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상추를 수확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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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실내 텃밭에 대한 내용을 꼼꼼히 메모했고, 메모한 대로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곳에 가서 재료 일체를 샀다. 생각보다 재료비가 꽤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 분리수거하는 날이어서 다른 집에서 내놓은 스티로폼 박스까지 가져와서 밑에 구멍을 뚫고 흙을 채웠다. 모종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심고 흙을 다독여 자리를 잡게 했다.
물조리개로 물까지 듬뿍 주니 텃밭의 만족감이 따로 없었다. 마음은 이미 풍성하게 자란 상추가 곁을 내주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키우는 보람과 싱싱한 상추를 맛보게 될 환상에 취했고, 수확의 기대에 부풀어 들어간 돈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심고 나서 하루에도 수십 번 그것들을 살폈다. 처음 며칠은 모종을 가져온 상태에서 이파리에 조금 더 생기가 있어진 것 같은 느낌 정도였다. 일주일쯤 지나니 상추 잎이 조금 단단해진 것 같았고 이파리가 하나 둘 더 생겨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한 주먹 꽉 차게 쥐어지는 커다란 포기는 아주 먼 얘기였지만.
그 상추의 '결말'
마음과는 달리 두 주가 지나도 상추의 크기에는 변화가 없었다. 크기는커녕 오히려 힘이 빠진 듯 시들해 보이기도 했다. 물을 더 열심히 주었고 이리저리 살폈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그쯤에서 들었던 것 같다. 포기를 들어내고 다시 심을 수도 없었고 그냥 둘 수도 없었다. 비실비실 그대로인 상추를 볼 때마다 남편은 한 마디씩 툭 던졌다.
"언제 먹을 수 있어? 그러게, 그냥 사 먹자니까."
장난 반 웃음 반인 그 말에 같이 웃을 수 없었다. 나의 베란다 텃밭은 한 달을 겨우 버티고 끝이 났다. 잘 키우기 위해 수없이 살폈고, 가족 모두에게 엄마가 키운 싱싱한 상추라고 소개하며 밥상에 올리는 것을 상상했지만, 주인을 잘못 만난 상추는 딱 한 번 우리에게 어린잎을 내어주고는 모두 시들시들 옆으로 쓰러졌다.
식물을 키우는 데 관한 한 나는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집에 온 화분은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 버려졌다. 상추라도 다를 리가 없다는 경고를 모종을 살 때부터 들었지만,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잘할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한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요거트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나 역시 따뜻한 물만 부으면 요거트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홈쇼핑을 통해 구입했고 여러 번 만들어 먹기도 했다. 사 먹는 요거트에 비해 만들어 먹을 때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도, 경제적으로도 득이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용기 가격만큼이나 만들어 먹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때는 집에서 만드는 치즈가 유행하기도 했다. 여기에도 기꺼이 동참했다. 베로 만든 보자기를 크기별로 시장에서 사 왔고, 레몬즙 짜는 기구와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쓸 수 있도록 레몬도 냉장고에 넉넉하게 채워 두곤 했다. 수제 치즈로 만든 샐러드 식단은 처음 만들었을 때 딱 한 번뿐이었다. 양껏 산 레몬이 냉장고에 남겨졌다가 쓸모를 잃고 버려진 것 같고. 치즈 만들어 먹는 것은 요거트보다 더 빨리 끝났다.
요거트를 만들던 용기는 현재는 파를 썰어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치즈는 만드는 것을 그만둔 지 2년도 더 넘은 것 같다. 이후 한 번도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보자기는 삼계탕에 넣는 찹쌀 담는 보자기로 용도 변경되었고, 레몬즙을 짜는 기구는 어디 숨어 있는지 찾을 수도 없다.
연이은 실패에도 봄이면 뭔가 심고 싶다. 하지만, 상추 이후로 얘기도 꺼내지 못한다. 남편은 뭐든 전문가가 만든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농사의 전문가가 만든 상추를 필요에 따라 적당히 사서 먹으면 된다고 강조한다. 요거트도 치즈도 많이 연구한 사람들이 만든 것을 먹으면 된다며 그게 오히려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대부분 동의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걱정이 올라온다. 마이너스의 손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면 내 밭에서 채소를 키워 먹는 꿈은 영영 포기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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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의 손이 베란다에 상추 키우다 내린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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