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협조 요청 거부하는 국정원 직원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 인터넷 불법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서 지난 2012년 12월 11일 오후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문을 열어 달라"며 협조를 요청하고 있으나, 안에 있는 국정원 여직원이 문을 잠근 채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권우성
전남 장성 출신인 김상욱씨는 원래 서울대 인문대에 들어갔다가 학생운동 전력으로 인해 중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군을 제대한 뒤 다시 공부를 시작해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법조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386세대(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사람들)였던 김씨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들어간 곳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국정원의 전신)였다. 공채 27기였던 그는 특진을 통해 사무관, 서기관, 부이사관까지 올랐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을 보고야 마는 타고난 성격으로 주어진 업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김상욱의 희망 만들기> 출판사 서평 중, 2011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감찰을 받고 연달아 인천지부와 대구지부로 좌천됐다. 지난 1997년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씨가 1996년부터 진행됐던 안기부의 김대중 후보 낙선공작(북풍공작 등)을 좌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얘기다. "김상욱씨가 DJ정부 출범에 공헌했다"라는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의 말도 이러한 사정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한 뒤 처음 안기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 친구 잘 있나?"라고 김씨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김상욱의 희망 만들기> 중). 하지만 지역으로 좌천당한 김씨는 결국 지난 2009년 23년간 몸담았던 국정원을 나왔다.
국정원에서 나온 김씨는 지난 2011년 민주통합당 평당원으로 입당했다. 시흥시호남향우연합회 자문위원과 시흥시검도협회 상임고문, 시흥시중앙로터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김상욱의 희망 만들기>라는 자서전을 펴내며 대중정치인을 꿈꾸었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지난 2012년 2월에는 경기도 시흥갑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공천은 백원우 민주통합당 후보(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돌아갔다. 대중정치인의 꿈은 잠시 좌절됐지만, 당원으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김씨는 지난 2012년 5월께 국정원의 댓글공작을 알게 됐고, 5개월 뒤인 10월께 당에 보고서를 올렸다. "국정원 대북심리정보국 3개팀 소속 76명이 인터넷에 댓글을 달며 여론을 조작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러한 보고서는 당시 김부겸 전 의원(현 행정자치부장관)을 거쳐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인 유인태 의원에게 전달됐다. 유 의원은 같은 해 10월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댓글공작 의혹을 제기했지만 국정원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2개월 뒤인 12월 11일 민주통합당이 서울 강남 소재 한 오피스텔을 급습하면서 국정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은 수면 위로 올랐다. 사건은 원세훈 전 원장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파기환송되고(2015년 7월), 원세훈 전 원장이 수감된 지 24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2015년 10월까지 지속됐다. 오는 7월 말이나 8월 초 파기환송심 결과가 나오면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의 법적 심판도 마무리된다.
'유죄' 판결 1심조차 "국정원 댓글활동이 외부에 알려지는 계기" 평가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이 수사와 고발, 재판,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지속되고 있던 동안 '최초 제보자' 김씨는 시련의 나날을 보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최성남)는 지난 2013년 6월과 2014년 1월에 김씨를 두 차례 기소했다.
첫 번째 기소는 그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국정원 댓글공작을 누설해 선거운동 기획에 참여했다는 혐의였다('공직선거법 위반'). 두 번째 기소는 지난 2012년 12월 국정원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의 활동 내용 등을 공개하고('국정원직원법 위반'), 국정원 수사국장을 사칭해 심리전단 소속인 김하영씨 등 국정원 현직 직원들의 주소를 알아낸 혐의였다(형법상 '위계공무집행방해').
지난 2014년 2월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관련기사 :
'댓글 제보' 국정원 전현직 직원, 선거법 무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 국정원직원법 위반과 형법상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는 유죄로 판단한 결과였다. 특히 1심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는 "결과적으로 대선에 영향을 일으킨 것은 맞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라고 판결했다. 그가 국정원 댓글공작을 제보해 문재인 후보의 대선 승리를 꾀했다는 검찰의 주장도 "지나친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검찰이 징역 2년 6월을 구형했는데도 벌금 200만 원 선고에 그친 이유와 관련, 1심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 개인정보 누설 등은 비난의 여지가 있지만, 이 내용이 국가 안보와 연관있는 중요 정보가 아니고, 국정원 활동에 영향 또는 제약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정원 댓글 활동이 외부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라며 김씨의 제보에 '공익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검찰은 2심에서도 징역 2년 6월을 구형했다(2014년 6월 결심공판). 검찰은 "김씨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댓글사건을 계획적으로 폭로했다"라며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충족하려 한 범죄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댓글제보는 국정원과 직원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이다"라며 "(제가 법정에 선 것은) 국정원을 배신하면 끝까지 처벌하겠다는 조폭 논리와 검찰의 형식적인 법 적용 논리가 결합한 결과다"라고 반박했다.
"길지 않은 인생의 대부분을 국정원에서 보냈기 때문에 조직과 직원에게 애정이 크다. 하지만 불법행위까지 눈감아야 하는 애정이라면 그만두겠다."같은 날 참여연대는 시민 1264명과 함께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모든 혐의들에 무죄를 선고했다(2014년 7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원심의 판단처럼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유지했고, 원심의 판단과 달리 국정원직원법 위반과 형법상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에는 "퇴직한 김씨가 국가안보와 관련한 중요 정보가 아닌 사실을 공표했다"라고, 형법상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에는 "심리전단 직원들의 주소를 알려준 것은 직원간 사적인 호의에 의한 것이지 위계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퇴직 국정원 직원에게 국정원장의 허가를 요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대법원도 이러한 항소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지난 2016년 12월 김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조선>과 새누리당의 '매관매직 의혹' 오보 검찰이 김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하는 동안 보수언론도 움직였다. 지난 2013년 6월 11일 <조선일보>는 "전 국정원 직원 김씨가 민주당 측으로부터 대선에서 크게 기여하면, 민주당이 집권한 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자리나 총선 공천을 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라고 보도했다. 김씨와 민주당을 괴롭힌 '매관매직 프레임'의 시작이었다.
새누리당도 <조선일보>의 보도에 맞추어 프레임을 전환했다. 새누리당은 애초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을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이라고 공격해왔다. 하지만 여론을 설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프레임이었다. 그런 가운데 <조선일보>가 '매관매직 의혹'을 제기하자 새누리당도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을 '야당 대선후보에게 줄을 대서 출세하려던 국정원 전직 직원의 매관매직 사건'이라는 규정하고 정치적 공세에 나섰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지난 2013년 6월 17일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이 민주당의 매관매직를 제의받고 정보를 빼내는 짓을 했다면 이것이야말로 명백한 정치개입이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8월 19일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김진태 의원은 "바로 김상욱씨처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조직을 이렇게 매관매직하는 행태가 문제다"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13년 6월 20일 <한겨레>에 "김씨가 대선과 관련해 직을 제공받기로 했다는 의혹에 대해 본인 진술도 없었고, 참고인한테서도 그런 진술은 없었다. 제3자의 진술도 없었다"라고 부인했다. 김씨는 <조선일보>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정정보도'와 '위로금 300만 원 지급'의 중재안을 내놓았다. 결국 <조선일보>는 지난 2014년 2월 28일 매관매직 의혹을 보도했던 기사가 오보였음을 인정하는 정정보도를 냈고, 김씨에게 300만 원을 지급했다. 법적으로만 보면 <조선일보>와 새누리당의 '완패'였다.
그런데 김씨가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인천지검 특수부(부장 정순신)가 움직였다. 지난 2010년 6월부터 2011년 4월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부당청구 실사를 받게 된 약사로부터 총 35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김씨를 구속한 것이다(2015년 1월). 재판 과정에서는 대가성 여부와 수수 금액 등에서 논란이 있었다. 김씨가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조사 무마 청탁 대가'가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추징금 3500만 원'으로 마무리됐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으로 정권의 정통성에 위기를 느낀 박근혜 정부가 김씨의 추가 폭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검찰을 동원해 그를 구속했다는 시각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문화계, 법조계 등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반정부 인사'들을 압박하고 있었다는 점까지 헤아리면 김씨의 알선수재 사건 검찰 수사에 권력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국정원, 대통령의 선의만을 믿기에는 매우 위험한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