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이 전국연합학력평가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시험은 대입 수능을 한달여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러지는 학력평가다.
연합뉴스
채 일주일도 안 돼 2학년의 또 한 아이가 학교를 그만뒀다. 자퇴 이유는 똑같다. 서둘러 검정고시를 치른 뒤 경기도 기숙학원에 들어가 수능에 '올인'하겠다는 것이다. 듣자니까, 입학한 지 1년도 안된 1학년에도 자퇴 대기 중인 아이들이 몇 있다고 하는데, 학교를 들락거리는 학부모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난 것 같긴 하다.
얼마 전 넌지시 정시 확대 방침을 밝힌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 뒤 도드라지게 나타난 변화다. 학부모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사들 중에도 '조국 사태' 이후 대학입시 공정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정시 확대는 불가피해졌다고 체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상 학교생활기록부종합전형(학종)의 수명은 이미 다했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수능 점수를 올리려면, 거칠게 말해서, 족집게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학교가 대학입시에 특화된 학원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자퇴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또래 친구들과의 즐거운 학교생활과 학창시절의 추억은, 단언컨대, 대학입시의 '적'이다.
섣부르긴 하지만, 올 들어 이미 학교를 떠났거나 자퇴를 심각하게 고민 중인 아이들은 하나같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잣집 자녀들이라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에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기숙학원비를 댈 수 있는 집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퇴 후 검정고시, 그리고 기숙학원 입사는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그들의 보편적인 루트다.
교사 입장에선 학교를 떠나려는 아이들을 설득할 방법이 마땅찮다. 지금껏 대학입시를 위해 살아왔다고 선선히 말하는 그들 앞에서 학창시절의 추억과 공동체 생활의 중요성 운운하는 건 그저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몇몇 아이들은 학교교육과정 대부분을 대학입시에 맞춰놓고선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수능 '가성비'가 높다는 학부모, 자퇴 부러워 하는 아이
설상가상, 학부모들은 자녀의 자퇴를 만류하는 교사 앞에서 애써 자신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며 무질러버리기 일쑤다. 특히 젊은 교사라면, 나이 지긋한 학부모들 앞에서 철저히 '을'의 위치가 된다. 더욱이 서울의 명문대 출신 학부모라면, 지방대 나와 임용된 풋내기 젊은 교사가 성에 찰 리 없다.
학부모들은 이구동성 자녀의 선택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담임교사 앞에서 자퇴원서에 보란 듯이 서명하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이렇게 덧붙인다. 아이가 지금껏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며,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는 건 부모의 당연한 도리이며 최선의 투자라고 으스댄다.
이쯤 되면 자퇴가 아이의 선택인지, 부모의 선택인지 헷갈린다. 대개 그들은 학부모 서비스로 자녀의 내신 등급을 담임교사 못지않게 관리하며, 이웃 학교의 그것과 대조해보는 등 나름의 정보력을 갖추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은 고액을 들여 입시 컨설턴트를 찾아가 상담을 의뢰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학종에 견줘 수능의 '가성비'가 훨씬 높다고 말한다. 학종 역시 사교육의 도움을 받으면 유리한 게 사실이지만, 수능에 비할 바는 못 된다는 거다. 내신 성적을 비롯해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의 수많은 항목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학종보다 기출문제 유형 분석과 반복 연습만 필요한 수능이 대비하기가 부모로서도 훨씬 용이하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고액을 들여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학종은 어떻든 교사에게 열쇠가 쥐어져 있어 학부모의 '직접적 통제'가 쉽지 않다. 생기부는 담임교사와 교과교사 외에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교육에 투자한 만큼 비례해서 성적이 나오는 수능에 비해, 부유층에서 학종을 꺼리는 대표적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조국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지만, 그동안 부유층이 입학사정관제도라는 달라진 입시 전형을 통해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려다 보니 온갖 편법이 동원된 것이다. 과거처럼 수능이었다면, 점수 따위야 얼마든지 '돈으로 구워삶을' 수 있었다. 최상위권 아이들이 방학을 이용해 서울에 올라가 한 달을 살며 족집게 학원 수강을 했던 이유다.
사회적 약자 등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해 도입한 학종이 취지가 무색하게 변질된 건 맞다. 명문대 진학 실적에 목매단 학교마다 최상위권 아이들을 비교과 영역에서도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온 탓이다. 특목고와 자사고, 강남 일반고가 싹쓸이하다시피 한 서울대에 지방 일반고 1등 아이들도 갈 수 있게 된 건 그나마 학종 덕분이다.
하지만, 수능은 애초 소수자를 배려할 수 없는 입시 전형이다. 어쩌다 시골 출신 한 아이가 수능 만점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희귀한 경우인데, 사람들은 마치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처럼 여긴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학교수업에 충실하면' 명문대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순진하고 어리석다.
수능과는 달리 학종은 아이들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비유컨대, 100미터 달리기에서 다리가 불편한 아이도, 심장이 약한 아이도, 건강한 아이와 같은 출발선에서 뛰라는 게 수능이다. 학종 역시 약자들을 앞세우기는커녕 지방의 건강한 아이 몇몇을 경주에 참가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경쟁이라면 어차피 승자는 '강자'일 수밖에 없다.
교사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