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는 틈날 때마다 SBS 여자축구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찾아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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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틈날 때마다 SBS 여자축구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찾아보곤 해요. 골문을 시원하게 때리는 송소희-황소윤, 일명 '쌍소'의 활약을 보다 보면 속에서 '나도 축구 잘하고 싶다'는 결의가 막 차오릅니다. 실제론 아니지만요. (못 간 날도 있었지만) 10월 초부터 했으니 무려 꼬박 3개월을 연습했는데, 아직도 골 한 번 못 넣은 저 실화인가요? 정작 저는 잊고 있었는데, 지난주 '데뷔골 넣자!' 외치던 친구 말에 현실을 깨닫곤 약간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습니다(그날도 못 넣었어요...ㅋㅋ).
대통령,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
운동 얘기를 기일-게 했는데, 실은 정치 얘기가 답답해서예요. 저는 정치부 에디터라 대선 기사를 계속 보는데 미간이 찌푸려지는 뉴스들이 많았거든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의혹,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들 문제가 잇달아 터지는데… 환멸감이 들어 기사를 끝까지 읽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제가 유심히 본 건, 대선후보들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였습니다. 나이·성별·장애, 성적 지향과 학력 등 어떤 이유의 차별이건 막자는 차별금지법이 대표적 예일텐데요. 특히 제겐 이 장면이 마음에 가시처럼 걸려 자꾸 떠올랐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과거) 발언에 사과하라'고 외치는 청년들을 마주친 이재명 후보가 "다 했죠?"라 짧게 답한 뒤 지나간 일이요(관련 기사:
"차별금지법 발언 사과하라" 청년들에 "다 했죠?" 물은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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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7일 서울대 강연회에 참석하러 가던 이재명 후보가 강연장 입장 직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시위자들을 만났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물론 "차별금지법은 개인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11월 25일)" "법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12월 14일)"는 등 발언을 한 윤석열 후보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재명 후보가 딱히 더 나아 보이지도 않는 건 왜일까요. 정의당이 "잔인한 미소"라 주장한 당시 표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약간의 존중이라도 있었다면, 이 후보가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아서요(안타깝게도 현재 법 제정에 온전히 찬성하는 대선후보는 딱 한 명, 심상정 정의당 후보뿐입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2017년 5월 대선을 전후로 쓴 칼럼들에서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한다"고 짚은 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더 깊게 느끼는 이에게 투표하리라 결심했다면서요(<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91~204쪽).
"타인에게 열려 있는 통각이 마비돼 있거나 미발달된 이들이 하는 정치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대통령(大統領)이 대통령(大痛領)이면, 우리 중에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보통 사람들, 여성들의 삶을 아는 정치인
제 엄마 순호씨는 오는 12월 30일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요. 공공 의료원 세탁실에서 세탁원으로 만 31년을 꼬박 일하셨어요. 저를 낳고 잠시 쉬다가 1990년 입사해 한 해도 쉬지 않고 일한, 피와 오물이 묻은 환자복들을 빨래해 자식들을 다 공부시킨 엄마. 순호씨에게 전화해 은퇴를 앞둔 심정을 물으니 "싱숭생숭해, 믿기지가 않아"라며 웃으시네요. 그 순간 멋진 워킹맘이 아니라, 가난한 남편을 따라 와 외지에서 고생하며 산 여성이 보여서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갑작스레 엄마 얘길 꺼낸 이유는 여성들의 지난한 삶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길 하고 싶어서예요. 최근
통계청(12.14) 자료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었거든요. 한국에서 1983년 태어난 기혼 여성 4명 중 1명은 출산 뒤 직업을 잃는 경력 단절을 겪었다고 합니다(2019년 기준, 전체의 25.5%). 반면 1983년생 남성의 경우, 10명 중 1명을 뺀 9명(93%)이 결혼·출산에 관계없이 경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