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5월 29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
유성호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마지막 국민장이 됐다. 노무현 서거 2년 뒤인 2011년 5월 30일,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국장·국민장법)'이 국가장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국민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국가장 하나로 통일돼 있다. 국민장 명칭이 부활하지 않는 한,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국민장의 주인공으로 남게 된 것이다.
사실, 국장과 국민장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없었다. 정부가 주관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국장 경비는 국가가 전액 부담하고 국민장 경비는 국가가 일부 부담하며(국장·국민장법 제5조), 국장 때는 관공서가 쉬고 국민장 때는 그렇지 않다(같은 법 제6조)는 정도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당일인 2009년 8월 18일 저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조문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장·국민장을 결정하는 문제는 선례와의 형평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선례를 보면 현직 대통령이 서거할 때는 국장, 전직 대통령이나 사회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일 경우는 국민장으로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례를 거론할 만큼 사례들이 축적돼 있지 않았다. 그때까지 거행된 국장은 1979년 박정희 장례식 하나밖에 없었다.
또 선례를 거론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성문 규정이 없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불문법인 선례나 관행을 참고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미 1967년부터 명확한 성문 규정이 있었다. 국장·국민장법은 1967년 1월 16일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현직은 물론 전직 대통령도 국장으로 할 수 있었다. 이 법 제3조는 아래와 같다. 아래 조문에서 '각호의 1'은 '제1호나 제2호 중 어느 하나'라는 의미다.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가 서거한 때에는 주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할 수 있다.
1. 대통령의 직에 있었던 자.
2.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자.
이 규정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도 국장으로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법률 규정이 있는데도, 이명박 정부의 행안부 장관이 '선례에 비춰볼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해야 한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의 경우에는, 결국 국장으로 거행됐다.
국민장은 그 명칭 때문에 사회장과 헷갈릴 수 있었다. 국장 아래에 국민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장은 국가가 주관하는 행사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얼핏 사회장과 헷갈릴 수도 있었다.
헌법상으로 보면 국민이 국가보다 높다. 국민은 국(國)의 주권자다. 국(國)은 국민의 소유물인 것이다. 따라서 개념상으로는 국민장이 국장보다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장이 국민장의 위에 있는 현실이 당연하게 인식돼 왔다. 헌법상의 국민 위상이 실제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국민장이 국장보다 낮게 인식된 데는 국장·국민장법 규정 외에 또 다른 사정도 작용했다. 김구와 이승만의 적대 관계가 어느 정도는 얽혀 있는 사안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의 국민장은 미군정인 1946년 7월 7일 거행된 삼의사(3의사) 국민장이다.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세 독립투사의 장례식이 최초의 국민장이 됐다. 일부 서적과 논문에는 1949년 김구 국민장이 최초의 국민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삼의사 국민장은 미군정청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의 발의로 거행된 거족적 장례식이다. 지금의 서울 효창공원에서 이 국민장이 거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