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는 '개굴개굴' 울지 않는다

[김찬곤의 말과 풍경 32] 한하운의 시 '개구리'에 얽힌 이야기1

등록 2018.06.04 07:10수정 2018.06.0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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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들판은 모내기가 한창이다. 모내기 철이 되면 뽕나무 오디와 앵두와 파리똥(보리수)이 익어간다. 이 세 나무는 공통점이 있다. 앵두와 보리수는 밑동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뽕나무는 밑동 조금 위에서 갈라지기는 하지만 위로 쑥쑥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키가 높지 않아 아이들이 쉽게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 특히 앵두나무가 그렇다. 앵두나무는 언제나 아이들 차지이고, 아이들 나무였다. 모내기 철 아이들의 궁금한 입을 달래주는 나무였던 것이다.

모내기 철 아이들의 궁금한 입을 달래 줬던 오디와 앵두와 보리수 이 세 나무는 공통점이 있다. 앵두와 보리수는 밑동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뽕나무는 밑동 조금 위에서 갈라지기는 하지만 위로 쑥쑥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키가 높지 않아 아이들이 쉽게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
모내기 철 아이들의 궁금한 입을 달래 줬던 오디와 앵두와 보리수이 세 나무는 공통점이 있다. 앵두와 보리수는 밑동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뽕나무는 밑동 조금 위에서 갈라지기는 하지만 위로 쑥쑥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키가 높지 않아 아이들이 쉽게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김찬곤

요즘 무논에 개구리가 밤만 되면 자갈자갈 울어댄다. 개구리는 허파와 살갗으로 숨을 쉰다. 특히 촉촉한 공기가 몸에 닿아 축축해지면 피부로 숨을 쉬기가 편해지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 더 극성으로 운다. 비가 오려 할 때나 비가 내릴 때 쉬지 않고 울어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낮에도 울기는 하지만 건조한 낮보다는 공기가 촉촉한 밤에 더 많이 운다. 물론 소리 내어 우는 놈은 수놈이다. 울음소리로 암놈을 부르는 것이다.

우리 시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는 공백
 
개구리 울음소리를 노래한 시가 많을 것 같지만 막상 찾아보면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찾기가 힘들다. 동시에는 그래도 꽤 있는데 시에서는 찾기 힘들다. 백석에서도, 정지용에서도, 김소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잘못 헤아렸는지 모르지만 없는 것 같다. 모내기 철, 이 무렵 우리나라 온 들판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붙잡아 쓴 시가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 시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공백으로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해 본다. 다행히 '문둥이 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의 시에 '개구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시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아래에 전문을 들어본다.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 라.

이 시는 한하운이 1949년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는 바와 같이 '동시'로 볼 수 있는 시다. 물론 한하운은 이 시를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쓰지는 않았다. 이렇게 시인이 처음부터 '동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지 않고 쓴 시인데도 동시로 볼 수 있는 시가 꽤 있다. 김소월이 1922년 1월 <개벽>에 발표한 '엄마야 누나야', '개아미', '부헝새' 같은 시가 바로 그런 시다. 김동환의 '북청 물장사'(1924), 복동의 '단풍잎'(1924), 최서해의 '시골 소년이 부른 노래'(1925) 같은 시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국어1-1 가》에 실린 한하운의 시 〈개구리〉  한하운의 시 〈개구리〉를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가》에 실은 까닭은 아무래도 한글 자음과 모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초등학교 《국어1-1 가》에 실린 한하운의 시 〈개구리〉 한하운의 시 〈개구리〉를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가》에 실은 까닭은 아무래도 한글 자음과 모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일 것이다.교육부

개구리는 개굴개굴 울지 않는다


우리 한글은 자음 열네 개, 모음 열 개로 이루어져 있다. 한하운의 시 '개구리'를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가>에 실은 까닭은 아무래도 한글 자음과 모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한글 자음과 모음을 아래에 차례대로 들어본다.

자음 14개 :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모음 10개 :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시 '개구리'는 자음 두 개(ㄱ·ㄹ)와 모음 열 개를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쓰고 있다. 더구나 리듬을 타고 읽으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인 백창우는 이 리듬을 고스란히 살려 이 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물론 개구리는 '개굴개굴' 울지 않는다. 참새가 짹짹, 매미가 맴맴 울지 않듯이 말이다. 참새는 아침저녁으로 우는 소리가 다르고, 곳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운다. 매미도 웬만해서는 맴맴 울지 않는다. 굳이 울음소리를 글자로 옮기면 '우우웽 우우웽' 정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우는 매미는 참매미다. 참매미는 깊은 산속이나 시골에나 가야 들을 수 있다. 여름 한낮 도시에서 단조롭게 '찌이이이이이이' 우는 매미는 말매미, '쓰르르르름 쓰르르르름' 우는 매미는 쓰름매미, 기름이 끓듯 찌글찌글 찌글찌글 우는 매미는 유지매미, 이씨씨용 이씨씨용 우는 매미는 애매미다. 하지만 우리는 매미 하면 무조건 '맴맴' 운다고 생각하고, 글로 쓸 때도 마찬가지다.

개구리도 황소개구리, 참개구리, 산개구리 다 다르다. 인터넷에서 찾아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청개구리는 꾸욱꾸욱 울고, 참개구리는 꾸깨깨깩 울고, 무당개구리는 흐흑 흐흑 흐흑 울고, 황소개구리는 으우웽 운다. 한 번만 들어봐도 이 세상에 '개굴개굴' 우는 개구리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년의 한하운과 전북 익산 이리농림학교 시절(왼쪽이 한하운) ·
말년의 한하운과 전북 익산 이리농림학교 시절(왼쪽이 한하운)·한국근대문학관

자고 나면 검은 눈썹이 없어지고

1920년 3월 1일,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우리 겨레는 거리에서, 시장에서, 들판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태극기를 높이 쳐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 이듬해 3월 10일, 한 시인이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났다. 바로 한하운이다.

아버지는 함주에서 알아주는 지주였다. 함주 고을에서 아버지 땅을 부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그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맏아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았다. 1936년 봄, 전라북도 익산 이리농림학교(지금의 전북대학교 익산캠퍼스)에서 축산학을 공부할 때였다. 몸이 안 좋아 경성제국대학교 부속병원(지금의 서울대병원)에 갔는데, 글쎄 의사가 한센병이라 하는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열일곱이었다. 그는 모든 공부를 팽개치고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간다.

한하운이 말년에 살았던 인천 집 한하운은 1975년 2월 28일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에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의 나이 56세이고, 그가 인천에 자리 잡은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인생에서 절반을 인천과 부평에서 산 셈이다.
한하운이 말년에 살았던 인천 집한하운은 1975년 2월 28일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에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의 나이 56세이고, 그가 인천에 자리 잡은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인생에서 절반을 인천과 부평에서 산 셈이다.한국근대문학관

1937년, 병 기운이 어느 정도 약해지자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성혜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서 공부를 마친 다음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대 농학원 축목학계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 중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다.(일본·중국 유학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건강한 사람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1945년쯤일 것이다. 자고 나면 검은 눈썹이 없어지고, 자꾸 코가 막혀 숨도 못 쉴 지경에 이른다.

마침내 관청에서도 한센병자라는 것이 알려져 공무원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해 8월 15일, 조국이 해방된다. 남한은 자본주의 사회가 되고,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가 되었다. 그의 집안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거리로 내쫓긴다. 그 이듬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한 집안의 장남인데도 상주가 될 수 없었다. 병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락에 숨어 어머니를 보냈다. 그에게 이 일은 평생 피맺힌 한으로 남는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한하운 #개구리 #김찬곤 #개구리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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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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