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소년법에는 비행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청소년을 법정에 세워 처분을 내릴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바로 '통고'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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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온 날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와 무조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우겼다. 자신이 아들에게 죄인이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난 뒤, 그는 제 손으로 아들을 소년원에 보냈다는 말을 어렵게 내뱉었다. 그렇게 하면 아들이 착해져 돌아올 줄 알았는데 걷잡을 수 없이 사고만 치고 다닌다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사건을 맡겠다고 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어린 소녀처럼 웃었다.
어머니의 손으로 소년원에 보내졌다는, 출소 후에 더욱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아들. 직접 만나봐야 했다. 하지만 현석은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도와줄 변호사가 있으니 함께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도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그의 전화번호를 받아 직접 연락했다.
현석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하지만 재판을 앞둔 터라 순순히 사무실로 찾아왔다. 재판을, 그것도 중한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재판을 앞둔 청소년이 태연하기란 쉽지 않다. 허세를 부렸지만 분명 현석도 떨고 있었다.
현석은 소년법 처분 중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을 받아 소년원에서 2년을 보냈다. 대개 10호 처분을 받으면 수용기간 서너 달을 남기고 임시퇴원을 하는데, 현석은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 2년을 모두 채우고서야 나왔다.
그리고 퇴원한 지 하루 만에 사고를 쳤다. 현석은 동네 친구를 불러내 다짜고짜 스마트폰을 빼앗았고, 그 스마트폰으로 중고거래 사이트에 접속해 오토바이 판매자에게 연락해 만났다. 현석은 시운전을 해보겠다며 열쇠를 건네받자마자 그대로 달아났다. 친구도, 오토바이 판매자도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이외에도 경찰이 파악한 범죄는 두 건 더 있었다. 모두 소년원 퇴원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현석은 마치 경찰에 잡히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 같았다. 자신이 누군지 뻔히 아는 친구의 스마트폰을 빼앗고, 그것으로 오토바이 사기를 쳤다. 완전범죄는커녕 '나를 잡아가시오' 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 두 건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시위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현석이 소년원에 간 이유를 물어봤다.
"제가 통고 신청을 했어요..."
대답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상상도 못한 엄마의 행동...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머니가 통고 신청을 했어도 10호 처분은 납득할 수 없었다. 비행을 저지르지도 않은 청소년을 소년원에 보낸다는 것은 소년사건 전문 변호사로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중학교 3학년 시절, 현석은 학교에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마땅히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자신과 같이 학교에 가지 않고 동네에서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딱 소년법이 규정한 통고대상 청소년이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어머니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학교에 찾아온 어머니는 통고란 제도가 있고, 현석을 대상으로 신청하자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을 법정에 세워야 할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남편 없이 혼자 키워온 아들은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언젠가부터 현석은 엄마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현석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조만간 큰 사고를 칠지 모른다고 했다. 사고를 치기 전에 법원에 보내 적절한 조치를 하면 전과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재판만 받고 다시 나오면 또 다시 사고를 칠 수 있으니 최대한 소년원에 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소년원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소년원은 교도소가 아니라 기술도 가르쳐주고 여러 가지 교육도 해주는 학교라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찾아보니 정말 소년원이 아니라 ○○학교가 정식 이름이었다. 어머니는 결국 통고 신청을 했고, 법원에 현석을 최대한 소년원에 보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가둬놓고 공부라도 가르치겠다는 심정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사건자료에도 현석이 소년원에 간 사유가 쓰여 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법원은 현석에게 보호관찰처분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석이 보호관찰소에 가지 않았고, 보호관찰소가 그의 처분 변경 신청을 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몇 차례 처분이 변경되다보니 결국 소년원에 가게 된 것 아닐까?'
그런데 2016년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2016년 6월 통고처분 사건 중 소년원에 보내는 9~10호 처분이 내려진 사례는 무려 51건에 달했다. 현석이 어머니의 통고로 소년원에 보내졌다는 것은 사실일 수도 있었다.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현석아, 엄마가 너를 소년원에 보냈니?'라고. 너무 가혹한 질문이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선생님의 권유와 설득이 있었다고 해도, 엄마가 자신을 소년원에 보낸 것을 '날 위한 일'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일 청소년은 없다. 하지만 현석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지원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현석아, 소년원에는 왜 간 거야?"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내 생각에 현석이가 어떻게 소년원에 갔는지가 지금 네 마음을 이해하는데 중요할 것 같아서 그래."
"정말 기억이 안 나요."
가혹한 진실, 너무 멀어진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