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해례본. 훈민정음이 반포되던 해(1446년) 발행된 목판본으로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정근
약간 긴 길을 돌아서 온 것은 '한글'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기 위해서다.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은 대륙민족이나 왜족에 동화되고 말았을지 모른다. 만족ㆍ여진ㆍ말갈 그리고 일본에 합병된 류우쿠우(琉球) 족처럼 말이다.
한글은 지난 700년간 한민족의 정체성이고 분단 70년이 되는 지금 남북 겨레의 공통점이다. 남북 8천만 겨레와 해외 교포ㆍ교민 800만의 원형질이다. 이 원형질은 한국어(조선어)를 통해 공유된다. 세계 200여 국가 중에서 우리가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한 언어는 한국어 뿐이다.
세종이 1443년 12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고 많은 책을 훈민정음으로 펴냈다. 특히 의서ㆍ농서 등 백성들이 실생활에 필요한 책과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한 교훈서 등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 백성ㆍ국민을 위하고자 하는 정책에는 기득권 세력의 거센 도전이 따른다. 세종 당시 최만리 등 조정의 중신들과 각지의 유생들이 드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사대의 예에 어긋나며, 중국과 다른 문자를 쓰는 나라는 오랑캐들뿐"이라고 반대가 극심했다.
군왕이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하였지만 지배층에서는 19세기까지 언문(諺文)이라 비하하고, 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글로 치부되었다. 말(언어)은 한국어로 하면서 글(씨)은 한문으로 쓰는 실정이었다. 양반 지배층은 여전히 한문(한자)을 자신들의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글이 백성들과 공유되는 것을 저지하였다.
한글의 수난사는 책으로 써도 여러 권이 될 정도로 극심하였다. 연산군 때에는 '언문'의 사용과 학습을 금지하고 언문 서적을 불태웠다. 일제강점기에는 아예 한글을 멸살시키고자 온갖 책동을 일삼았다. 미군정은 초기에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케 하려 들었다.
지금은 다른 형태로 한글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고 대학 졸업 때까지, 회사 취직용으로 영어에 매달리는 세태가 되었다. 힘이 센 자들은 미국 등 영어권 나라에 가서 출산하기도 한다.(여기에는 병역 기피의 목적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