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이어져 온 여성사랑 멤버들의 인연
여성사랑
- 공감대라고 하니까 여러분의 당시 고민들이 궁금해져요. 조금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당시의 고민, 여성으로서의 삶에서 어려웠던 부분들을 같이 나누어주실 수 있을까요?
향옥 : "애들 아빠가 많이 아팠어요. '이 사람이 없으면 내가 아이하고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언젠가 '이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으니까. 그러면 내가 '평생 벌어 먹고 살 일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했었죠. 그러면서 '애들 아빠가 돈을 벌 수 있을 때 공부를 해보자, 내가 공부를 해서 우리 식구를 먹여 살려야겠다' 생각해서 공부를 시작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예민해지고 힘들어지고 한계점에 온 적이 있었어요. '나는 너랑 도저히 못 산다', '애는 니가 키워라. 니 애니까' 한 적도 있었죠. 그러니까 남편이 애를 또 껴안았거든요. 애를 껴안으면 내가 못 나갈 줄 알았대요. 근데 애가 안 보였어요. 그리고 안 키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벌어 먹고 살아야 되는데 애를 데리고 가서 어떻게 해. 나는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여기서 안 살면 내가 어디 가서든 혼자 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짐 싸 갖고 나오기도 하고... 그렇게 한 1년 싸우고 나니까 이제 조금 나아지더라구요. 모든 걸 놓고 치열하게 싸웠더니."
성아 :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 한 번도 못 했어. 애들 때문에... 내가 무너지면 애들이 다 무너진다고 생각했지요. 그거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애들 고등학교 때 한 번 법원에 가서 이혼판결을 다 받았는데 아이가~ '제발~'하면서 울어가지고 신고를 못 했어요. 이제는 애들이 막상 다 크고 나니까 지금은 뭐 어떻게 하든 내가 애들을 키우면 되니까 괜찮지만... 그리고 이제 자활에 들어와서 경제적인 생활도 할 수 있고요.
내가 이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정말 같이 살다가 죽일까 봐, 그래서 이혼했는데... 아픈 상처이긴 해요, 아픈 상처이긴 한데 그래도 생각보다 편하고 좋아요. 같이 공부하면서, 이제는 상담활동가로 지내고 있고,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나도 도움을 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정임 : "13층 베란다에서 항상 이불을 털었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에 이렇게 이불처럼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13층에서요. '밑에 내려가면 시원해지겠구나.' 막 이런 유혹에 계속 시달렸거든요. 그래서 이불을 털 수가 없는 거예요.
또 아래층 위층 엄마들이랑 모임도 했는데 '언니 나 같으면 언니처럼 일 못할 것 같아. 언니처럼 애들 못 키울 것 같아. 우리 애 아빠 칼퇴근 해도 힘든데.'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되게 안쓰럽게 봤어요. 근데 자존심은 있어서, 굉장히 힘을 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외롭게 혼자 육아를 한 느낌... 그게 참 힘들었어요."
- 외로움이 참 힘들었다는 말이 마음에 남네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간으로서 여성 사랑이 힘이 되었을까요?
정임 : "아무래도 여성사랑 덕분에 외로움을 이겨내지 않았을까요? 외로움 뿐 아니라... 독박 육아에 대한 고단함이라든가, 그런 걸 학습도 하면서 지금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줬던 것 같아요. 굉장히 답답하고 힘들었던 것을 여기에서 해소하고 그랬던 게 많았어요."
명숙 :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도 있고, 성장도 했죠. 함께 책도 보고 와서 공부하니까. 그리고 그때 유기농 음식에 대해서나, 아이들한테 생식 얘기도 하고, 인문학 공부도 하고,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다뤘던 것 같아요."
향옥 : "지금도 생각나는 게, 그때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가 결혼과 동시에 다 퇴사를 했었고, 그래서 서로 그 얘기를 많이 하면서 풀어냈지요."
정임 : "소위 말하는 'K-장녀'로 살았고 부모님의 불평등한 관계를 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왜 이런 관계가 형성됐지?' 하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다들 공통된 어떤 문제 의식을 좀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좀 들어요.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스스로 자신을 사랑해야 된다'는 생각, '항상 자기를 희생했던, 배려만 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으로 살자'는 생각이 있었죠."
성아 : "결혼 전에는 직장에서 굉장히 당당했거든요. 결혼 후에는 당당하지는 못했어요. 애를 낳으면서... 나한테 딸린 식구가 생기니까 부당해도 말을 못하더라고요. 나 혼자는 가난해도 상관없는데 자녀를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일만 하고 있더라고. 눈물만 흘리고... 그게 참 힘들었어요.
여노를 몰랐을 때는 근로기준법 이런 것도 몰랐어요. 부당 대우를 받는 것도 그 사람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알고 나서는 항상 내 뒤에 여노가 있었고, 든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