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전경
Pixabay
어떤 한 사람이 보유한 권력의 크기를 알려면, 먼저 그가 근무하고 있는 집무 공간의 크기를 보면 된다. 그가 차지하는 집무 공간의 크기는, 곧 그가 보유하는 권력의 크기를 반영하는 탓이다.
국회 수석 전문위원의 집무실은 왜 그렇게 넓을까
현재 국회 수석전문위원의 사무실은 상당히 넓고 크다. 국회 상임위원회 상임위원장 집무 공간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크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작은 규모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수석 전문위원의 넓은 그 집무 공간은, 그가 보유한 '힘'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상임위원장 집무실은 바로 옆에 상임위 소속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원'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공무원들의 '관리'를 받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반면 수석 전문위원 집무실은 직원 외엔 아무도 없다.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국회 전문위원은 특히 행정부에 대해 '갑 중의 갑'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본다.
즉, 행정부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검토보고 권한'을 가진 전문위원들에게 각종 법안과 정책, 예산과 국정감사 등을 보고하러 쫓아다녀야 하고,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검토보고서에서 좋지 않게 반영되기 때문에 이들에게 전전긍긍해야만 한다. 상임위에 전문위원이 새로 임명되면 소관 부처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줄을 서서 '업무보고'를 한다.
지난 해에는 국회의 한 수석전문위원을 위해 인천국제공항공사, 코레일, 한국도로공사 등 피감기관의 간부들 20여 명이 국회 앞 중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등 이른바 '환송식'을 갖고 황금열쇠를 증정하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또 국회의 한 전문위원이 자신의 직무가 "국회의원과 비슷한 영향력이 있다"며 해당 상임위 소속기관에 국회의원급의 식사와 골프 접대를 요구했다는 논란이 보도된 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몇 년 전에는 국회 수석전문위원이 상임위 소속기관에 압력을 행사해 알선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수석전문위원은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의 그림 수십 점을 시가보다 고가로 상임위 소속기관 등에 판매하기도 했다.
세계의 모든 의회 '정책전문위원'은 정당 소속이다
일반인들은 '국회 전문위원'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각계의 '전문가'들이 임명되어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 모두 국회에서 순환 근무하고 있는 국회 공무원들이다. '전문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이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검토보고'라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국회 공무원이다.
세계에 대한민국처럼 국회 공무원이 전문위원이 되어 힘을 발휘하는 이런 상임위원회와 국회는 내가 알기론 없다. 미국 의회의 위원회에 근무하는 전문가 스태프(Staff) 조직은 모두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독일 의회에서 이들 정책 '전문위원'은 독일 사회의 각계 전문가 출신으로서 자부심이 높은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또한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부정된 국회 상임위의 '전문위원 선출권'
본래 한국 국회에서도 이들 상임위 '전문위원'은 상임위에서 의원들이 선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상임위의 이 '선출' 권한은 부정되었고, 이후 공무원들이 국회 '전문위원'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유신 정권에 의해 국회의 근본 시스템이 결정적으로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날 국회가 국민들의 극심한 불신을 받는 요인은 수없이 많다. 어떤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핵심 원인을 규명해내야 한다. 필자는 유신정권이 왜곡시킨,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직무인 입법 활동을 형해화시키고 있는 현재의 전문위원 시스템을 본래대로 복원시킴으로써 세계 의회의 표준으로 복귀하는 것이 국회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확신한다.
이 핵심 문제를 해결해야만 비로소 엉킨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국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인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다른 문제를 건들게 되면, 뒤엉켜 있는 '국회 문제'의 실타래가 더욱 엉키게 될 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공유하기
'갑 중의 갑' 뒤틀린 국회전문위원 시스템, 복원해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