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얼굴도 알지 못해 데면데면 했던 아파트 주민들이 꽃밭을 가꾸면서 끈적끈적한 사이로 변했다. 공간이 변하면, 사림이 변한다는 것을 꽃뫼버들마을 아파트 주민들은 경험을 통해 배웠다.
정대희
지난달 7일 '꿈틀버스 5호'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2동에 위치한 '꽃뫼버들마을LG아파트'로 달려갔다. 기네스북에 오른 아파트다.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가로수길을 따라 걸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어딜 가나 손쉽게 보는 아파트와 다른 게 없다. 이렇게 평범한 장소가 동화 속 풍경이 된 곳이라니. 고개를 자꾸 갸우뚱거리게 된다.
메마른 땅, 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꽃을 하나 심었다. 그러자 어느 날, 그 꽃 옆에 꽃이 들어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나를 심으면 둘이 되고 셋, 넷이 됐다. 하루가 다르게 꽃은 늘어 밭을 이루고 화단이 됐다. 13년이 지나서 화단에는 약 500여 종의 식물이 자랐다. 이 정도면, 수목원이다. 동화 속 이야기 같다.
"보잘 것 없는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조안나(46) 입주자대표회장의 말이다. 아파트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조 회장의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 일은 화단에 꽃을 심는 일이다. 조 회장은 "보잘 것 없는 일"이라 지칭했으나 이 일로 삭막하고 각박한 아파트 삶에 꽃이 피었다.
"왜 꽃을 심었나요?"꿈틀버스 5호에 탑승한 노봉남(60) 전남대 교수가 물었다. 조 회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꽃을 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아파트 1층에 살다보니 꼭대기 층에 살던 때와 달리 베란다에 햇볕이 덜 들어 꽃을 키우는 게 어려웠다. 그때 조 회장의 눈에 띈 곳이 창문 넘어 보이는 방치된 화단이다. 당장 꽃을 사다 심었다. 슬하의 아이들도 모종을 땅 속에 묻었다. 버려진 땅에 생명이 돋아났다.
목초본유 총 368종. 꽃뫼버들마을 아파트 단지내 화단에서 자라는 식물의 개수다. 지난 2012년 한국기네스협회가 인정한 우리나라 아파트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수다. 현재는 약 500여종으로 늘었다. 숫자가 더 커진 이유를 조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애초 꽃을 심을 때부터 누가 시켜서가 아닌 주민 스스로 한 일이다. 저마다 좋아하는 식물이 다르다보니 지금은 아파트 세대수(665)에 버금갈 정도로 종류가 많아졌다. 마음대로 심고 알아서 가꾸는 게 기네스북에 등재된 비결이라면, 비결이다."아파트서 사는 맛, "살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