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중 절반 가까이가 자식들 물건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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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1폐(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정리하는 것) 인증 모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유품을 정리한 딸의 글이었다. '노인네 혼자 사는 집에 물건이 뭐 그렇게 많냐, 제발 좀 버리시라'고 타박했는데, 돌아가시고 보니 절반 가까이가 자식들 물건이었다고 한다.
장롱 속에는 당신의 옷보다 아들들 교련복, 군복부터 딸의 결혼 전 입었던 정장까지 자식들 옷가지가 더 많았다. 자신보다 딸, 아들의 물건을 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내내 먹먹했다 한다.
혹시 친정어머니 살림에도 내 물건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함께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1일 1폐'를 권하며 살펴보기로 했다. 처음에 어머니는 버릴 것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일단 화장대를 열었다. 다 쓴 립스틱이 여러 개다. 립스틱을 붓으로 파서 써서 동굴이 되었는데도 아직 쓸만하단다. 지금도 슬리퍼나 양말을 꿰매 쓰는 알뜰한 어머니가 궁상맞아 보이기도 하고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내 물건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버린 스카프인데 여기 있었군. 내가 신혼 때 선물 받은 식탁 매트도. 아이가 쓰다 버린 공책도 아깝다며 가지고 있었다. 사은품, 선물 등 받은 채로 세월만 쌓인 물건도 많았다.
새 다리미는 작동하지 않았고, 새 시계에 건전지를 바꿔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하나씩 버린 것을 블로그에 올리며 함께 정리해갔다. 한 달을 같이 버린 어머니는 "하루에 1개 버리기가 별것 아닌데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라고 말해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쓰지 못한 타자기
어느 날, 옷장 제일 높은 곳에 있던 아버지의 타자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생전에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이니 절대 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 말대로 타자기는 아주 깨끗했다. "엄마, 요즘은 중고거래로 팔 수도 있어요. 내가 알아볼게." 검색해보니 오래된 타자기가 실제 사용하기 위해 혹은 엔틱 장식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중고거래 카페에 아버지의 타자기를 올린 며칠 뒤, 쪽지를 받았다. 어머니가 대학 시절에 쓰던 타자기와 같은 모델이라 생신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거래 가능한지 물었다. 약속한 날 타자기를 가지러 온 젊은이는 타자기가 반들반들하고 예쁘다고 좋아했다. 어머니가 회고록을 쓰고 싶어 해서 타자기를 구하고 있었단다.
나는 '세상에 의미 없는 이야기는 없고 내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나이니, 끝까지 용기 내시라' 전해달라고 했고, 젊은이는 나의 응원 말도 생신 카드에 적어서 드리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타자기가 사랑받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곧 한쪽에 구멍이 뚫린 듯 작은 바람이 지나갔다. '아버지는 왜 타자기를 사셨을까? 타자기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돌아가셔서 이제는 물어볼 수 없으니 더 안타까울 뿐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아버지는 다정했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분은 아니었다. 주위 친척들에게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더 많을 정도다. 아니 어쩌면 내가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암으로 투병하시던 어느 날, 아버지가 당신의 지난 이야기를 덤덤히 한 적이 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못 하고, 나는 그저 건성으로 들었던 일을 지금도 후회한다.
아버지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던 함경도 북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쓰고 싶었을까. 당신의 아버지를 찾아 만주까지 홀로 찾아간 일을 적고 싶었을까. 아니면 40여 년 동안의 교사 생활을 되돌아보고 싶었을까. 어쩌면 시나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온종일 마음이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