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회] 참화 입은 노인, 언어를 잊었다

[무협소설 무위도(無爲刀)][82회]

등록 2016.08.03 12:57수정 2016.08.0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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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혁련지가 곁에 와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

"존장 어른, 스님들은 안 계신지요?"


노인은 역시 아무 말이 없다. 혁련지 역시 노인의 특이한 눈길 안에서 시선을 잡아매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시주님들은 저희 암자에 볼 일이 있으신지요?"

어느새 나타났는지 삼십 전후의 젊은 승려가 나무단을 지게에서 내려놓으며 인기척을 냈다.

"저희들은 허산선사님의 자취를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관조운이 인사를 하자, 젊은 스님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남녀를 바라보았다. "안으로 드시지요" 하며 실내로 안내했다. 그 사이 노인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는 듯 요사채 뒤로 갔다.


"소승은 정운(正雲)이라고 합니다. 입적하시기 전까지 허산 스님을 시봉(侍奉)했던 행자였습니다."

정운 승려가 조용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시주님들은 큰스님과 어떻게 되는 관계신지요?"
"혹시 일운상인 모충연이라고 아시는지요?" 

관조운이 되물었다.

"아다마다요. 소승이 비록 무승은 아니지만 소림의 품안에 있다 보니, 강호의 소식에 대해 아주 귀머거리는 아닙니다. 더군다나 모 대협은 저의 큰스님과 아주 가깝게 지내셨던 분이라서 저에게는 사숙과 마찬가지입니다."

정운이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들은 모대협의 제자입니다."

관조운이 정체를 밝히며 스승 모충연의 유언에 따라 향적암까지 오게 된 사정을 얘기했다. 얘기를 듣던 중 정운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말을 끊었다.

"밖에 계신 분이 바로 여러분의 이숙(二叔)되는 기승모 대협이십니다."
"네에?"
"그래요?"

관조운과 혁련지는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기대협께서는 말을 잊으셨습니다."
"말을 잊으시다뇨? ……묵언수행 중이시란 건가요?"
"…."

혁련지가 조심스레 물었으나 정운은 말이 없다.

"저희도 이숙께서 참화를 입으셨다는 소식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계신가요?"

혁련지가 에둘러 다시 물었다.

"허산스님이 입적하시기 6개월 전 모대협과 함께 오셨습니다. 모대협께서는 한 달가량 머무시다 떠나시고 기대협은 그후 이곳 묘적암에서 계속 지내셨습니다."

정운은 묘적암이라는 옛 이름을 고집하는 것 같았다. 

"현재 기 사숙의 용태는 어떠신지요?"

관조운이 물었다.

"그게, 저도 무어라 말씀을 못 드리는 게, 어떨 때는 정신이 곧으신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정신줄을 놓으신 것 같기도 하고. 저로서는 잘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말을 잊으셨다는 겁니다."  
"그럼 스님과 의사소통은 전혀 없으십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찌 의사소통이 없겠습니까. 그 뭐랄까요……, 기대협과 저 사이에는 말로써 하는 의사소통의 필요가 없다할까요. 말이 없으셔도 서로 불편하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대협께서 산에서 귀한 약초를 캐오시면 제가 신도들에게 나눠주고, 그러면 신도들께서 큰 시주를 해주셔서 본산의 지원이 없더라도 그런대로 암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숙을 뵙고 인사를 해도 될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요즘은 좋아보이시니까요. 소승을 따라 오시죠."

정운이 쾌히 승낙하더니 일어나 앞장섰다. 요사채 뒤로 나 있는 오솔길을 오장 정도 가자 아담한 별채가 나타났다.

"허산 스님이 무문 수행을 하셨던 곳입니다. 기대협이 오시자 거처로 내주셨습니다."

정운이 별채의 기둥 옆에 달려 있는 줄을 당겼다. 이숙을 부르는 신호인 것 같았다.

잠시 후 노인이 문을 열었다. 관조운과 혁련지가 안으로 들어서자 정운은 "저는 그럼" 하며 발길을 돌렸다. 사문 간의 만남에 자신은 빠지겠다는 의도였다.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물건도 장식도 없었다. 햇살에 비친 당초문양 문살만이 제가 주인인 양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있다. 노인은 아무런 표정이 없이 서 있다. 

"제자 관조운과 혁련지 사숙님께 인사드립니다."

관조운과 혁련지가 큰절을 올렸다. 노인 기승모의 표정은 담담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무표정에 가깝지만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넋은 있되 동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관조운은 당황했다.  

"우리가 누군지 알려드릴 방법이 없을까?"

관조운이 혁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사숙님께 글을 써보이면 어떨까요. 말과 글은 다르잖아요."

혁련지가 말하더니 이내 지필묵은 챙겨왔다. 기승모의 눈에서 무언가 반짝하는 것 같았다. 관조운이 붓을 들자 기승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조운이 일필휘지로 그 간의 사연을 적어나갔다. 사형 모충연과 사제 습평의 참화를 적어 나가자 기승모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사숙 담곤에게 간 후 운부산 자운헌에서 헤어지게 된 사연을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기승모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글이 끝나자 기승모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기승모가 관조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관조운이 붓을 건넸다. 기승모는 붓을 쥐자 잠시 머뭇거렸다. 이윽고 먹물을 듬뻑 묻히고는 붓을 놀렸다.

운몽선객 기승모의 운필은 절묘했다. 먹을 적신 붓은 학이 노송(老松)에 내려앉듯 사뿐했다가 잉어가 수면 위로 솟구치듯 힘차게 움직였다. 누가 그를 강호의 무인이라 하겠는가. 그의 서법은 평생을 육경(六經)에 파묻힌 유자(儒者)나 시서(詩書)에 일가를 이룬 선비에 버금갔다.

관조운은 이숙 기승모의 서체와 운필을 보고 속으로 놀랐다. 말년에 유학을 숭앙하고 시서를 추구한 스승 모충연보다도 뛰어난 경지였다. 그의 글은 막힘이 없었다. 금세 화선지가 동이나고 먹물이 부족했다. 혁련지가 종이와 먹을 새로 가져오고 관조운이 먹을 갈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승모가 붓을 놓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텅 빈 허공을 향했지만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는 눈빛이었다. 

"나 기승모는 말한다. 내가 나의 심중을 언어로써 나타내기는 얼마만인가. 기억도 아득하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광인(狂人) 취급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한때 나는 광인이었다. 나의 정(精)은 혼돈에 빠져 사고(思考)가 중단되었고, 기(氣)는 흩어져서 나 자신이 누군지도 몰랐고, 신(身)은 무기력에 빠져서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이렇듯 정(精), 기(氣), 신(身)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영(靈)과 혼(魂)과 백(魄)이 제멋대로 날뛰는 자를 광인이라 함은 당연하다. 나의 영은 혼을 제어하지 못했고, 혼은 영을 담아내지 못했다. 영이 없는 혼은 백을 다스리지 못했고, 이런 혼은 또 영을 밀쳐냈다. 이렇듯 정기신과 영혼백이 제멋대로 축생과 천상을 넘나들 때 나라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와 같은 광인의 상태는 나로 인한 것이었으니 누구를 탓하랴. 나는 자신의 재주만 믿고 스승 진인의 충고와 조언을 거슬렀다. 스승님께서는 진경을 저술하면서 간혹 나와 사제(四弟)에게 진기의 운행과 토납의 기식(氣息)을 운용하게 하시고는 그 느낌과 경과를 말하도록 하셨다. 행공(行功)을 시전할 때는 사제에게 그 역할을 자주 맡기셨다. 진인의 행공은 내가신공이었다. 진인께서 네 제자 중 유독 이제인 나와 사제 담곤에게 운기와 행공을 시연토록 한 것은 둘의 무공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자질 때문이었다는 걸 당시엔 알지 못했다.

나는 재(才)가 승하고 사제는 기(氣)가 강했다. 스승 진인께서는 항상 우리 둘을 가리켜, 둘째는 재를 삼가고 삼가 한군데로 모으도록 하고, 넷째는 차오르는 기를 잘 다스려 공(空)에 머무르도록 하라고 하셨다. 진인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현문지공을 운용토록 하는 이유는 둘째의 명민한 재주가 진기의 흐름을 읽어주길 바라며, 넷째의 왕성한 기가 내단(內丹)의 응결을 도와주기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너희가 알고 있는 중원의 길과 다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행여 스스로 터득하려고 하지 말기 바란다'고 하셨다. 왜 나는 그때 스승의 경고를 잊었던가. 나의 알량한 재주를 믿은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넷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와 넷째가 시연한 진기토납과 운기행공은 진경의 초고(草稿)와 이고(二稿), 최대한 쳐주어도 삼고(三稿)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 이상의 원고는 접하기는커녕 눈으로 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초고는 이분지일, 이고는 삼분지이, 삼고는 십분지일 정도만 접했을 뿐이다. 진인께서는 몇 고(稿)까지 개정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셨다. 스승님께서 진경을 저술하시매 언젠가는 제자들에게 전수하시리라는 믿음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스승님의 포부는 일개 사문(師門)의 영화에 갇히지 않으셨다. 무학의 궁극이 고작 무림의 패권을 잡는데 이용될 것을 경계하여 스스로 비급을 봉하셨으니 어리석은 제자들은 스승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한동안 영문을 몰라 하였다.

진인께서 승천하시자 생전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두 제자가 마침내 스승의 뜻을 거스르고 말았다. 나와 사제는 한낱 씨앗의 경험으로 무성한 거목을 꿈꾸었다.

나는 진경의 초고와 이고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공을 수련했다. 스승님께서는 현문지공의 핵심은 내단의 응결에 있지 않고 그 위치에 있다고 하셨다. 단을 어디서 키우느냐가 첫째요 운행은 그 다음이라. 요결의 첫 구절을 기억한 나는 수많은 세월을 기식과 토납으로 지새우며 마침내 그 위치를 찾아냈다. 스승님이 현문이라고 명명한 기해와 관문 사이의 혈에 진기를 응결시켜 단을 형성하자 나의 단전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활활 타오르는 단을 주천(周天)으로 운행하였다. 기경팔맥과 임독양맥을 수월하게 뚫은 단은 내 몸의 소주천을 넘어 양신(養神)의 경지로 향했다. 바야흐로 대주천의 관문에 섰던 것이다. 용천에서 백회까지 소주천을 수백 번을 운행하며 차오르던 나의 단이 관문에 부딪쳤을 때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 후 나는 저승을 헤매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울부짖었고, 질퍽한 수렁에서 신음소릴 냈다. 나의 정신은 나였다가 내가 아니었다가를 반복했다. 이승인가 하면 저승이었고, 저승인가 하면 이승이었다. 그렇게 나를 뜨겁게 달구었던 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의 의식은 흐릿한 막에 싸여서 의식 밖의 세계를 바라보지 못했다. 막을 투과한 인식은 먼 곳의 아우성처럼 웅웅거렸다. 그것은 나의 의식과 무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막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구멍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더니 점점 커졌다. 막이 서서히 걷혀나갔다. 마침내 막이 모두 걷히자 스승님이 현현하셨다.

너는 길은 찾았으되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 모든 행에는 때가 있는 법. 자고로 지리(地利)가 천시(天時)만 못하고 천시는 인덕(人德)만 못하다 했다. 너는 지리의 묘는 득했으되 천시의 운을 놓쳤다. 그토록 조심하라 일렀거늘. 스승님이 빛 속으로 사라지자 대사형과 허산스님이 내 앞에서 웃고 있었다. 나의 단은 스스로 소멸하며 내 의식을 해방시켰지만 말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던가. 헤아려보니 내가 주화(走火)에 빠진지 십년. 십년이 한 순간처럼 짧았지만 주화에서 벗어나고부터는 한 순간이 십년처럼 더디게 흐르는구나. 주화의 안과 밖에서 나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갔다. 나의 의식은 세월을 종단하는 칼이었다. 세로로 갈라진 세월의 흔적 속에서 나는 비로소 스승님 옷깃의 끝자락이나마 쥐게 되었다. 기는 돌아왔고 정과 신은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세상에 나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제자 둘이 내 앞에 있구나. 사형께서 너희를 내게 보낸 까닭이 있을진저. 여래(如來)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달리 있으랴. 사형의 심기를 헤아려 그 뜻을 이룸이 비로소 내 할 일이구나."
덧붙이는 글 월, 수, 금 연재합니다.
첨부파일 크기 줄임 400.jpg
#무위도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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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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