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이라니... 내가 없으면 모친과 덕이는

[말없는 약속 20년 26] 앞길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등록 2015.06.26 16:48수정 2015.06.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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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덕이가 점점 신체적으로 잘 성장하면서 정서적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덕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원만한 대인관계 즉, 친구관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늘 뭔지 모를 외로움을 지닌 것 같다. 하물며 태권도에서 함께 운동하는 동갑내기 아이들도 덕이와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이 점을 태권도 관장님과 상의하니 이런 좋은 제안을 주셨다.

"덕이를 앞으로 학교에서 오면 바로 도복 입고 태권도로 보내"라고 하시며 이곳에서 함께 저녁도 해먹고 태권도가 3단이니까 유치부 아이들의 기본 동작을 지도하는 '애기 사범' 역할을 하도록 해보겠다는 말씀이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덕이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애기 사범으로 태권도 관장님 그리고 사범님 두 분과 함께 운동과 정리 그리고 저녁식사를 그곳에서 직접 해 먹기 시작하였다.

'애기 사범'이 된 덕이, 내 몸에 나타난 변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내 몸이 계속 너무나 기운이 없으면서 잠을 자고 또 자도 끌어 당기듯이 잠이 쏟아졌다. 하물며 출근하는 중에 정문을 약 200m 남겨 놓고 도로 옆에서 '약 10분 정도만 쉬었다 가야지'라고 생각했으나 그대로 잠이 들어 깨어보니 2시간을 차 안에서 잤다. 소화가 안 되고, 새벽 1시에서 4시 사이에 속이 쓰려 일어나게 되는 일이 자주 있게 되어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그저 눈물만 흐르고 또 흘렀을 뿐.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그저 눈물만 흐르고 또 흘렀을 뿐. pixabay

검사결과 위암 3기 말이란다. 그것도 수술을 해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고 더 심할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그저 눈물만 흐르고 또 흘렀을 뿐.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혼자 고민을 하였다. 수술하지 말고 산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하나, 아니면 수술을 해야하나 어떻게 해야하지. 가뜩이나 나의 모친은 외삼촌께 전화해서 울면서 "나는 옥숙이가 시집가면 덕이와 둘이서 못 산다"라고 하소연 한 적도 있는데, 내가 없으면 모친과 덕이는 누가 돌볼 수 있을까 답이 안 나왔다.

고민 끝에 바로 위 언니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자 바로 한국으로 오겠다며 이틀 만에 왔다. 그리고 일단은 수술을 하자고 병원 예약을 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수술 후에는 2기 초로 진단이 나왔고 항암제를 6회 맞았다. 그 항암제는 맨살에 닿게 되면 그대로 살이 탈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왼쪽 가슴 위에 항암제를 투여하기 위한 케모포트를 심고 6개월을 살았다.

덕이의 건강을 위한다고 했던 매일 아침 조깅과 태권도가 결국은 나의 근력을 키워놓은 터라 회복이 다른 환자들에 비하여 빠른 편이었다. 나는 계속 일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당분간은 산책 정도만 하고 심한 운동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전문의 말씀에 따라 조깅과 태권도는 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눈오는 겨울날, 퇴근이 늦어 밤 10시쯤(태권도 마지막 시간부는 9시30분에 끝났다) 되어 집으로 들어가던 중에 환한 가로등 불빛 밑에 덕이가 보였다. 덕이가 추위에 빨갛게 된 맨 손으로 큰 쓰레기 봉투를 애써 들고 내려와(3층 건물에 태권도관은 3층이었다) 1층 전봇대에 놓고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저런...' 한참을 그곳에 멈춰 있다가 그래도 덕이가 애기 사범 역할을 재밌어하고 좋아하니까, 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고 집에 와서 덕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까 집으로 돌아온 덕이 손을 보는 순간 가슴이 매었다.

태권도장에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으니까 찬물로 쌀을 씻고 설거지까지 하리라는 예상은 하였지만, 안쓰러움과 측은함에 슬펐다.

고모 : "덕아 손시려울 텐데 얼른 따뜻한 물에 씻자."
덕 : "응."(아무렇지 않다는 듯 샤워를 했다)
고모 : "덕아 내가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너가 큰 쓰레기 봉투 들고 내려와서 전봇대 옆에 세워두고 올라가는 것을 봤어, 힘들지 않니?"
덕 : "아니."
고모 : "태권도에서 애기 사범 역할을 덕이는 계속 하고싶니?, 아니면..."
덕 : "할거야."(이렇게 대답하는 덕이의 눈빛엔 뭔지 모를 확신이 차 있었다) 
고모 : "덕이가 힘들면 태권도만 배워도 좋을 것 같아서."(덕이 표정으로 볼 때 "나는 지금이 좋은데 고모는 왜 그러셩?"이라는 듯 정말로 좋아 보인다)
고모 : "나는 덕이가 원하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지할 거고 만약에 그렇지 않더라도 고모는 첫째도 덕이 너고, 둘째도 덕이 너가 제일 중요하단다. 알지?"
덕 :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자기 앞길을 정확히 알겠는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거지. 단,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 겸손하게.

○ 편집ㅣ홍현진 기자

#찬물과 밥 #암과 질병 #항암제와 운동 #손과 추운겨울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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