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대학 직원 봉급표한국전쟁 때 미군이 노획한 김일성대학 서류다. 1947년 3월 26일 작성한 문서다. 당시 김일성대학 총장은 김두봉, 부총장은 박일, 교육국장은 한설야였다. 도서관장(2,500원)과 부관장(1,800원)의 직급과 급여가 눈에 띈다.
NARA 국립중앙도서관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은 1948년 9만 8천여 권, 1950년에는 13만 5천여 권을 확보해 장서를 크게 늘렸다. 대학 본관 지하층에 있던 도서관은 600만 원의 공사비를 확보해, 1950년 3월부터 건물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도서관 건물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층 규모 콘크리트 건물로 계획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일성종합대학은 도서관 공사를 중단하고, 10만여 권에 달하는 도서관 장서를 평양시 북동쪽에 있는 강동군 원탄면 원흥리로 옮겼다. 전쟁이 끝나자 김일성종합대학은 도서관 공사를 재개해서, 1954년 9월 도서관 건물을 준공했다.
1956년 9월 시점에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은 29만 권의 장서를 갖췄다. 비슷한 시기인 1957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장서는 59만 481권이었다. 이중 상당수는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시절 장서였다.
1948년 시점에 서울대 중앙도서관 장서는, 규장각 귀중본과 고서를 제외하고 45만 8천378권이었다. 서울대 도서관이 1948년부터 1957년까지 장서를 13만 권 정도 늘릴 때, 김일성종합대학은 장서를 29만 권 늘렸다. 이 시기만 비교하면,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이 서울대보다 장서량을 2배 이상 늘렸음을 알 수 있다.
앞서 한국전쟁 중인 1952년 북한이 최고의 두뇌를 모아 '과학원'을 설립하고, 김수경이 연구실장으로 일했음을 언급한 바 있다. 1952년 12월 1일 모란봉 지하극장에서 출범한 북한의 '과학원'은, 소련 과학원(The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을 모델로 설립했다.
북한은 과학원에도 부속도서관을 설치했다. 학술 연구를 위한 과학 전문 도서관으로 출범한 과학원 도서관은, 짧은 기간에 장서량을 빠르게 늘렸다. 1953년 장서량이 1만 9천 권에 불과했던 과학원 도서관은, 1957년 25만 권이 넘는 장서를 확보했다. 4년 만에 장서량이 13배 이상 늘었다.
당시 과학원 도서관은 평양 국립중앙도서관(지금의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과 함께 '북한의 3대 도서관'으로 꼽힌 곳이다. 설립 초기에 '과학원 도서관'은 모란봉 중앙역사박물관 청사에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초대 도서관장이자 여러 언어에 뛰어난 김수경은, 과학원 도서관 장서와 자료 수집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랬다면 김수경은 훗날 그가 몸담은 중앙도서관을 포함해, 북한의 3대 도서관에 모두 관여한 셈이다.
북한의 국가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