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과 신하들.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의 ‘율곡 이이 유적’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지금 추진되는 공수처는 양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중립성을 지향한다. 법무부 정책기획단이 15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공수처의 중립성을 실현하는 장치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공수처장 임명 방식이다.
법무부장관·법원행정처장·대한변협회장 및 국회 추천 4인으로 구성되는 추천위원회가 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하면,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의원들과 협의해서 1명을 선출하고, 국회에서 선출된 그 한 명을 대통령이 처장으로 임명한다.
만약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대표의원들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후보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지명한 뒤 인사청문회를 거쳐 처장으로 임명한다. 이처럼 공수처장 임명 과정에 법무부장관·법원행정처장·변협회장·국회·여야정당·대통령 등을 관련시킴으로써 공수처가 특정 세력한테 장악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헌부·사간원의 중립성을 실현하기 위한 조선시대 방식과 공수처의 중립성을 실현하기 위한 지금 방식 중에서 어느 게 더 효율적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조선시대 방식은 이미 검증됐고, 지금 방식은 앞으로 겪어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치적 중립성만 갖고는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개인·단체·종교 등은 무수히 많다. 중립적 세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위공직자들을 견제할 수 있다면 이들의 비리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을 것이다.
사실, 정치적 중립이란 것은 다른 각도로 보면 정치적 힘이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힘도 없이 강력한 법적 권한만 가질 경우에는, 정치적 힘을 가진 세력한테 오히려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우리 헌법에서는 국무총리가 대통령에 버금가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권한을 행사한 총리는 거의 없다. 권한에 걸맞은 정치적 힘이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 역시 다르지 않다. 실질적 힘도 없이 법률 규정만으로 강력한 기구가 되기는 쉽지 않다. 입법·행정·사법 분야를 전 방위적으로 견제하려면 그에 맞은 실질적 힘도 있어야 한다.
그런 힘을 공수처에 보탤 수 있는 힘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 밖에 없다. 공직사회 전체를 상대로 고독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공수처를 응원할 세력은 시민사회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은 인터넷과 SNS의 영향으로 시민사회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민사회가 공수처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힘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기구라서 사실은 정치적 힘이 별로 없는 공수처가 정치적 힘을 가진 공직사회 전체를 견제할 수 있으려면, 공수처가 시민사회로부터 힘을 제공받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실질적 힘도 없이 법률상의 막강한 권한만 믿고 공직사회와 맞붙었다가는 공수처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데 법무부가 발표한 방안에는 시민사회와 공수처의 연관 가능성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시민사회가 힘을 보탤 수 있는 장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시민사회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변협회장이 공수처장 추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양사를 지탱한 건 '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