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킬로미터 행군 후 중대연병장에서 소대원과 함께(맨 오른쪽 기자, 맨 왼쪽이 소대 향도였던 안 하사. 1970. 1.)
박도
며칠 전에도 이웃 중대에서 상급자가 LMG(기관총) 총열로 부하의 허벅지를 친다는 게 잘못 허리를 쳐서 후송된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 총열로 맞은 병사는 척추신경이 으스러져 하반신을 못 쓰는 불구자가 될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러한 구타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온 남의 집 귀한 아들을 평생 불구로 만든 거다. 그래서 백성들은 군대 생활이라면 으레 '빠따'를 연상할 만큼, 군내 구타는 아주 고질화돼 있었다. 이런 점도 그동안 젊은이들이 병역을 기피하고자 하는 하나의 원인이었다.
사실 나도 후보생 시절 여름방학 야영훈련 때 구대장들에게 여러 번 매를 맞았다. 소위로 임관된 후 광주보병학교에서도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두들겨 맞았다. 현역 장교도 두들겨 맞았는데 하사관학교나 일반 병사를 훈련시키는 훈련소의 구타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언필칭 자유민주주를 신봉한다는 대한민국의 군대는 아직도 일제 군국주의 잔재가 그대로 계승되고 있었다. 하긴 일본군이나 만주군 장교, 하사관 출신들이 창군의 주요 인물이었다니 그때의 인습이 하루아침에 청산될 리가 있으랴. 더욱이 그들은 민족 앞에 전과에 대한 속죄도 전혀 하지 않은 마당에.
폭력을 잘 휘두르는 군인이 모범군인으로 표창을 받고 진급이 빠른 세태가 문제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납 잘하는 썩은 군인이나 부당한 지시에도 맹종하는 군인들이 벼락 출세하는 풍토도 문제다. 우리 중대장도 사단 최우수 중대장으로 표창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온갖 비리들이 숨겨져 있었다.
"안 하사! 사람의 교육은 말로 하는 거다. 물론 말로 안될 때도 있을 테지. 그러나 벌을 줄 때도 폭력을 쓰거나 인권을 유린해서는 안 된다. 정 그렇게 부하를 교육할 자신이 없거든 네 손으로 계급장을 떼라.""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시정하겠습니다.""알았으면 가 봐!"폭력의 악순환그를 돌려보내고 다시 내 막사로 돌아왔지만 잠이 싹 달아나 버렸다. '줄 빠다'란 아주 고약한 체벌이다. 소대 내무반장이 '줄빠다를 쳐라'는 명령을 내리면, 나머지 소대원 39명은 즉시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가장 선임이 빠따를 들고 39명의 엉덩이를 한 대씩 친다. 그러면 다음 선임이 일어나 38대의 빠따를 친다. 맨 졸병은 39대를 그대로 엎드린 채 맞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후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야 자기도 빠따를 한 대 칠 수 있으니까. 선임들이 빠따를 치면서 후임들에게 하는 말이다.
"야! 억울하면 군대 빨리 올 것이지. 웬 말이 많아. 나는 너보다 먼저 새벽밥 먹고 왔다."지도자(지휘관)들은 합리성·정당성이 없을 때는 폭력을 휘두른다. 폭력에 시달린 병사들은 전투시에 용감할 수 없다. 병사들은 누구를 위해 싸운다는 확고한 신념이 없을 때 전투력을 상실한다.
전투력을 상실한 군사는 아무리 그 숫자가 많아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중국 장제스 군대는 다수 병력과 월등한 화력을 보유했지만 마오쩌둥 군대의 소수 병력에 쫓겨 끝내 대만으로 쫓겨갔다. 그 근본 원인은 장제스 군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전투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내가 30여 년 학교에서 지켜본 바, 신입생 가운데 맞은 녀석은 그 이듬해 꼭 후배를 때렸다. 그들이 후배를 때리는 이유도 한결 같았다. '버르장머리가 없다' '선배를 우습게 여긴다' 등이었다. 폭력은 악순환하기 마련이다. 누가 이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지금 당장 나부터 실천해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폭력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 사회가 될 수 없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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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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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군관학교 박정희 생도는 왜 두들겨 맞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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