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씨 발언을 허위로 보이게끔 강조하는 자막을 반복적으로 넣은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10/8) 화면 갈무리
여론은 이번 사안을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는 국감 코미디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분위기는 달랐다. 발언 내용은 여당과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의 입장과 거의 동일하다. "군 명예가 훼손되었다" "군 사기가 떨어졌다" "군 모독이다" 등이다. 한마음으로 연예인의 군 일화로 무너지는 모래알 같은 군 사기를 걱정했다.
방산비리, 성추문, 구타 등 군 당국이 스스로 더럽힌 명예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했다. 이어 김제동씨를 불순세력으로 낙인 찍었다. "대통령도 외부세력"이라는 발언을 언급하며 선동꾼으로 몰았다. 또한 "감당할 수 있으면 (국감에) 부르라"는 김제동씨의 발언을 곱씹으며 그가 국회를 조롱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덧붙여, 그간 허위 사실로 선전했을지도 모른다며, 이참에 진상규명해 뿌리를 뽑자는 '김제동 재갈 물리기'도 등장했다.
국방위원회 위원인 백승주 의원이 지적한 방송은 무려 15개월 전, 2015년 7월 5일 JTBC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말아요 그대>다. 김제동씨는 군대 사연에 대한 토크 중 본인의 일화를 털어놓는다. 일병 때, 행사 사회를 보다 일어난 일이다. 김씨가 4성 장군의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주머니'라 불렀고, 이 때문에 13일간 영창에 수감됐다는 것이다.
백 의원은 6일 김제동씨의 발언이 "군 간부문화를 희롱하고 조롱한 것, 군에 대한 신뢰를 굉장히 실추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종편 출연진 역시 같은 이유로 김씨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장성호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교수는 연합뉴스TV <뉴스1번지>(10월 7일)에서 "60만 대군한테는 상당히 큰 비수가 돼 꽂혔을" 것이라며 모든 군인의 마음을 대변했다. 채널A <이남희의 직언직설>(10월 6일)에 출연한 최병묵 전 <월간조선> 편집장, TV조선 <뉴스를 쏘다>(10월 6일)에 출연한 여상원 변호사 등 다수가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TV조선 <이것이 정치다>(10월 7일)에 출연한 민영삼 사회통합전략연구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정부를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비판하고 특히 군사기를 저하시키고 군 명예를 실추"했다고 김씨를 비난했다. 민 원장은 공인으로서 김씨의 발언은 타당하지 않고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제동씨의 발언은 방청객과 서로의 '군대 일화'를 이야기 하던 중 언급된 것이다. 상명하복식 군대 문화 같은 군 부조리는 김제동씨와 당시 방청객 그리고 방송을 시청한 시청자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김씨의 일화는 이를 전제로 가볍게 나눌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이 발언이 군 명예를 실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감장에서 논해야 한다거나, 수사를 통해 진위를 가려야 한다고 방송에서 외치는 건 지나친 비화다.
종편 출연자들의 걱정은 '군 모독'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연합뉴스TV <뉴스1번지>에 출연한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는 김씨의 발언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청소년들한테 아주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젊은 사람들, 그런 걸 보면서 군을 비하하고 폄하할 수 있어요"라며 '국방력은 곧 정신력'인데 그 정신력을 김제동씨가 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TV조선 <뉴스를 쏘다>(10월 6일)에 출연한 여상원 변호사는 부모 마음까지 헤아렸다. 여 변호사는 "지금 군대에서 여러 가지 관심사병이니 문제 많지만, 여기에 대해서 부모들이 과연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 그런 면에서 국감에서 왜 한 희극인의 발언으로 떠드느냐 하지만, 저는 군대 문제만큼 우리 국민들한테 민감한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가 김제동씨의 사례를 두고 걱정을 할까? 궁금하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군 사망자는 평균 연 평균 105명이다.장병들의 생명과 직결된 각종 방산 비리, 윤 일병 사건 등 부조리가 산적해있다. 군 신뢰를 추락시킨 건 다름 아닌 국군과 국방부 자신이다. 여 변호사는 이 모든 사안은 함구하고 김제동씨 발언만 걱정하고 있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10월 8일)의 진행자 이봉규씨는 대한민국은 삼권 분립 국가라고 느닷없이 소리 높인다. 그는 "우리 민주주의 국가 삼권 분립 아닙니까?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이렇게 서로 견제를 하는 건데. 거기에 김제동이가 있나요? 삼권에 맞서는? 나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데, 입법부가…"라면서 분개했다. 김제동씨를 "현 정부에 맞서서 투사 같은 오버액션을 벌인" 사람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김제동씨가 지난 6일 성남시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국정감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제동씨는 "북한이 5차례 핵실험을 했다. (중략) 핵탄두도 소형화 되고, 탄도 미사일도 개발하면 국민의 세금을 받는 사람은 제 이야기를 할 게 아니고, 국방 이야기를 해야 할 것 아닌가"라 말했다.
또한 김씨는 "언제든지 부르시라. 개인적으로 부르면 다 얘기해드릴 수 있다"라며 백승주 의원에게 답하기도 했다. 이어 국감 출석도 출석 요구시 참석하겠다며, "제가 (국감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감당할 수 있습니까? 방산비리는 어떻게 할 겁니까? 몇 만 원 주고 살 걸 몇십만 원 주고 사고, 우리 애들 방탄복이 총알에 뚫리고. 신형복 나왔다고 해서 샀더니 신발에 물이 새요"라고 반문했다. 이 발언을 두고 이봉규씨는 중립을 지켜야 할 진행자의 본분은 망각한 채, 사안을 논란으로 몰아간 것이다.
김병민 여의도연구원 정책 자문위원은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10월 7일)에서 "대한민국 국회를 그렇게 우습게 아시면 안됩니다"라며 김제동씨에게 일침을 가했다. 김 위워는 "나를 부르면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이런 이야기는 사실 이번엔 한 단계 더나간, 국회, 국방위원회를 조롱한 게 아닌가"라고 김제동씨를 국가 권력을 조롱하는 인물로 낙인 찍기도 했다.
황성준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채널A <이남희의 직언직설>(10월 7일)에서 "명백히 제가 볼 때는 영창을 안 갔는데 간걸로 얘기하신다, 물론 본인께서는 웃기자고 한 소리인데 그걸 갖고 심각하게 한다는 말씀을 한다, 문제는 지금 말씀 저 앞에서 보면 굉장히 당당하고 오히려 군 당국을 협박한다는 느낌까지 든다"라면서 아예 김제동씨의 발언을 거짓말이라고 단정지었다. 또한 국감 출석도 문제 없다는 반응을 군 당국을 협박하고 있다고 비하하고 있다.
모두 '국가를 조롱하고 협박하는 불순세력'으로 낙인 찍으려는 시도들이다. 김제동씨는 맥락도 없이 "감당할 수 있겠냐"라고 말한 게 아니다. 연예인이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출석 요구를 받은 기막힌 상황에 대한 답이다.
김제동씨의 말대로 국방위원회 국정감사는 5차 실험까지 진행된 북핵에 대해 논해야 할 자리다. 사실 김제동씨의 입장은 종편 패널들과 다를 바 없다. 북핵은 그간 종편 출연진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김제동씨와 종편 출연진들은 마음을 모아 귀한 국정감사 시간을 허투루 쓴 이 기막힌 상황 먼저 지탄해야 한다.
김제동씨를 비난하려다 황당한 비유를 둔 경우도 있었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개그맨 장동민씨가 한부모 가정 아동을 조롱하는 개그로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10월 7일)에서 김병민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은 느닷없이 장동민 발언과 김제동 발언을 비교했다.
"얼마 전 코미디 빅리그의 장동민씨라고. 한부모 가정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개그맨으로서 방송인으로서 재미있는 소재를 가지고 활용할 수 있겠으나 소재를 활용한 게 아니라 자기 경험담을 가지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한겁니다."장동민과 김제동 발언이 왜 비교거리가 될까? 장동민씨의 발언이 논란이 된 이유는 한부모 가정의 아동이란 약자를 소재로 그들을 조롱한 개그이기 때문이다. 김제동 발언의 주인공은 군단장, 권력자다. 김병민 위원이 비유한 것처럼 소수자를 조롱했던 장동민씨와 김제동씨의 사례는 비교거리도 되지 않는다.
김제동은 최순실 같은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