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인천상륙작전>은 해방 직후 혼란한 정국부터 민족분단의 비극인 6.25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윤태호
포털 사이트 네이트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인천상륙작전>은 이 냉엄한 현실을 가감 없이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UN군의 대표적 군사 작전이다. 지금도 6·25를 언급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작전 중 하나이다. 당시 지휘를 맡았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이름 역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작품은 해방 직후 혼란한 정국부터 민족분단의 비극인 6·25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이끼>, <미생> 등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가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해 2013년 발표한 작품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한 '현대사'를 다뤘음에도, 고른 연령층에서 폭넓은 관심을 받았다. 나이든 독자에게는 당시의 향수를, 젊은 독자에게는 부모세대의 아픈 시대상을 느끼게 했다.
어린 철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작품은 해방 전날인 1945년 8월 14일부터 그림시계가 돌아간다. 철구네 가족은 지극히 평범하고 가난하다. 철구 삼촌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친일파가 되었으며, 아빠는 그런 삼촌을 욕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삼촌에게 철구 가족이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우리네 아픈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철구 아빠는 그나마 먹물을 조금이라도 먹은 지식인이다. 나름대로 가치관도 가지고 있고, 자식인 철구를 반듯하게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매사에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하다. 반면 철구의 삼촌 상배는 형과 다르다. 없는 집에서 나름대로 장남으로 대우받았던 형과 달리, 잡초처럼 거칠게 살아왔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거침이 없다. 그나마 그런 삼촌이라도 있었기에 철구 가족은 혼란기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삼촌은 배운 것이 없지만, 혼란기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일본순사의 정보통 노릇을 하던 삼촌은, 태극기가 휘날리며 곳곳에서 해방을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자 삽시간에 돌변한다. 일본인들을 때려잡는 등 자신과 형님 가족을 지키기 위한 놀라운 기지를 발휘한다.
해방이 되더라도 서민들의 삶은 바뀌는 게 없다. 외려 혼란 속에서 더 살기만 힘들어진다. 지식인, 권력자 등 소위 잘나가는 이들은 새로이 바뀌는 흐름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잔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대다수 서민들에게 그런 것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다. 사상과 이념도 무엇인지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 누가 이기든 주린 배를 채우고 한 끼라도 더 먹을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다. 그렇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정의일 뿐이다. 국군과 공산군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도 결코 그들의 선택이 아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독한 놈이 살아남는다. 권력도, 힘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멀건 죽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악착같이 잘난 놈들에게 달라붙어야한다. 두 눈만 껌뻑이고 있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어찌 보면 해방 후 혼란기 속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던 것은 위에 있는 '높은' 님네들이 아닌 가장 밑바닥 서민들이었다.
한 치 앞 아니 한 끼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서민들에게, 매일 매일은 전쟁의 연속이다. 친일파·청년단·포주 등을 오가며 눈치 빠른 행보를 보이는 철구 삼촌은, 자신과 형님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서민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어떠한 혼란이 와도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철구 가족에게 그런 주인공의 기적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극의 주인공도 아니다. 철구 가족의 비참한 말로는 비극이 아니라, 당연한 현실 속에 스쳐가는 어느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다. 당시 혼란기의 주인공은 역사였을 뿐, 개개인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물론 작품에서는 철구의 어린 시절만 나온다. 똑똑하지도 잘난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꼬마 철구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미군을 따라 피난길에 오르면서 작품은 끝이 나지만, 이후의 환경에 따라 철구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독자들은 떠나는 철구의 모습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하고자 눈을 부릅떴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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