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없는 아이에게 국가와 사회는 어떤 존재인가?
픽사베이
'아동은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야 한다.'
아동 최우선의 이익을 명시한 1993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이하 헤이그협약) 제1의 원칙이다. 그러나 현행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이후 10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 이 원칙은 우리나라에서 망자의 비석에나 새겨진 비문이었다.
934명.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가 시설로 가야 했던 아이들이다. 같은 기간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이 모두 1242명이었다. 무려 75%의 아이들을 시설로 보내는 현실이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으로 공인된, 대한민국 아동복지의 민낯이다.
지난 10년 동안 낳은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어린 생명들이 속절없이 시설로 가는 상황을 만든 것은 입양법이었다. 통상 2년 주기의 순환근무로 인해 전문성이 없는 공적 책임자들은 이 아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은 고사하고 관행적인 일 처리로 일관하다 자리바꿈만 할 뿐이었다.
시설이 마냥 나쁜 곳이라는 말은 아니다. 시설은 시설대로 아동을 위한 쓸모가 분명 있지만, 국제사회가 염원하는 '아동 최우선의 이익'을 기준으로 하면 장기보호시설은 가장 최후의 수단이다. 북유럽을 포함한 아동복지 선진국은 우리나라 보육원과 같은 장기보호시설이 아예 없다. 그 자리를 위탁가정이 대신하고 있다. 이른바 탈시설이 아동 인권의 바람직한 정책으로 고착되어 있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있던 사실
보호아동에 대한 국제 공통의 해법이 담겨있는 헤이그협약의 근간인 보충성의 원칙을 지침서에는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아동이 원가정에서 양육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동을 학대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일반적으로 국내 입양 또는 기타 영구적인 가정 양육이 바람직하나, 적절한 국내 입양가정이나 양육자가 부재하고, 해외에 영구 배치할 수 있는 적합한 가정이 존재할 경우 아동을 시설에서 대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영구 보호의 옵션으로서의 시설보호는 일부 특수 상황에서는 적합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아동을 위한 최선의 이익이라고 보지 않는다.
- 1993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이행과 운영_모범적 이행을 위한 지침 중 일부
헤이그협약에서 말하는 보충성의 원칙은 보호아동이 발생할 경우, 원가정 → 국내입양가정 → 국제입양가정 → 시설 순으로의 보호조치 경로가 아동 최우선의 이익임을 못 박은 것이다.
국내 시설보호가 아닌 해외입양이 우선 되어야 할 정도로 문명국가의 기본 이념은 '영구한 가정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 게다가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다. 보호아동 최우선의 이익 중 가장 최상인 원가정 보호에도 사실은 조건이 있다. 헤이그협약 서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동의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해 가정환경이 행복하고 애정이 있으며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야 함을 인정한다.
낳은 가정에서 아이가 자라야 함은 보편적 상식이나 그렇다고 모든 가정이 '행복하고 애정이 있으며 이해하는 분위기' 일리는 없다. 낳은 부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아동을 원가정 우선 원칙 만을 내세우며 다시 낳은 부모에게 강제적으로 안기기 전에 '행복하고 애정이 있으며 이해하는 분위기' 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우리 사회 보호아동에 대해 심층 취재한 <그렇게 가족이 된다>를 출간한 정은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정부는 무조건적인 원가정 보전 원칙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1996년에 새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위기 아동이 발생하면 '동시사례계획'을 세워 원가정 회복과 입양 가능성을 동시에 타진하도록 한 것입니다. 아동이 장기간 위탁가정이나 시설을 전전하는 오랜 폐단을 겪은 희생을 치르고서야 마련된 대책입니다. 우리도 미국의 전철을 밟아왔습니다."
불과 12%만 가정에서 새로운 삶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