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간행된 <자치통감> 해설서.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사마광의 '아무말 대잔치'어느 시대건 간에 수구세력은 진보세력보다 학력이 높고 교양이 많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무식한 말을 하지 않는다. 힘이 충분할 때는 그렇게 한다. 그럴 때는 어이없는 말로 하기보다는 공권력과 법률을 앞세워 진보세력을 쓸어버리려 한다.
그런데 신종시대와 그 직후에는 수구세력한테 그런 힘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체면을 깎으면서까지 어이없는 주장들을 내놓게 된 것이다. 고명한 지성인인 사마광도 그랬다. 송나라 역사서인 <송사>의 식화지(경제 파트)에 따르면, 사마광은 왕안석의 개혁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황당한 논리나 주장을 내세웠다.
신법개혁 중에 면역법이 있었다. 과중한 요역(노동력 무상제공) 부담을 덜어주고자 금전을 납부하면 요역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농민 입장에서는 1년에 최소 1개월 요역을 하느니 차라리 금전을 지불하고 면제받는 게 더 나았다. 그런데도 사마광은 면역법을 두고 "가난한 백성들을 각박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면역법이 백성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어렵게 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신법개혁 중에 보갑법이란 것도 있었다. 농민들을 조직해서 치안 기구를 만드는 제도였다. 군사비 절감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군사비 충당을 위해 농민들한테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농민들을 위한 제도였다. 그런데도 사마광은 "보갑법은 농업이 아닌 다른 일에 힘을 쏟도록 만든다"고 비판했다. 바쁜 농민들한테 엉뚱한 일을 시키는 불필요한 제도라고 비판한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청묘법에 대한 억지 비판이다. 청묘법은 봄이나 가을에 저리로 쌀을 빌려준 다음 가을이나 이듬해 봄에 되돌려 받는 제도다. 정부에 비축된 쌀을 빌려주는 것이므로, 정부가 내주는 쌀은 당연히 묵은 쌀일 수밖에 없었다. 농민이 수확을 마친 뒤에 쌀을 갚게 되므로 정부가 받는 쌀은 당연히 새 쌀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사마광은 이렇게 말했다.
"청묘법은 강제로 빌려주고 무겁게 거두는 제도로서, 묵은 쌀을 빌려주고 햅쌀을 받는 제도다." 이렇게 현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내세우며 왕안석의 개혁을 뿌리채 뽑으려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어이없는 주장이 결국 정치를 움직였다는 점이다.
사마광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인 사람한테는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황당한 소리가 개혁에 불안을 느끼는 기득권층을 자극하고 분발케 하는 역할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흥분시키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 아니라 선동적이고 감정적인 주장인 경우가 많다. 사마광의 주장은 기득권층을 상대로 그런 역할을 했다. 그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송나라판 홍준표'의 주장은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기득권층은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수하에 농민들도 많았다. 먹고 살자면 지주의 말을 들어야 하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직접 책임질 수 없는 개혁세력의 논리에 귀를 기울이기는 힘들었다. 결국 세상은 사마광의 주장대로 움직였고 왕안석의 개혁은 더욱 더 철저히 짓밟혔다.
홍준표 대표의 적폐청산 주장도 사마광의 주장만큼이나 황당하고 억지스럽다. 하지만, 그의 언행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중도나 진보적 입장에 선 사람들한테는 우스운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돈과 부동산을 가진 기득권층에게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로 들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을 자극하고 분발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홍준표의 주장도 설득력 있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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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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