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근. 방문한 사람들을 더 잘 대접하지 못한다며 미안해 하고 있다.
한톨
"아, 왔습니까. 누워서 인사해 미안합니다."
일어나지도 못하는 남편 김용담이 누운 채로 인사했다. 아내 김인근은 옆에 서서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우리 때문에 또 이렇게 오셔서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지.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앉으세요. 뭐 시원한 거라도 마셔야죠. 커피 드릴까?"
80대 노인은 귀한 손님이라며 가만있질 못한다. 그러자 강광보는 그녀 손을 잡고 자리에 앉힌다.
"가만 계십서. 마실 것 안 내와도 되니. 금방 나갈 건데 뭘 내온다고 합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형님은 이제 아예 누워 버리셨네."
"나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몸이 이래서 같이 가지 못해 미안합니다. 날도 더운데 조심해서 잘 다녀들 와요."
뇌경색으로 누워있는 남편을 두고 나오는 아내 김인근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강광보, 김평강과 함께 가는 그곳도 마음 편할 리 없는 곳이었다. 지금은 청소년문화의집이라고 되어 있는 이곳. 이곳이 바로 화북 학살의 시작점이었다.
"여기가 예전에 화북국민학교가 있던 자리예요. 49년 1월에 군인들이 빨갱이 잡는다며 마을 사람들 전부 여기로 모이게 했던 곳입니다. 어머니와 언니, 만삭이었던 새언니와 조카 둘 이렇게 우리 집 사람들이 끌려왔죠. 4학년 교실에 갇혀 있는데 먼저 끌려갔던 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거예요. 아버지 하고 가서 보니 한 쪽 눈알이 툭 빠져 있고, 숨을 쉴 때마다 입과 코에서 피가 푸걱푸걱 하고 나오는 거예요."
세상이 좋아져서 이런 말을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그 전에는 4.3 이야기만 꺼내도 잡혀갈까 두려워하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여기서 일렬로 사람들을 세워놓고 총으로 죽이다가 중지시키더니 남자, 여자 분리해서는 차에 태우더라고요. 나랑 언니랑 어머니, 만삭의 새언니가 같은 트럭에 탔는데 아무래도 죽으러 가는 것만 같아서 트럭에서 몰래 뛰어내렸어요. 처음에는 실패해서 다시 잡혀 왔는데 두 번째는 성공했어요. 군인 한 명이 도망가는 나를 잡지 않고 살려주었는데 그 군인 지금도 고마워요. 바위 뒤에 몰래 숨어서 마을 입구 저 외소낭(소나무)으로 트럭 돌아가는 걸 보고만 있었죠."
그 길로 그녀는 집으로 도망갔다. 공포와 서러움에 울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어머니가 돌아왔다.
김인근을 살린 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