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한 번 더... 닮고 싶은 유럽에 가다

[행복사회 유럽-프롤로그] 여행기를 시작하며

등록 2015.03.13 14:23수정 2015.06.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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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화병은 재발했다. 이른바 '유럽 일상체험 및 화병치유 여행'에서 보름 만에 돌아오는 길이다. 다시 맞닥뜨린 조국의 일상과 현실은 여전했다. 흡사 강제송환된 망명객의 불쾌함과 불안감마저 들었다. 

이유없이 지연되고 서로 뒤엉킨 수화물을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한국인 수화물 관리자는 무책임했다. 줄이 길게 늘어선 이동열차를 새치기해 올라타는 이도 한국인이었다. 차 안에서 계속 휴대폰으로 떠드는 이도 한국인이었다. 별로 급하거나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다.


시외버스 매표원도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한국인의 직업은 그냥 밥벌이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다. 길이며 화단이며 천지사방에 쓰레기가 넘쳐났다. 불특정 다수의 평균적 한국인들의 소행이 분명하다.  

어제까지 머물렀던 선진국 유럽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행동이자 풍경들이다. 이다지도 한국적인, 후진국형 일상과 환경 그리고 봉변 앞에 나는 바로 낙담했다.

"위험사회 한국, 절망사회 한국에 다시 돌아왔구나."

유럽의 일상체험으로 '농부의 나라' 실증모델을

체코 프라하의 블타바(Vltava)강과 카를(Karluv) 교  -
체코 프라하의 블타바(Vltava)강과 카를(Karluv) 교 -정기석

이번 여행의 의도와 목적은 분명했다. 한 마디로 '유럽 일상체험 여행'이다. 명소와 관광지 구경, 명품이나 면세점 쇼핑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 행복한 공화국, 사람이 먼저인 공동체, 유럽'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싶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사람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사람 대접을 받기는커녕 봉변만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나라를 잠시 떠나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제 할 일과 도리를 다 하고, 마침내 사람답게 살아가는, 행복지수가 높은 선진국가들로 알려진 영국, 체코, 이태리, 프랑스, 스위스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목격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농민들의 모습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아직 긴가민가 해서 한 번 더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 나라에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위안 대책', '치유 해법'을 유럽에서 배워보려는 것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일상에 더 지치거나, 더 늙어 꼬부라지고 죽기 전에 과소비를 해서라도 '사람이 행복한 유럽'을 확인하고 싶었다. 간절했다. 문화와 예술, 자유와 평화, 협동과 연대, 자주와 자립, 이타심과 공동체 의식, 신뢰와 질서, 생태주의와 생명사상 등 역사적 자산과 사회적 자본이 바탕이 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패러다임과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사람이 행복한 유럽'.

물론 필생의 숙원인, 농민과 도시민, 노동자가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는 사람 사는 세상 '농부의 나라'의 실증모델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이번 여행이 유익한 공부와 경험이 되리라는 욕심도 늘 휴대했다.

런던에서 루체른까지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잘츠부르크까지

스위스  취리히의 청년 문화예술지원센터, ‘빨간벽돌(Rote Fabrik)'  -
스위스 취리히의 청년 문화예술지원센터, ‘빨간벽돌(Rote Fabrik)' -정기석

지난 2월 9일부터 25일까지, 15박 16일의 여정. 여로는 일단, 런던에서 취리히로 이어진다. 인천공항에서 두바이공항을 경유해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유럽을 만나, 체코의 프라하, 이탈리아의 로마와 베니스, 프랑스 파리를 거쳐 스위스의 취리히와 루체른에서 유럽과 헤어진다.

여기에 지난해 5월, 10일간의 유럽 농촌공동체 연수기가 보태진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뮌헨, 프라이부르크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인스부르크를 둘러봤다. 주로 농촌에 머물렀고 도시는 잠시 스첬다. 지명은 아직도 가물가물하지만 독일, 오스트리아의 크고 작은 농촌마을들의 인상은 아직도 강렬하다. 그곳 농민들의 행복한 일상은 여전히 생생하다.

앞으로 매주 1편 꼴로 여행기를 연재할 작정이다. 모두 28편이다. 6개월 이상 걸릴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만이라도 쓰는 나도, 읽는 독자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치 '사람이 행복한 유럽'에 살고 있는 유럽 사람들처럼.

그리고 6개월 후에는 그 시간만큼이라도 한국이 더 행복한 나라로 진화하고 진보하기를 염원한다. 최소한 후퇴하거나 퇴보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백하건대, '사람이 행복한 유럽' 보다 '사람이 행복한 한국'을 더 많이 여행하고, 더 오래 생활하고 싶다. 태어났고 살고 있고 더 살아가야 할 조국이기 때문이다.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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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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