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 밀 듯 자연스럽게!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17] 後

등록 2015.03.20 16:43수정 2015.03.2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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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後 뒤 후(後)는 길을 걷다는 척(?), 어린 아이의 요(?), 천천히 걸을 쇠(?)가 결합된 형태이다.

뒤 후(後)는 길을 걷다는 척(?), 어린 아이의 요(?), 천천히 걸을 쇠(?)가 결합된 형태이다. ⓒ 漢典


중국 학생들이 연말이라고 초대를 해 줘, 4명이 함께 쓰는 대학교 1학년 남학생 기숙사를 갔더니, 벽에 여기 저기 낙서가 돼 있다. 그 중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니, 갈수록 그 물결이 더 강해진다(長江後浪推前浪, 一代更比一代强)"는 구절이 기억난다. 2학년이 되면 6인실 기숙사로 옮겨가고, 지금 사는 4인실은 또 후배들에게 물려줄 거라는 말이 그 낙서의 의미에 오버랩 된다. 뒤에서 밀려오는 물결은 공간적 의미가 자연스럽게 확대되어 '후대'라는 시간적 의미도 담고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앞자리와 달리, 뒷자리는 어둡고 적막하다. 이 후미(後尾)지고 은밀한 공간에서 달관의 경지를 즐기는 이도 있고, 후미지고 적막한 처소에서 묵묵히 힘을 키우는 이도 있다. 영화 <설국열차>의 맨 뒤쪽 꼬리칸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 파도처럼 무서운 기세로 몰려올 후학들의 힘을 공자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뒤 후(後, hòu)는 길을 걷는 의미의 척(彳), 어린 아이를 나타내는 요(幺), 발의 상형인 지(止)를 뒤집어 놓은 모양인 천천히 걸을 쇠(夊)가 결합된 형태이다. 어린아이와 함께 걸으니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여기에서 뒤, 늦다, 뒤처진다는 의미가 유추된 걸로 보인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 그래서 늦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뒤처져도 좋으리라. 그런데 우리의 조급함은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그 뒤처짐을 견디지 못한다. 손을 놓고 걸음을 서두르고, 어서 달려가라고, 심지어 자신의 차에 아이를 태우고 달리고 싶어 한다. 어떤 과정을 충분히 터득하고 다음으로 흘러가는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이 이뤄질 리가 없다.

아직 구덩이를 충분히 메울 정도로 물이 차오르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구덩이를 메우려 물을 댄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곳곳에 물웅덩이만 남겼다가 말라버리고 만다. 아이와 함께 길을 걷듯 느긋하게 영과(盈科)를 기다려야 하고, 그 후(後)에 나아가도 늦지 않다.

중국에서 제갈량(諸葛亮)은 총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난 후에 마치 선견지명이 있는 것처럼 큰소리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후의 제갈량(事後諸葛亮)'이라고 한다. 뒷북치기(馬後炮)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 격이다.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 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지 않고, 영과이후진하지 않고 억지로 서둘러 앞으로 간 후과(後果)가 어쩌면 사후의 제갈량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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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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