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직원으로부터 인사 청탁 관련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 중인 경찰서장이 스스로 서장직을 사임하고 대기 발령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청은 3일 해당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후임 경찰서장을 발령했다.
통상적으로 대기발령은 근로자가 현재의 직위 또는 직무를 장래에 계속 담당하게 되면 업무상 장애 등이 예상되는 경우에 내려진다. 사용자가 근로계약관계는 존속시키면서 일시적으로 당해 근로자에게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함으로써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다. 이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비리 의혹으로 대기발령을 요청한 해당 경찰 간부는 대기발령 기간 동안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오늘은 대기발령과 임금에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본다.
대기발령기간에 있는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해야하는지에 대한 판단에 있어 대법원의 입장은 간결하다. 회사의 대기발령 명령이 정당하다면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무방하고, 회사의 대기발령 명령이 부당하다면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정당한 이유 없는 휴직을 금지하고 있고, 대법원은 이 휴직에 대기발령도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당한 이유가 없는 대기발령은 근로기준법 제23조 위반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무효이므로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해당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 대기발령이 정당한 경우
일반적으로 대기발령은 근로자의 귀책사유(직무수행능력 부족, 근무성적 불량, 징계절차 진행, 형사 기소 등)가 있는 경우에 해당 근로자의 직무 종사를 금지시키는 인사 조치이고, 이 기간 중의 임금은 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지급하게 된다.
만약 별도로 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기준이 없다면, 대기발령으로 인한 근로자의 근로제공 미이행은 채무자(근로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의 채무불이행이 되고, 민법의 법리상 쌍무계약에서 쌍방이 무책일 때의 위험부담 역시 채무자가 지므로, 대기발령이 정당한 것으로 내려진 것으로 인정된다면 채권자(사용자)의 귀책은 없다. 따라서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임금제공의무를 가지지 않는다.
다만 사용자의 대기발령명령이 근로자의 자택에서 대기하는 것이 아닌, 사업장에 출근을 하여 대기하는 형식의 것이라면 이는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것이므로 임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은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 역시 대기시간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명령 하에 놓여있는지 아니면 그 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휴게시간인지 아니면 근로시간인지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본다. 예컨대, 근로태세는 갖췄으나 작업지시가 없어 대기한 시간, 버스운전기사가 배차를 기다리는 시간 등은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나. 대기발령 명령이 부당한 경우
사용자의 대기발령이 정당하지 못한 경우, 사용자의 고의과실이 인정되어 민법상 귀책사유에 해당하여 민법 제538조 제1항에 따라 근로자의 근로제공 미이행은 채권자귀책사유에 따른 채무 미이행에 해당하므로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임금전액청구권을 가진다.
그렇다면 기사에서 언급된 경찰간부처럼 비위행위를 행한 근로자가 스스로 대기발령을 요청한 경우는, 대기발령의 신청이 외부의 압력이나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기발령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될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해당 경찰간부에게는 대기발령 기간 동안 임금청구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임금청구권이 없다는 이야기는 근로자가 임금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지, 사용자가 임금을 스스로 지급하겠다는 것은 위법이 아니므로 해당 경찰간부는 대기발령 기간 동안 관련 규정이나 약정에 의해 임금을 지급받을 수도 있다. 물론 국민의 세금이 그렇게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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