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곶자왈에는 흙이 없다

[30일, 제주를 달리다 28] 그 스물다섯 번째 날 -2

등록 2015.11.17 11:20수정 2015.11.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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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가득 덮은 울창한 잎사귀들 ⓒ 황보름


눈 앞에서 타고 가야 할 버스를 놓쳤다. 아침 출근 시간에 버스를 놓친 것처럼 짜증과 한숨이 동시에 목구멍을 데운다. 휴, 4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대로 앉아 버스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갈 것인가. 역시, 걷는 게 좋겠다.

협재해변을 지나 금능해변을 지나 차도를 따라 죽 걸었다. 아직 10시도 안 된 시간이건만 태양은 이미 오후의 뜨거움을 뿜고 있다. 30분도 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몸이 지친다. 때마침, 저만치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저기서 기다리면 되겠지? 40분마다 오는 버스니 10분 안엔 도착할 것이다.


의자에 터덜터덜 앉아 10분이 훨씬 넘게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 버스. 이젠 내맘같지 않은 버스 때문에 짜증을 내지 않기로 한다. 내가 엉뚱한 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또…또…이게 제주 버스의 쓴 맛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버스정류장 바로 뒤에 있는 리조트로 콜택시가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15분 정도 걸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5분 정도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 가려는 환상숲곶자왈은 해설사가 있다고 해서 선택한 곳이다. 환상숲곶자왈에선 매 시간마다 해설사가 관광객들에게 숲 해설을 해준다고 했다. 아무래도 혼자 들어갔다가 또 저번처럼 겁에 질려 뛰쳐나오지 않으려면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았다.

처음에 사람들이 곶자왈, 곶자왈 했을 때는 사려니 숲이나, 비자림처럼 숲의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곶자왈은 이를 테면 '산' 같은 거였다. 백두산, 한라산, 설악산, 그 외 많은 산이 있듯 곶자왈도 여러 곶자왈이 있었다. 지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주에만 있는 제주 특유의 원시림을 곶자왈이라 부른단다.

15분이 안 돼 택시가 도착했다. 뒷자리로 올라타며 기사 아저씨에게 말했다. "환상숲곶자왈로 가주세요." "네." "그런데 11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요?" "네, 맞출 수 있을 거예요." 다행이다. 11시를 놓치면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 12시 해설을 들어야 하니.


벌써 얼마 전부터 내 몸의 에너지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어디에 앉기만 하면 바로 잠이 쏟아졌고, 대체로 몽롱한 채 하루를 보냈다. 가뜩이나 저질체력인 애가 3주가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빨빨대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이럴 만도 하다. 몇 개월, 또 많게는 1년이 넘게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강철체력인 걸까.

택시 뒷좌석에 앉자마자 저절로 눈이 감겨왔다. 차창밖 풍경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무거운 눈꺼풀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잠에 들려하는데…기사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어디서 오셨어요?"
"…아…서울이요."
"십중팔구는 다 서울 사람이죠."

"곶자왈엔 왜 가는 거예요?"
"아, 제주의 원시림이라고도 하고…또 좋다고도 하고…그래서요."

"제주에선 어디 어디 가봤어요?"
"많이 가봤는데…오래 여행 중이라서요."

"제주가 많이 변했어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나는 여기서 태어났어요."
"아, 그러세요?"
"그래서 아주 화가 나요."
"왜요?"
"제주가 너무 많이 변했거든. 인간성을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아주 화가 나요."

아저씨는 운전을 하며 웅변을 하듯 본인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가 듣고 있는지 않은지는 별 상관이 없는 듯했다. 아저씨는 제주가 너무 변화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중국 자본이 몰려오면서부터는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단다.

엄한 땅값만 올라가는 통에 원래 살던 사람들만 피해란다. "집은 팔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고 사는 것"이라고 아저씨는 말했다. 아저씨는 내게 월정리 해변은 가봤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땠냐고 묻길래, 예쁘긴 했지만 거기도 많이 변한 곳이라고 들었다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월정리 해변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런 델 좋아하니까. 예쁜 곳. 자연을 거슬러도 상관없는 거죠, 그렇죠?"
"뭐…, 그렇죠."

아저씨는 내가 지금 가는 곶자왈도 사유지라고 말해줬다. 나는 곶자왈이 사유지인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이 사유지가 되면 그 주인 마음대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했다.

나는 문득 섭지코지의 그 황망한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주위 경관을 완전히 망쳐버린 그 레스토랑처럼, 그 무언가가 곶자왈도 그렇게 망쳐버리면 어쩌나 싶었다.

다행히, 환상숲곶자왈의 경우엔 제주도와 사유지 주인 사이에 어떤 약속 같은 것이 있었다고 아저씨는 말해줬다. 마음대로 곶자왈을 해치지 않겠다는 그런 약속이랬다.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이 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곶자왈에 간다는 설렘이 사라지고 있었다.

"제가 지금 제주를 여행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아저씨 말을 들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괜히 놀러와서 제주를 망치는 게 아닌가 하구요."

"아, 그건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에요. 제주 사람들 중 여행업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그냥, 우리가 바라는 건 제주에 좀 관심을 가져달라는 거예요. 제주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 변화가 제주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한 명, 두 명 여행오는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에요. 나는 그 사람들이 진짜 제주를 보고 갔으면 좋겠어요."

아저씨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 이야기는 뻗어나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까지 와 있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곶자왈 입구에 다다랐다. 아저씨는 미터기를 정지시키고 잠시 더 이야기를 하다가 마무리를 했다.

"어렵죠? 이게 다 철학에 관련된 거에요. 철학."
"네, 철학!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하고 택시 문을 닫았다. 앗, 시간을 보니 11시가 조금 넘어있다. 매표소로 달려가 표를 사자 매표소 아주머니가 얼른 따라가라고 말씀해 주신다. 사람들도 방금 들어갔다며.

말솜씨 좋은 해설사를 따라 곶자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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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설명중인 해설사님 ⓒ 황보름


사람들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챙 있는 모자에 노란색 조끼를 입은 밝은 표정의 해설사 주위에 서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잠깐 들어도 해설사의 말솜씨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타고난 말쟁이. 씩씩하고 유쾌한 태도가 곶자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로 인해 사라졌던 설렘이 숲으로 걸어가는 발걸음 속에서 다시금 살아났다.

해설사는 앞장서 걷다가 뒤로 돌더니 땅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이게 모게요? 땅을 덮은 이것."

아저씨 한 분이 대답하신다.

"흙이지 모."

"흙 같죠? 아니에요. 곶자왈엔 흙이 없습니다. 용암이 흘러와 바위가 굳어진 곳에 생긴 게 곶자왈이에요. 저 위를 보세요. 모가 있어요? 나무 잎이죠? 저 잎들이 떨어져 흙처럼 잘게 부서진 거예요. 나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쓰러지죠. 그렇게 죽어 쓰러진 나무들도 이렇게 땅을 덮어요. 곶자왈엔 흙이 없다는 것, 잊지 마세요."

흙이 없는데 이렇게 울창한 숲이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자세히 보니 나무들은 흙이 아닌 바위를 뚫고 나와 있었다. 내 몸만 한 바위가 나무를 길러내느라 쩍쩍 쪼개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해설사의 설명은 술술 이어졌다. 우리는 해설사의 손짓에 따라 오른쪽, 왼쪽 두리번 거리며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 숲을 찾은 사람처럼, 처음 나무를 본 사람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곶자왈을 구경했다.

"그런데, 해설사 양반. 곶자왈이 무슨 뜻이요?"

"말씀드려야죠. 곶은 숲, 자왈은 가시덤불. 곶자왈은 숲과 가시덤불이 합쳐진, 제주어예요. 이름 자체가 곶자왈의 순환을 담고 있어요."

해설사는 이곳에서 자랐다고 했다. 나이가 얼추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해설사는 본인이 어렸을 적에 봤던 곶자왈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했다. 자기가 자라는 동안 숲이 순환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숲은 이렇든 순환하며 모습을 바꿔나간다고 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예전엔 겨울이 되면 땔감이 필요했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곶자왈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 갔어요. 숲에 나무가 없어지자, 땅 아래까지 햇빛이 쫘악 비추잖아요. 이때다 싶어, 가시덤불이 무성해지죠. 덤불이 무성해지니 사람들은 곶자왈에 못 들어와요. 사람들이 안 들어오니 나무가 살판나죠. 밑둥밖에 없던 나무들이 쑥쑥 자라나요.

나무 잎이 무성해지자 햇빛이 땅까지 닿지를 않아요. 그러니 가시덤불이 다 죽죠. 나무가 자라자 또 사람들이 나무를 베요. 땅에 햇빛이 비춰요. 이번엔 가시덤불이 또 숲을 가득 채워요. 이렇게 나무와 가시덤불이 계속 순환해 왔던 곳이 곶자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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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를 따라 곶자왈 속으로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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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속 소나무 ⓒ 황보름


해설사는 소나무를 가리켰다. 일자로 쭉 뻗은 소나무만 보다가 구불구불 춤을 추듯 뻗어있는 소나무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졌다. 그 소나무 위로 눈이 아플 만큼 찬란한 나뭇잎들이 가득했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빛이 비춘다.

"소나무가 구불구불 자라는 이유. 뭔지 아세요?"

"햇빛?"

"네, 햇빛 때문이에요.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줄기를 쭉쭉 뻗어나가다 보니 이런 모양이 된 거죠. 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이렇듯 소나무를 구불구불하게 자라게 한 거에요. 곶자왈은 식물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매번 이기는 쪽이 있죠. 자 지금 여러분 주위에 보이는 것들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승자들이에요."

우리는 승자들의 위용을 잠시 감상했다. 승자 치고는 어느 하나 여유를 부리며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바득바득 살기 위해 아직도 싸움 중인 자연의 승자들. 해설사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 번 이겼다고 계속 이길 수는 없어요. 다음엔 다른 쪽이 이기죠. 이 소나무도 이삼십 년이 지나면 죽어 없어질 거예요. 저 위에 나뭇잎이 햇빛을 차단하고 있는 게 보이죠? 소나무는 햇빛이 약하면 못 자라요. 다음 판엔, 햇빛이 약해도 자랄 수 있는 나무가 승자가 될 거예요. 참나무죠. 나중에 한번 다시 와보세요. 그땐 참나무가 가득할 거예요. 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 곶자왈이 보여주죠?"

설명을 듣던 한 아저씨가 말했다.

"이거 완전 인생살이네. 철학이네, 철학."

평소엔 좀처럼 듣기 힘든 '철학'이라는 단어를 한 시간 상간으로 두 번이나 들은 것이 재미있었다. 철학이라. 아저씨 말대로 나무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 역시 자연스레 사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영원한 승자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건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거겠지. 어찌됐건, 승자든 패자든 치열하게 사는 건 같다. 그런데, 나무의 '승!'이란 결국 살아남는 것 자체인 걸 말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우리의 '승!'은 무얼까?

해설사의 설명에 연신 감탄하며 우리는 계속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만약, 지금 함께 걷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곶자왈이 보여주는 신비로우면서도 거친 모습에 분명 겁을 집어 먹었을 거였다.

정갈하게 곧게 뻗어있는 나무는 거의 없었다. 나무들은 서로 뒤엉키고 꺾이고 껴안고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해설사는 과연 여기에 있는 모든 나무들을 다 이해하고, 알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해설사는 바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위에 틈이 보이죠? 숨골이라 불러요. 그 속에서 연중 일정한 온도의 공기가 뿜어져 나와요. 그래서 곶자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죠. 덕분에 이곳 곶자왈엔 열대 북방한계식물과 한대 남방한계식물이 함께 공존하고 있어요. 세계 유일이에요."

일 년 내내 울창한 숲이 유지된다는 곶자왈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모든 나무마다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이란 대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에 해당했다. 이름도 재미있는 꾸지뽕이라는 나무의 생존 전략은 이랬다. 나무 한 가운데 커다란 가시를 뽕긋 세워, 인간이나 동물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었다. 다가오면 확 찔러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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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황보름


인간이 자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듣다보니 50분이 훅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해설사는 어느 소나무 앞에 섰다. 땅에서부터 소나무를 타고 올라와 오른쪽으로 뻗어나가던 덩굴이 어느 시점에서 싹둑 잘라져 있었고, 싹둑 자라진 그 지점의 바로 왼쪽 옆에서부터 새 덩굴이 자라라 위로 쭉 뻗어나가 있었다.

"사람들은 소나무를 좋아하죠? 덩굴이 소나무를 못 살게 구는 것 같으니까 이렇게 덩굴을 자른 거예요. 그런데 덩굴의 생명력도 만만치 않죠. 사람들이 자른 그 지점 바로 옆에서 새 줄기가 뻗어 나와 결국은 소나무를 타고 올라갔어요. 사람의 손도 자연의 생명력을 이길 순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길 봐요."

해설사는 오른쪽으로 뻗어나가던 덩굴 아래 자라나 있는 풀들을 가리켰다. 나무 둥치에서부터 덩굴까지 작고 귀여운 풀들이 가득 자라 있었다. 그런데, 덩굴이 잘려나간 지점에서부터는 풀이 자라지 않았다.

"덩굴이 햇빛을 막아준 곳엔 이렇게 풀이 자랐지만, 덩굴이 없어 햇빛을 그대로 받아 수분이 부족해진 곳엔 풀이 자라지 않아 결국 이렇게 황량해졌죠. 인간이 괜히 나무에 손을 대 이렇게 만든 거예요. 여기서 우린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인간이 자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해설사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마음이 완전히 가벼워졌다. 적어도 이 해설사가 이곳에 있는 한 이곳을 인간의 손에 내버려두진 않을 것 같았다. 저렇게 숲을, 나무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곶자왈을 해칠 리는 없지 않을까.

택시 기사 아저씨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는 인간답게 사는 건 꽤 간단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나아가길 멈추는 것.  진보와 발전은 무턱대고 전진하며 해치우는 과정 중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방향을 정비하고 생명 있는 더 많은 것들에게 이로운 쪽이 어디일지 고심하고 또 고심한 끝에 다시 한 발 내딛는 중에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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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를 가지고 노는 외국인, 그 뒤 나도 똑같이 놀고 있었다. ⓒ 황보름


돌아올 땐 다행히 금방 버스가 왔다.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자마자 낮잠을 질펀하게 잤다. 배가 고파올 즘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협재 해변으로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파라솔 아래에 앉아있다 어떤 아줌마에게 혼이 나 땡볕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앉아 뭘 하고 놀까 하다가 손을 모래에 푹 찔러 넣었다. 모래를 만지작거리고, 산도 쌓고, 무너뜨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모래랑 놀다 앞을 보니 어느새 어느 외국인이 내 앞에 앉아 나와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모래성을 쌓고 무너뜨리고를 반복했다. 외국인의 뒷모습에서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걸 읽을 수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기에, 어떤 기분을 느끼기에 등에서도 이런 기운이 느껴지는 걸까. 내 뒷모습에서도 그런 게 느껴질까? 괜히 슬쩍 뒤를 돌아봤다가 하던 놀이를 계속했다. 내일이면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묵게 될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한다. 이제 여행이 며칠 안 남았다.
덧붙이는 글 2015년 5월 26일부터 6월 24일까지, 30일간의 제주 여행 연재글입니다.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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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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