤 입양가정 애가 그랬대요. '엄마, 한 명은 해야 할 것 같아, 그래야 재미있을 것 같아'라고요. (일동 웃음) 근데 맞는 말 같아요."
- 하은이는 뭘 잘해?"저는 시 낭송요. 글 쓰는 것도 좋아 하고 재미있어요."
- 하은이는 지금 최고의 관심사가 뭐야?"고등학교요. 정말 가고 싶은 학교거든요(인터뷰 당시 하은이는 경쟁률이 세다는 강원도에 있는 대안학교에 면접까지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 학교 말고 다른 건?"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입양되었다고 해서 특별하게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방식으로 가족이 된 거니까요."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하은이가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일등경제 으뜸청주 만들기 그림 글짓기 대회'에 나가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쓴 입양에 대한 글이 청주시장상에 당선되었단다. 그리고 이어 며칠 뒤 그토록 가기 원하던 고등학교에도 합격되는 겹경사가 있었다.
공개 인터뷰할 수 있기까지... 딸만큼 아팠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