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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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이후 동독체제의 개편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서독체제를 동독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추진된 체제 개편을 지원하기 위해 서독 출신 인력이 대거 동독 지역에 투입되었다. 대표적으로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초반, 행정 분야의 개편을 위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서독 인력 1만 5000여 명이 동독 지역에 파견되었다. 또한 1만여 명은 구동독의 지방자치단체에, 1500여 명은 주단위의 기관에 파견되었다. 반대로 8000여 명의 동독 인력이 서독지역에서 근무하였다.
대체로 현직 공무원이나 공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은퇴자 등을 중심으로 동독지역 근무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인력이 파견되었다. 파견 인력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한 것은 물론이다. 이를 통해 유능한 인력이 구동독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게 유도하였다. 이처럼 중앙 뿐 아니라 지방 차원의 체제 개편을 위한 인력 파견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구동독의 행정 체계 재편이 추진되었다.
유사한 방식으로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의 주요 체제 개편을 위해 서독 인력이 광범위하게 동독지역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정보 제공, 자문과 같은, 체제 개편과정에서 동독 인력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동독 각 분야의 개편이 빠르게 이뤄졌고, 1990년대 초·중반, 각 분야의 체제개편이 완수되었다.
개혁의 주체, 개혁의 대상?
동독 체제 개편 과정에서 서독 출신 인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기간에 급격히 이식된 체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체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력의 도움이 절실했고, 서독 출신 인력들이 그러한 역할을 한 것이다. 서독 측 파견 인력은 통일 초기, 열악한 여건에서도 새로운 체제로의 개편을 지원하기 위해 동독 지역 근무를 자원했다. 이를 통해 동서독의 상이한 체제가 단기간에 통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체제 통합이 진행되고 동서독 주민의 접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일부 서독 출신 인력이 보인 점령군과 같은 태도에 동독 주민들은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동독 주민이 보기에 서독 측 인력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한참 전에 은퇴하였거나 서독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해당 분야의 실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수하고 유능한 인력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서독에서 자리가 없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동독으로 온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일부 서독 인력이 동서독의 관계를 일순간에 교사-학생의 관계로 만들었고, 동독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는 듯이 동독 주민을 부족한 인간으로 취급하였다. 동독을 망한 체제와 동일시하며 "당신들은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독 인력 앞에서 동독 주민은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입장으로 전락하였다. 마치 패배자인 것처럼.
배제된 동독의 엘리트
동독 주민이 패배자 감정을 느끼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체제 개편 과정에서 서독 출신 인력이 동독 각 분야의 주요한 지위를 대거 차지한 반면, 동독 인력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에 있다. 서독 출신 인력이 각 분야의 개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중으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분야별로 상이한데, 경제 분야에서는 서독 출신이 주요 위치를 거의 대부분 차지하였다. 통일 후 동독 기업, 산업이 대부분 파산절차를 거친 후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서독 출신 인력이 대거 기용된 까닭이다. 서독에서 주요 직위는 대체로 해당 분야의 오랜 경험을 가진 인사가 기용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제, 금융 분야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독 출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반면, 연방의회를 비롯한 정치 분야에서는 동독 출신이 높은 비율로 포진하면서 동독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동독 출신 인사가 연방의회의 주요 상위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낮았지만, 적어도 엘리트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서 동독 출신의 비중은 높았다. 그러나 중앙 행정부, 학계 등은 동독 출신 인력이 저조한 비율로 포진하였다.
전체적으로 통일 초반, 정치 분야(32%)를 제외한 전체 독일의 주요 분야에서 동독 측 인력이 포진하고 있는 비율은 12% 정도로 나타나, 전체 인구에서 동독 주민이 차지하는 비율(2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독주민들은 '승자'인 양 행동하는 서독에 대해 '패자'와 같은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