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성지구의 송악산, 천마산, 지네산에서 일제강점시기에 일제가 박은 쇠말뚝 6개가 발견됐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2011.11.11
연합뉴스
일본이 한국의 민족정기를 끊어놓고자 전국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놨다는 이야기가 있다. 김영삼 정부 때는 그런 쇠말뚝을 제거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동일한 일이 그 후에도 있었다. 일례로, 전남 해남군에서는 2012년 6월 옥매산 정상에서 특수 합금으로 된 철봉이 발견됐고, 그해 8월 15일 그 쇠말뚝을 뽑아내는 지역 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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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해남 옥매산서 일제 '쇠말뚝' 제거
이에 대해 서울대 교수를 지낸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비롯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정색을 하며 반기를 들고 있다. 일제 식민지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쇠말뚝에 대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 제2장에서 이영훈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전국의 요처에 박힌 쇠말뚝을 뽑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은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실은 인근 마을이 또는 군부대가 무슨 필요에 의해서 박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몇 사람의 풍수가가 지어낸 그 같은 주장에 따라 어처구니없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쇠말뚝은 인근 마을이나 군부대가 박아 놓은 것이며, 일제가 박아놨다는 것은 풍수가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게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다. 이 말을 하면서 그가 추천한 글이 있다. "이 책에 실린 김용삼의 쇠말뚝 소동에 관한 글에서 그 좋은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추천한다.
이영훈 교수가 추천한 글은 <반일 종족주의> 제14장 '쇠말뚝 신화의 진실' 편이다. 김용삼 전 <조선일보> 및 <월간 조선> 기자가 쓴 소논문이다.
김용삼 전 기자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기획실장, 경기도 대변인 등을 지낸 뒤 지금은 이승만 학당(대표 이영훈) 교사로 활동 중이다. 2013년과 2015년에는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시장경제대상을 받기도 했다. 경기도 대변인 경력은 김문수 지사 때의 일이다.
김용삼 "일제 쇠말뚝은 모두 거짓말"
김용삼 기자가 담당한 <반일 종족주의> 제14장에는 "일제가 조선 땅에서 인물이 나는 것을 막으려고 전국 명산에 일부러 쇠말뚝을 박아 풍수 침략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라는 첫 문장에 뒤이어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온다. 아래의 '이런 말'은 첫 문장을 가리킨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이런 말이 전설처럼 돌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1958년 생으로 올해 61세인 김용삼 기자는 37세 때인 1995년경부터 쇠말뚝 취재를 벌였다. 그 당시를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일제가 박았다는 쇠말뚝이 모두 가짜라는 사실은 제가 <월간조선> 1995년 10월호에 썼던 '대한민국의 국교는 풍수도참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이 기사가 보도된 후 독립기념관이 전시하던 쇠말뚝을 치웠는데, 이 내용을 구로다 야스히로 기자가 취재해 <산케이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온 '구로다 야스히로'는 지난 7월 5일 아침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이 박정희 정권에게 제공한 경제협력자금 3억 달러 덕분에 한국이 지금처럼 잘살게 됐다'고 주장한 구로다 가쓰히로와 동일인이다. 일제가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라는 김용삼 기자의 글을 토대로 일본 우익 기자가 자국에 기사를 발송했던 것이다.
김용삼 기자가 그렇게 확신 있게 말하는 것은 몇몇 증언과 진술이 있기 때문이다. 쇠말뚝 3개가 발견된 충북 단양군 영춘면을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 영춘면장이자 현지 주민인 우계홍 씨는 저에게 '그것은 일제가 박은 게 아니라 해방 후에 주민들이 북벽 아래에 뱃줄을 묶기 위해 박아놓은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위와 같이 일부 쇠말뚝이 아예 일본과 무관하다는 점을 보여준 뒤, 김용삼 기자는 쇠말뚝 제거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진술도 소개한다. 일제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쇠말뚝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다.
"쇠말뚝 제거 전문가로 알려진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의 구윤서 회장이나 서길수 교수도 전국에서 발견된 쇠말뚝이 일제의 풍수침략용 쇠말뚝이라는 (점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일부 쇠말뚝은 아예 일본과 무관하며, 나머지 쇠말뚝은 일제의 풍수 침략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 뒤 김용삼 기자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을 취재한 결과를 소개한다. 그 나머지 쇠말뚝이 얼마나 허술한 과정을 통해 일제의 풍수 침략용으로 알려졌는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 취재 결과가 <반일 종족주의> 제14장의 소제목 중 하나인 '주민 다수결에 의해 일제가 박은 쇠말뚝으로 결정' 밑에 나온다.
"제가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해보니, 제거된 쇠말뚝은 길이가 볼펜보다 조금 큰 정도였습니다. 명당의 혈을 자르기 위해 박았다고 보기에는 크기가 너무 작았던 것이죠. 제보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박았다는 설과, 일제가 한일합방 후 박았다는 설 등 두 가지가 있었는데, 일제가 박았다는 설이 더 많아 제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민들의 다수결에 의해 '일제가 박은 쇠말뚝'으로 결정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