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그저 눈물만 흐르고 또 흘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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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결과 위암 3기 말이란다. 그것도 수술을 해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고 더 심할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그저 눈물만 흐르고 또 흘렀을 뿐.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혼자 고민을 하였다. 수술하지 말고 산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하나, 아니면 수술을 해야하나 어떻게 해야하지. 가뜩이나 나의 모친은 외삼촌께 전화해서 울면서 "나는 옥숙이가 시집가면 덕이와 둘이서 못 산다"라고 하소연 한 적도 있는데, 내가 없으면 모친과 덕이는 누가 돌볼 수 있을까 답이 안 나왔다.
고민 끝에 바로 위 언니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자 바로 한국으로 오겠다며 이틀 만에 왔다. 그리고 일단은 수술을 하자고 병원 예약을 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수술 후에는 2기 초로 진단이 나왔고 항암제를 6회 맞았다. 그 항암제는 맨살에 닿게 되면 그대로 살이 탈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왼쪽 가슴 위에 항암제를 투여하기 위한 케모포트를 심고 6개월을 살았다.
덕이의 건강을 위한다고 했던 매일 아침 조깅과 태권도가 결국은 나의 근력을 키워놓은 터라 회복이 다른 환자들에 비하여 빠른 편이었다. 나는 계속 일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당분간은 산책 정도만 하고 심한 운동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전문의 말씀에 따라 조깅과 태권도는 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눈오는 겨울날, 퇴근이 늦어 밤 10시쯤(태권도 마지막 시간부는 9시30분에 끝났다) 되어 집으로 들어가던 중에 환한 가로등 불빛 밑에 덕이가 보였다. 덕이가 추위에 빨갛게 된 맨 손으로 큰 쓰레기 봉투를 애써 들고 내려와(3층 건물에 태권도관은 3층이었다) 1층 전봇대에 놓고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저런...' 한참을 그곳에 멈춰 있다가 그래도 덕이가 애기 사범 역할을 재밌어하고 좋아하니까, 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고 집에 와서 덕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까 집으로 돌아온 덕이 손을 보는 순간 가슴이 매었다.
태권도장에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으니까 찬물로 쌀을 씻고 설거지까지 하리라는 예상은 하였지만, 안쓰러움과 측은함에 슬펐다.
고모 : "덕아 손시려울 텐데 얼른 따뜻한 물에 씻자."
덕 : "응."(아무렇지 않다는 듯 샤워를 했다)
고모 : "덕아 내가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너가 큰 쓰레기 봉투 들고 내려와서 전봇대 옆에 세워두고 올라가는 것을 봤어, 힘들지 않니?"
덕 : "아니."
고모 : "태권도에서 애기 사범 역할을 덕이는 계속 하고싶니?, 아니면..."
덕 : "할거야."(이렇게 대답하는 덕이의 눈빛엔 뭔지 모를 확신이 차 있었다)
고모 : "덕이가 힘들면 태권도만 배워도 좋을 것 같아서."(덕이 표정으로 볼 때 "나는 지금이 좋은데 고모는 왜 그러셩?"이라는 듯 정말로 좋아 보인다)
고모 : "나는 덕이가 원하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지할 거고 만약에 그렇지 않더라도 고모는 첫째도 덕이 너고, 둘째도 덕이 너가 제일 중요하단다. 알지?"
덕 :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자기 앞길을 정확히 알겠는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거지. 단,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 겸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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