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게임 엑시인피니티(Axie Infinity)
스카이마비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필리핀에서는 P2E(Play to Earn)라고 하는 이른바 '돈 버는 게임'이 유행했다. 베트남 스타트업인 '스카이 마비스'가 개발한 '엑시인피니티'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엑시인피니티'가 기존의 게임과 다른 점은 게임으로 실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단순하다. '엑시'라고 하는 게임 내 몬스터를 구입해 던전을 돌며 다른 플레이어의 엑시와 대결한다. 대결에서 이기면 스무스러브포션(SLP)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 SLP는 코인 거래소에서 현금화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국내 코인 거래소 업비트에서는 '엑시인피니티' 코인은 개당 16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필리핀 사람들은 '엑시인피니티'로 경제활동을 대신했다. 한 달에 7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도 벌었다는 기사가 한국 언론에도 소개된 적도 있다. 게임이라고 하는 가상세계(메타버스)에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P2E 게임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P2E 게임을 게임시장의 미래 먹거리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게임회사 위메이드는 최근 P2E 게임 '미르4'를 전 세계 170여 개국에 출시했다. '미르4' 이용자들은 게임 내 광물인 '흑철' 10만 개를 채굴하면 '드레이코'라고 하는 코인 1개로 교환 가능한데, '드레이코'는 다시 위메이드가 만든 암호화폐 '위믹스' 1개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위믹스'는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다시 현금화 가능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6000원 대였던 '위믹스'는 현재 2만6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한창 메이플스토리에 빠져 있었을 무렵 나는 하루종일 달팽이 껍질만 모았다. 미션 깨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게임 내 캐시를 벌거나 아이템을 사기 위해서였다. 달팽이 껍질을 모으기 위해 달팽이를 잡던 나의 행위는 게임 내에서의 노동이었지만 현세에는 아무짝에 필요 없는 노동이었다.
하지만 근래 등장하는 게임들은 게임 내에서의 노동이 현세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실제 노동이 되고 있다. 물론 필리핀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게임 내 노동이 불법이다. 게임등급위원회에서 사행성을 우려로 P2E 게임의 국내 서비스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르4'를 이용하는 국내 유저들은 VPN으로 우회 접속해서 게임을 하고 있다.
사행성? 그냥 싫은 게 아니고?
게임등급위원회는 사행성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기저에는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기성세대의 개념이 녹아들어 있다. MZ 세대들은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두고 부모와 갈등하며 자랐다. 1시간만이라도 게임을 더 했으면 하는 청소년들과 그 시간에 책 한 번 더 봤으면 하는 부모 간의 갈등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겪는 일이었다.
2000년대 초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등장하면서 게임으로도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인기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은 상상을 초월한다. 'LOL(리그오브레전드)' 세계 1위인 페이커(이상혁)의 올해 연봉은 71억 원이다. 게임 하는 게 직업이 되면서 청소년 사이에서 프로게이머는 장래희망 순위권에 늘 올라 있다. 프로게이머가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자녀의 꿈을 지지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반면 게임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21년 11월에 열린 'LOL 월드 챔피언십(아래 롤드컵)' 결승전을 시청한 전 세계 시청자 수는 7380만 명이었다. 웬만한 스포츠 경기 시청자 수 못지않은 숫자다. 전 세계인들의 축제라는 올림픽도 롤드컵의 인기에 한참 못 미친다.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본 시청자는 2000만 명에 불과했다. 게임의 인기가 올림픽보다 많건만 자녀가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가기를 바라는 부모는 많아도 프로게이머가 돼 롤드컵에 나가기를 바라는 부모는 많지 않다. 이것이 게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인식이다.
최근 중국에서 청소년들의 게임 시간을 통제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의 관영 매체는 게임을 정신적 아편이라고 비판했고, 중국 정부는 미성년자의 게임 시간을 주당 3시간으로 제한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이를 본 국내 여론은 경악에 가까웠다. '공산국가다운 발상이다'라는 평이 나돌았다. 그러나 중국에 앞서 청소년들의 게임을 제한한 나라가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다.
2021년 11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심야 시간대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한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시켰다. '게임 셧다운제'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11년에 제정됐다. '게임 셧다운제'의 파장은 컸다. 한 청소년 프로게이머는 지난 2012년 프랑스에서 열린 게임 대회에 참가했다가 셧다운제 적용으로 인해 패배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코딩교육으로 유용한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전 세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성인용 게임이 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셧다운제로 인해 '마인크래프트'를 운영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국 청소년들만을 위한 시스템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한 것이다.
대신 성인용으로 전환해 아예 청소년들의 접속을 제한하는 방법을 택했다. 국내 청소년들은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몇 명 되지도 않는 한국 청소년을 위해 따로 시스템을 마련할 바에는 이들을 포기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왔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결정에 셧다운제 폐지가 급물살을 탔고 마침내 10년만에 폐지가 됐다. 게임을 중독성의 관점에서만 보고 기성세대들이 내린 결정의 최후였다.
철처히 기성세대적 관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