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아이들과 함께 본 꽃눈입니다.
진혜련
예전에는 봄에 싹이 돋아나는 것을 봐도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순간이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다.
딱딱하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새순과 꽃눈을 틔우는 것이 마치 지난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그것을 이겨내고 새롭게 도약하는 순간인 것만 같다. 보고 있으면 나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얻게 된다.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순간은 이런 순간이 아닐까. 나는 아이들과 이 순간을 함께 바라보고 싶었다.
천천히 걷고, 그러다 만난 순간들
우리는 그저 천천히 숲길을 걸었다. 그리고 '시작의 순간'들을 함께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여전히 겨울나무인 것 같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벚나무, 생강나무, 매화나무, 진달래 등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분주히 봄을 알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숲의 곳곳에서 봄의 순간을 찾아내며 세상의 보물을 발견한 듯 기뻐하고 감탄했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여기도 싹이 났어요!"
"여기로 와 보세요. 분홍색이 조금 보여요. 진달래꽃이 피어나려고 해요!"
교실에서 다소 경직되어 보였던 아이들은 숲에 오자 생기가 넘쳤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싱글싱글한 눈과 가볍고 높은 톤의 목소리만으로도 아이들이 지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서슴없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님, 이렇게 애들이랑 다 같이 산에 온 거 처음이에요. 너무 좋아요."
"제가 꽃봉오리 살짝 만져봤는데 촉촉해요."
"마스크 썼는데 꼭 안 쓴 기분이에요."
나 또한 아이들에게 이런 말들이 불쑥 나왔다.
"얘들아, 이것 봐봐. 어쩜 이렇게 예쁠까. 꼭 너희 같아."
"우리 일주일에 한 번씩 숲에서 수업할까?"
우리는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걸어 내려왔다. 아이들과 마음의 거리가 한껏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까보다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숲속 공기를 한 번 더 크게 들이마셨다.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면 자연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베푼 아름다움의 대가로 너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라.'
숲에서 싹이 움트는 순간을 보고 온 아이들과 나는 무언가를 만들 것이다. 숲이 베푼 아름다움을 봤으니 우리는 삶에서 아름다움을 만들 것이다. 우리의 3월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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