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성남북사무소 제재위반' 보도, 의심스럽다

[김종성의 '이 뉴스 진짜야?'] 미국 기존 외교관행과 상이한 내용... 익명 취재원 정치적 입장 작용했나

등록 2018.08.22 15:26수정 2018.08.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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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조선일보'가 내보낸 '미, 개성남북사무소 유엔·미 제재 위반' 기사.
지난 20일 '조선일보'가 내보낸 '미, 개성남북사무소 유엔·미 제재 위반' 기사. 조선일보PDF

4.27 판문점선언에 규정된 '남북연락사무소 설치'가 임박한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유엔 결의 위반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익명의 미국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한 8월 20일 치 워싱턴발 기사다.

이 기사는 "남북이 이달 중 개성공단 내에 설치할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관련, 미국이 '유엔 대북 제재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 독자 제제 위반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라며 미국이 연락사무소 설치를 대북제제 위반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뒤 이렇게 보도했다.

"미 행정부 고위관리는 17일(현지 시각)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조만간 문을 연다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연다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제재를 한국이 위반하는 위험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영문판에 따르면, 특파원에게 익명 보도를 요구했다는 행정부 관리는 연락사무소를 'a liaison office'라고 표현했다. 이런 연락사무소가 미국의 외교 관행상 어떻게 운용됐는지 살펴보면, 행정부 관리가 했다는 그 말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외교 관행에서도 연락사무소는 외교 관계의 이전 단계에서 설치된다. 또 외교 공관에 준하는 성격을 가지며, 일반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설된다.

연락사무소가 그런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은, 20세기 미국 외교에서 인상적이었던 두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두 사건'은 세계 최강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지 않은 두 나라와 수교한 일을 가리킨다.

연락사무소, '정치적 기능'을 수행해왔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 개성공단 방북 천해성(맨앞) 통일부 차관 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 일행이  개성공단을  방문하기 위해 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출경하고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 개성공단 방북천해성(맨앞) 통일부 차관 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 일행이 개성공단을 방문하기 위해 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출경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제2차 세계대전 승리로 세계 최강이 된 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북한·중국 연합군과 대결했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베트남전쟁에서는 북베트남에 패배했다. 그래서 북한·중국·베트남은 미국 현대사에 수모를 안겨준 나라들이다. 그런데 그중 중국과는 1979년 수교했고, 베트남과는 1995년 수교했다. 치욕과 망신을 준 나라들과의 관계정상화였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미국 외교에서 결코 망각되기 힘든 일이다.


이 두 사건에서도 연락사무소는 경제적 기능이 아닌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경제 교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적어도 연락사무소의 설치 목적은 정치 교류의 활성화였다. 이 점은 연락사무소에 배치된 공무원들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중국-미국간 연락사무소 설치에 관한 1973년 3월 16일 치 <매일경제> 보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닉슨 대통령은 (중략) '북경 주재 미국연락사무소는 오는 5월에 개설되며 브루스씨를 위시한 국무성의 중국문제 전문가 알프레드 젠킨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존 홀드리지 위원 등 20명의 외교관을 상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베이징 주재 연락사무소에 외교관들을 배치했다. 만약 경제지원을 염두에 둔 통상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었다면, 외교관보다는 통상 혹은 경제 전문가를 배치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 사무소가 정치적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무소는 중국과 미국의 정치 교류를 촉진시켜 양국이 대사급 관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됐다.

베트남과의 관계에서도 연락사무소가 그런 기능을 수행했다. 베트남과 미국이 이 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시점은 1995년 1월 27일이다. 수교 5개월 보름 전이었다. 양국은 그해 7월 11일 국교를 체결했다. 미국은 1964년 5월 4일 북베트남(공산 베트남)을 상대로 무역제제를 가했다. 그렇다면, 수교 6개월 전에 있었던 연락사무소 설치가 그런 제재를 풀어주는 효과를 발휘했을까?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북베트남 무역제제를 해제한 시점은 1994년 2월 3일이다. 연락사무소 설치 11개월 전이었다. 이것은 경제제재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자, 연락사무소가 그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미국은 제재 해제 전인 1992년 연말부터 분위기 조성작업에 들어갔다. 미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을 허용한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전임자인 조지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은 1992년 12월 14일 미국 기업의 베트남 지사 개설을 허용했다. 이 조치가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로 연결됐지, 연락사무소 설치가 그것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국교 개설로 이어졌을 뿐이다.

이처럼 20세기 미국 외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두 사건에서, 연락사무소는 경제제재 해제와 무관하게 정치적 기능을 수행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 특파원으로부터 외교 문제에 관한 전화 인터뷰 요청을 받을 정도의 행정부 관리라면, 이 정도 상식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 맞다.

실제로 제1차 북미 핵위기 당시의 제네바 합의(1994) 때도 미국이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두려고 했다. 제네바 합의 제2조 제2항은 "양측은 전문가급 협의를 통해 영사 및 여타 기술적 문제가 해결된 후에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라고 했다.

또한 제3항에서는 다음 단계로 "미국과 북한은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뤄짐에 따라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시켜 나아간다"라고 규정했다. 만약 연락사무소 설치가 대북제제 해제와 직결되는 것이라면, 제2조 제1항에서 대북 무역제재의 완화 방침을 별도로 규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보도에서 "미 고위 관리 '문제되면 처벌'"이라는 부제목을 달았다. 미국 외교가에서 연락사무소라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라면 클린턴 대통령이 제네바 합의 제2조 제2항에 합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외교 관행으로 볼 때,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가 그렇게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런데도 <조선일보>에 따르면, 익명의 행정부 관리는 가장 강한 말로 문제를 지적했다.

만약 그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자기가 아는 지식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라면, 이것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그가 이 문제에 관한 인터뷰를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자료사진).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자료사진). 연합뉴스

20일 청와대 춘추관 정례 브리핑에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연락사무소와 관련해 "미국도 이해를 표한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통화한 그 미국 관리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이는 그가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반감을 가진 인물임을 의미한다. 자국 정부도 이해를 표한 사안에 대해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왈가왈부할 정도라면, 보통 이상의 반감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익명의 관리 입장이 미국 정부 입장?

 <조선일보> 기사의 영문판.
<조선일보> 기사의 영문판. <조선일보>

문제는 또 있다.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서도 한 미국 관리 개인의 발언을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포장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미국 관리가 "우리는 조만간 문을 연다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는'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으려면, 그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대체적인 분위기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발언은 미국 대통령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따라서 그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우리는'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조선일보>에 등장한 취재원은 익명의 관리일 뿐이다.

동일한 문제점이 영문판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영문판 기사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금요일에 미국 정부는, 폐쇄된 개성공단 내에 계획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유엔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제재까지 위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The U.S. government on Friday warned that a planned inter-Korean liaison office in the shuttered Kaesong Industrial Complex "could violate not only United Nations but U.S.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영문판에서는 미국 정부가 공식적인 경고 성명을 발표한 것처럼 서술돼 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가 공식적으로 그런 성명을 낸 것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트위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금요일에 미국 정부는 (중략) 경고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미국 정부가 한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종합하면, 미국의 외교관행과 다른 정보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인터뷰 대상이 적절하냐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공식 입장인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유엔·미 제재 위반' 기사가 과연 사실에 부합하고, 적절한 기사인지 의문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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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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