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의 이야기가 묘사된 표시이 마을에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한 기사의 결투가 펼쳐졌다
정효정
산티아고 순례길 뿐 아니라, 어딜 여행하든 남녀를 불문하고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가능한 남들이 다니는 시간대에 다녀야 하고, 늘 앞뒤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당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 역시 큰 문제를 일으키기보다, 가진 돈을 원하는 경우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낯선 곳으로 떠나는 걸까. 여행의 매력은 여행을 하며 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다. 매사에 무감각한 어른의 탈을 벗고, 다시 아이의 눈으로 돌아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즐거워 할 수 있다. 우리를 여행으로 이끄는 것은 그 짜릿함이 아닐까.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즐거움을 위해 낯선 곳을 선택한 만큼, 여행지에서 여행자는 아이만큼 무지하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여행의 이면이다.
이미 한 번 한 이야기지만, 길이 성스럽다고 이 길의 모든 사람이 성스러운 건 아니다. (관련 기사 :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변태오빠들) 변태가 있을 수도 있고, 강도가 있을 수도 있고, 좀도둑이 있을 수도 있다. 때문에 자신의 행동반경을 벗어나 낯선 곳에 갈 때는 늘 기억해두어야 한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그녀는 결국 산티아고에 닿을 수 없었다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긴 다리가 있다. 1434년 레온출신의 한 기사가 여인에게 사랑고백을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한다. 그는 그녀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표시로 이 다리를 지나는 기사들에게 창 시합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300개의 창이 부러질 때까지 싸워 승리하고 용맹한 기사가 되어 실연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싸움에 진 기사들은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이 다리를 끝으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 길은 1km 정도 짧지만 마을 끝 도로를 따라가고, 다른 길은 조금 돌아가지만 경치가 아름다운 산길이다. 산길을 선택해 걷기 시작했다. 슬슬 지쳐가고 목도 마를 무렵, 크레파스로 무지개가 그려진 특이한 간판을 하나 만났다. "신의 집 (House of God)" 이라고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