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기 위해 출동하는 친일경찰1949.6.6 아침 윤기병 중부경찰서장이 지휘하며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특위 위원을 무차별 폭행하며 연행해 감.
추준우
반민특위는 6월 3일 시위자들이 특위본부를 습격한다는 정보를 듣고 경찰에 경비를 의뢰했지만 경찰은 이를 외면하였다. 경찰의 방치 속에서 동원된 시위대는 특위본부를 포위하고 사무실까지 습격할 기세를 보였다. 특위소속 특경대들이 공포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그제서야 경찰이 나타났다.
특위의 특경대는 친일경찰 출신인 시경 사찰과장 최운하가 6·3반민특위활동 저지 시위의 주동자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한 데 이어 선동자 20여 명을 연행하였다.
최운하가 구속되자 각 경찰서의 사찰경찰 150여 명이 집단 사표를 내는 소동을 벌였다.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반민특위가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사찰경찰의 집단사퇴가 이루어진 것이다. 특위활동을 제약시키고 이에 대항하려는 친일경찰의 조직적인 책략이었다.
서울시경 산하 전사법경찰이 반민특위 특경대해산 등을 요구하며 집단사직서를 내놓고 있을 때인 6월 5일, 중부서장 윤기병, 종로서장 윤명운, 치안국 보안과장 이계무 등은 "실력으로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음모를 꾸몄다.
이들은 시경국장 김태선에게 자신들의 음모를 전하고 내무차관 장경근의 지지를 얻어냈다. 장경근은 "앞으로 발생할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터니 특경대를 무장해제시켜라, 웃어른께서도 말씀이 계셨다"라고 이승만의 사전양해가 있었음을 암시하였다.
6월 6일 심야에 내무차관 장경근의 지지와 '웃어른'의 양해를 받은 이들은 반민특위 습격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짰다. 행동책임자는 반민특위의 관할서장인 중부서장 윤기병이 맡기로 하였다. 윤기병은 새벽 일찍 중부경찰서 뒷마당에 전서원을 비상소집하여 차출한 서원 40명을 2대의 드리쿼터에 태워 중구 남대문로의 특위본부로 출동시켰다.
윤기병이 직접 지휘한 습격대는 특위본부 뒷골목(현 한전빌딩)에 도착하여 20명은 주변경계에, 나머지 반은 정문과 비상구, 각층 사무실에 배치되었다. 윤기병은 장탄한 권총을 꺼내들고 출근하는 특위직원들을 모조리 붙잡아 드리쿼터에 싣도록 명령하였다.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한 배경은, 이승만이 직접 김상덕위원장이 거처하는 특위관사를 두 차례나 찾아와 악질 친일경찰 출신인 노덕술 등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듣지 않자 공권력을 동원하기에 이른 것이다.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사건은 국회로 비화되어 이날 오후 열린 제13차 본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신익희는 국회내무치안위원장 라용균 의원을 경무대(현 청와대)로 보내 이승만을 만나 사실을 청취케 하였다. 라용균은 "특경대 무장해제는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친히 명령한 것"이라는 이승만의 전언을 공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