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때려서 싫다는 삼남매들, 어쩌면 좋나요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32] 아이들의 불만을 듣다

등록 2015.03.19 11:42수정 2015.03.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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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 할 수 있는 아이들 욕망을 이야기하는 아이들 ⓒ 이희동


손들어 엄마의 훈육 ⓒ 정가람


흔히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빗대어 시쳇말로 '머리가 굵어진다'라고들 한다. 아이들이 더 이상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할 때 쓰는 말인데, 보통 아이들이 4~5살쯤 되면 이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이는 아이들이 말을 막 시작하면서 부정사를 내뱉을 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때야 그냥 즉각적으로 '싫어', '안 해' 등을 외치는 거지만, 4~5살쯤 된 아이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건 그만큼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만의 논리가 서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의 꾸지람 훈육의 모습 ⓒ 정가람

문제는 그런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부모들의 대처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아이들을 다그치고 혼내는 부모, 그러려니 하는 부모 등 그 모양새는 가지각색이지만 부모들의 기저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정서는 대게 엇비슷하다. 바로 당황스러움이다. 항상 내 말을 고분고분 듣던 아이가 이제는 아니라고 하다니. 이 녀석을 어떻게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우리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자식들의 'No(노)'를 직접 들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무조건 엄마, 아빠 의견이 맞으니 네 의견을 접으라고 할 수도 없고, 마냥 네 의견이 옳다고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식들의 의견이 왜 틀릴 수도 있는지 매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에는 녀석들의 이해 수준이 아직 낮지 않은가.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어정쩡한 타협이었다. 경우에 따라 우리 생각대로 하거나 혹은 녀석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어쨌든 부모로서 자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논리적 사고를 갖는 것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기에, 녀석들이 우리를 설득 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기꺼이 설득 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선 자식들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녀석들에게 너희 의견도 충분히 관철될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부모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따라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너희들은 언제 엄마, 아빠가 미워?"

아이들의 눈에 비친 폭력적인 내 모습


화해 중 싸워서 미안해 ⓒ 정가람

엄마와 아빠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하라고 하자 처음 까꿍이와 산들이는 주저했다. 왜 엄마와 아빠가 갑자기 이렇게 묻는지 의아한 듯 빤히 우리의 눈치만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래, 너희도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보다 못한 내가 몇 개 예시를 들어주니 그때서부터는 부모에 대한 불만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열기가 상상 이상이었다. 녀석들에게 이렇게 많은 불만들이 쌓여져 있었던가. 그동안 녀석들은 어떻게 참고 살아온 거지?

"자주 혼낸다."
"아빠가 때린다."
"울고 싶은데 못 울게 한다."
"우리를 방에 가둬서 밉다."
"우리한테 조용히 하라고 한다."

녀석들의 수많은 불만 중에서 가장 뼈아픈 건 역시나 아이들의 눈에 비친 부모들의 폭력적인 모습이었다. 자주 혼내고, 때리고, 울기 시작하면 그만 그치라고 하거나 방에 가서 울라고 하고, 조금만 시끄럽다고 생각되면 조용히 하라는 부모들.

물론 나 역시 어렸을 때 부모에게 느꼈던 불만들이었지만, 막상 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 그와 같은 불만들을 듣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 나름대로는 그래도 아이들을 합리적으로 훈육하려 했건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그 노력이 턱없이 부족한 듯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의 '울고 싶은데 못 울게 한다'라는 불만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저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한다면, 아이가 혼나서 우는 게 나도 모르게 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욕구를 가지고 운다는 것이 아닌가. 녀석은 울음으로 하나의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데 그 울음소리가 듣기 싫다며 무조건 조용히 하라고 하고 방에서 울라고 하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부모와의 소통이 단절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주말 풍경 아빠랑 놀아요 ⓒ 정가람


설마 녀석들이 이렇게 폭력적인 모습만으로 나를 기억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그래도 평소에는 얼마나 가정적으로 잘 놀아주는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약간의 서운함과 함께 나의 생애 첫 기억이 떠올랐다.

다섯 살 때쯤이던가? 항상 자상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게 회초리를 들었던 그 기억. 당시 난 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잡고 잠시 씩씩대었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더 크게 혼이 났었고, 이후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됐다.

한없이 자상하지만, 내가 잘못했을 때는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로서 아버지를 각인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그 뒤로 내게 하나의 바로미터였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하나의 잔소리로 그쳤지만, 아버지의 한마디는 아주 가끔이지만 나의 잘못을 성찰하게 만드는 준엄한 경고가 되었다.

부디 내 자식들이 나의 훈육을 이와 같이 받아들여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빈도의 문제일까?

욕구를 이야기하는 아이들

삼남매 누나 손 잡고 따라와 ⓒ 정가람


막내의 뗑깡 무조건 들어눕기 ⓒ 정가람


아이들의 또 다른 불만은 결국 자신들의 욕구에 대한 것이었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마냥 어린 아이인 줄로만 알았건만 녀석들은 벌써 자신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찍 자라고 한다."
"TV 못 보게 한다."
"장난치지 말라고 한다."
"엄마, 아빠가 늦게 일어난다."
"우리와 별로 안 놀아준다."

밤늦게까지 엄마, 아빠와 놀고 싶은 아이들. 어떤 전문가들은 아기들이 밤에 자기 싫어 우는 것은 자는 것이 곧 끝이라고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제 녀석들은 어느덧 더 놀기 위해서 자기 싫은 나이가 된 것이다.

매일 밤 벌어지는, 부모와 놀다가 늦게 자려는 아이들과 자식들을 재우고 나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부모들 간의 총성 없는 전쟁. 그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다툼이 벌어졌던 지금이 가장 그립게 되겠지.

한편, 아이들의 TV와 관련된 욕망을 듣고 있자니, 우선 드는 생각은 약간의 미안함이었다. 결국 아이들이 TV를 보고 싶은 이유는 그만큼 TV에 노출이 많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부모의 게으름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말의 달콤한 늦잠을 위해서 혹은 우리가 지쳤다는 이유로 엄마 아빠와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대신 TV 시청을 권유했던 부모. 바로 그 모습이 아이들의 욕구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내세운 불만... 막둥이에 대한 '질투'

아이들이 내세운 불만 중 마지막 유형은 인정욕구인 동시에 질투였다. 이는 까꿍이와 산들이의 주된 불만이었는데 결국 말 못하는 막내 복댕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아가는 혼내지 않는다."
"아가는 안아주고 나는 안 안아준다."

로션 발라주세요 자기 들어가기 전 ⓒ 이희동

세 자녀 중 첫째와 둘째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셋째의 등장과 함께 부모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막내 아기에게로 가기 때문이다. 아직도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에게 부모를 뺏긴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아가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밖에.

게다가 셋째들은 대부분 가장 애교가 넘친다. 위의 형제들과 경쟁하기 위한 생존본능이겠지만, 어쨌든 부모의 입장에서는 막내의 그 애교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첫째와 둘째를 키우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막내의 웬만한 '뗑깡'은 애교로 볼 수 있으며, 그만큼 자애로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갓 태어난 복댕이를 무한정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과 그 눈길을 보고 난 뒤 동생을 차갑게 바라보던 산들이의 시선을.

현실이 이러하니 어찌 아이들의 불만 속에 질투가 포함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밑의 동생들을 건사해야 하는 첫째의 입장에서, 아기가 울기만 하면 모든지 양보할 수밖에 없는 둘째의 입장에서 그와 같은 불만들이 생길 수밖에. 미안하다. 까꿍아, 산들아. 우리들이 좀 더 중심을 잡고 너희들을 대할게.

타요와의 첫만남 우리집에 타요가 있었어요 ⓒ 정가람


애교쟁이 막내 선글라스도 씌워주고 ⓒ 정가람


아마도 커가면서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불만은 계속 될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만큼 애증으로 점철된 관계가 또 있을까? 그러나 또한 절대 끊을 수 없는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이다. 아내와 이야기 해본다. 매년 정기적으로 녀석들의 불만을 들어보자고. 진정한 화목은 이와 같은 소통에서 비롯되겠거니.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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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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