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 장애인 집단학대가 발생한 라파엘의집 면담 및 방문조사 당시 시설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항의하는 모습.
정민구
'손 든 사람만 탈시설', 얼마 전 여주 라파엘의집 인권침해 사건 관련 서울시 면담에서 탈시설지원팀장이 했던 말이다. 그는 욕구 조사를 통해 탈시설을 희망하는 사람에게만 자립을 지원할 수 있으며 '무응답층은 시설 잔류 계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합리적 생각 같지만, 이는 시설과 이용인의 특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굉장히 공무원스러운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간 시설에서 생활하며 간혹 직원이 이름 불러주는 게 전부인 삶, 일과가 이 벽 보다 질리면 저 벽 보는 삶을 살아가는 시설 이용인은 어쩔 수 없이 병에 걸린다. 우리는 그것을 '시설병' 또는 '시설증후군'이라 부른다.
삼시 세 끼 주어진 밥만 먹으며, 제한된 공간에서 외출도 제한당하는 삶을 살다 보면 삶에 대한 욕구와 희망이 잘려나간 채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욕구는 경험에 기반한다.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상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어느 날 문득 낯선 조사원이 찾아와 '탈시설 하고 싶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한편 그의 논리대로라면, 의사 표현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평생 시설에 살아야만 한다.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 탈시설을 의사 표현에만 기반한다면, 의사 표현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탈시설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시설에 들어갈 때는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묻더니, 나올 때엔 반드시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건 무슨 억지 논리인가. 비장애인의 자립 생활이 자연스러운 일이듯, 장애인의 탈시설 역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주 라파엘의 집 인권침해 사건... 사람을 벽에 결박했다
얼마 전 여주에 있는 시각·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라파엘의 집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직원 18명이 8명의 이용인을 대상으로 집단적 학대를 가했다. 내용은 이렇다(관련 기사 :
"LH 투기의혹에 특수본 만든 경찰... 라파엘의 집은?").
▲ 짐볼을 발로 차 이용인의 몸에 25차례 연속해서 가격
▲ 임의로 제작한 나무 기립기를 이용해 이용인 결박
▲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
이 사건이 더 충격적인 이유는 이 사건이 지난해 초 코로나가 한창일 당시, 코호트 격리조치 돼 외부로부터의 출입이 철저히 제한된 시점에서 발생했던 학대라는 데 있다. 시설 내에서 잔혹한 학대가 발생했지만, 코로나 격리조치로 인해 밖으로 탈출할 수도 없는 상황. 이렇게 쓰니 마치 한편의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런 끔찍한 학대 사건이 발생했지만,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담당 지자체에서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관할 구청인 강남구청에서 라파엘의 집에 내린 행정처분은 '개선명령'이 고작이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무엇을 개선할 수 있을까.
장애인거주시설의 행정처분은 보통 장애인복지법 제62조(시설의 개선, 사업의 정지 폐쇄 등)와 사회복지사업법 제40조에 따라 이뤄진다. 두 법 모두 장애인복지(거주)시설이 일정 수준의 환경·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장애인복지실시기관(광역지자체)이 '시설의 개선, 사업의 정지, 시설의 장의 교체를 명하거나 해당 시설의 폐쇄를 명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광역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행정처분의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사건이 진행될 경우 피해자 8명 중 의사 표현한 일부만이 탈시설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 대다수 인원은 현행을 유지하게 된다. 그들은 다른 시설로 전원(이동) 조치되거나, 혹은 규모만 축소된 채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그 시설에서 그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장애인은 꼭 시설에 살아야 한다? 편견입니다
거주 시설로 대표되는 장애인 복지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실제로 미국 등 해외는 '탈시설' 뒤 커뮤니티 공동 돌봄으로 전환 추세). 장애인들이 시설에 가지 않고도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원체계를 온전히 만들어야 한다. 더는 복지가 시혜와 동정의 관점이 아닌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사회를 만들고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80일 넘게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여 라파엘의 집과 같은 학대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코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